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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20. 2020

신은 어디에나 있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 리뷰

<이웃집에 신이 산다>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둘러 나가기 위해 뽑아 든 양말 한 쌍은 꼭 짝이 맞지 않고 내가 가려는 곳은 꼭 지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잘못 건 전화는 절대 받지 않는 법이 없고 내가 놓친 엘리베이터는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일수. 거기에 신호등은 내 볼 때만 빨간불로 바뀌는가 하면 기다리다 지쳐 들어간 편의점 창 밖으로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보인다. 온통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은 세상. 어쩌면 이 모든 게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의 계략이 아닐까?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그런 작은 생각에서 시작한다. 태초에 인간을 만든 신. 동물을 만들고 인간을 빚어낸 신은 인간 세상의 법칙을 만든다. 인간들에게 ‘하나님’이라 불리는 신 디유(브누와 뽀엘부르드 역). 그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유럽 브뤼셀의 한 아파트 방 안이다. 부인(욜랜드 모로)과 아들 J.C.-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말하지 않는 그 이름-, 그리고 딸 에아(필리 그로인)와 사는 신 디유는 집 안에서는 그저 폭군일 뿐. 인간들의 상상하는 자비로운 모습은 간데없고 그저 소리 지르고 화를 내며 오히려 인간을 골탕 먹이려는 아버지 디유를 본 그의 딸 에아는 아버지가 망친 인간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다. 방법은 하나, 새로운 신약 성서를 쓰는 것. 6명의 사도를 찾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신의 딸 에아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다.

창세기로 시작하는 영화는 성경책의 구성을 충실히 따른다. 창세기와 출아파트기-성경에서는 출애굽-을 비롯해 에아가 찾은 6명의 사도 복음서와 완벽한 성경의 마무리인 찬송가 총 9장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만들어낸 21세기 성경인셈. 시종일관 시니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를 비꼬는 영화는 오히려 무신론자보다 유신론자들, 특히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흥미로운 점이 많다. 이는 영화가 철저히 성경의 내용들을 분석하여 만들어졌기 때문. 이 짝퉁 성경은 창세기를 통해 기존 관념을 비꼬며 열린다. 알코올 중독자에 흡연자인 신은 심심풀이로 세상을 만들어 걸핏하면 사고를 일으키는 한편 세상에 내려와 메시아로 불렸던 에아의 오빠 J.C. 가 모았던 12명의 사도는 사실 신이 아이스하키를 좋아해서 이루어진 숫자라 밝혀진다. 세상에 내려온 에아가 복음서의 집필자로 선택하는 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노숙자. 에아를 찾아 세상에 내려온 신에게서 권능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물 위를 걷는 에아와 달리 물에 빠지기까지 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신. 이처럼 섬세하게 비틀어진 성경적 요소들은 영화가 초반부터 유지하는 시니컬한 분위기 속에 풍자를 곁들여 보는 이로 하여금 조소를 짓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비틀기 속에서 영화는 에아의 행보를 통해 다시 한번 역설적으로 성경을 닮게 된다. 복음서를 완성하기 위해 6사도를 택하는 에아-여담이지만 12명에 6명이 18명은 에아의 어머니가 좋아하는 야구 스쿼드의 수로 여기서도 영화는 그 치밀함을 드러낸다-. 택함 받은 여섯 사도는 장애인, 독신, 불륜 여성-심지어 그 상대는 고릴라다-, 성도착자,  암살자,  그리고 여장남자. 세상에 가장 소외받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에아의 모습은 마치 2000년 전 창녀와 죄인들을 찾아갔던 그분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에게 찍힐 낙인이 두려워 자신을 숨기고 살아갔던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며 보여주는 내면의 진실함에 내려진 에아의 은총. 고독한 감독에 스스로를 가뒀던 여섯 사도는 이제 시선을 밖으로 돌려 서로를 바라보며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사랑’과 ‘자아’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직접 찾아 보듬고 사랑을 전파한 에아, 그녀의 신약 복음서는 이렇게 완성된다.   
 

새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는 에아. 그런 그녀에게 답을 준 건 다름 아닌 그녀의 어머니다. 항상 남편에게 구박받으며 그저 집안일을 하는 가정부 취급만 받았던 그녀가 세상을 창조하는 컴퓨터 앞에 앉게 되며 구원받는 세상.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다소 아쉬운 점을 남긴다. 과연 그녀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신 디유가 만들어 낸 세상보다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꽃과 아름다운 음악, 화려한 패턴과 색, 자유로운 선택으로 강조되는 그녀의 ‘여성적’ 모습들은 오히려 사람들 안에 고착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신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진부함을 탈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상은 앞서 보여준 시니컬하고 유쾌한 비틀기와 그 흐름을 달리하며 당황스러움을 안기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엔딩 역시 감독이 의도한 바 아닐까 싶다. 결말이 어찌 되었든 일단은 엔딩곡 Jours peinards을 통해 “난 내 길을 택했어 무섭고 가혹한 아버지와는 다른 길”이라 주장하는 영화.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신의 권위를 벗겨내고 가장 인간적인 시선에서 그려낸 발칙한 구원의 메시지,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 판단은 결국 보는 사람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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