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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21. 2020

무색무취의 남자가 욕망을 가질 때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리뷰

 우리는 종종 샤넬 넘버 5를 통해 마릴린 먼로를 떠올리거나 어머니가 자주 사용하는 섬유유연제 향에서 그리움을 느낀다. 특정한 기억이나 이미지가 향기에 스며들어 우리의 마음을 자극한 뒤 그 향기의 원천이 가진 정체성으로 굳기 때문이다. 향기는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하나의 상징이 되는 향기는 향을 제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향수’가 되었고 이제 향수는 한 사람을 나타내는 시그니처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향에 대한 깊은 역사를 간직해 ‘향의 고향’이라 불리는 프랑스. 수많은 향수들의 성지인 그곳에서 태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냄새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인간 본능에 대한 감각적인 고찰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1985년 소설 [향수] 출판 이후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려했던 쥐스킨트는 영화화에 대한 모든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제작자 번드 아이킨거의 그루누이만큼이나 끈질긴 집념은 쥐스킨트를 설득해 마침내 코에 닿을 듯 섬세한 향 묘사와 치밀한 인간의 심리 행동 묘사로 채워진 소설 [향수]를 20년 만에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6, 이하 <향수>)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철저한 시대 고증을 통해 [향수] 속 18세기 프랑스에 영혼을 불어넣은 톰 티크베어 감독. 영화는 우리를 낯선 시대의 프랑스 도시로 이끈다.

악취로 가득한 빈민가에서 태어난 남자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벤 휘쇼 분)는 후각으로 모든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어느 날 향으로 세상을 인지하던 그의 앞에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여인의 향기’가 나타나고 난생처음 향에 대한 욕구를 느낀 그루누이는 향을 소유하기 위해 향수 제조사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만)의 도제로 일하며 향수 제조법을 배워나간다. 그러나 주세체의 향수 제조법에 한계를 느낀 그루누이는 자신이 원하는 향을 소유할 방법을 찾기 위해 파리를 떠나 ‘향수의 낙원’이라 불리는 그라스로 떠난다.  
 
향에 대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루누이를 연기한 벤 휘쇼는 완벽히 그루누이로 분장해 인간과 짐승, 어느 경계에 있는 사내를 표현했다. 연기 학교를 졸업해 연극 <햄릿>으로 데뷔하여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에 도전한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실로 그의 연기가 가진 무궁무진한 힘에 놀라게 된다. 액션 영화 <007 시리즈>의 똑똑하고 어린 쿼터마스터부터 <클라우드 아틀라스>나 <브라이트 스타>를 통해 낭만과 우울을 동시에 지닌 예술가까지 배우 벤 휘쇼는 인물이 가진 가장 내면의 모습을 이끌어내며 여린 몸으로도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해왔다. <향수>를 통해선 대사보다 행동으로 그루누이 그 자체가 된 벤 휘쇼. 그가 연기한 그루누이는 그라스로 떠나는 길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각성을 경험한다.
 
온전히 혼자만의 공간을 발견해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살아가던 그루누이. 그는 이내 끔찍한 진실을 마주한다. 바로 본인이 지닌 체취가 없다는 것. 향에 대한 결핍은 그의 가장 깊은 욕망을 발현시켰고 그루누이는 저를 알리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할 향수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다시 그라스로 향한 그가 선택한 향수의 재료는 바로 ‘여인의 향기’. 누구보다도 향기 지닌 힘을 잘 알고 있던 그루누이는 세계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들을 죽이기 시작하고 그라스는 혼란에 빠진다. 그루누이가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살인을 하기 시작하며 영화는 인간이 지닌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그루누이에게 살인은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향수를 만들기 위한 수단. 도덕적 관념의 구애 없이 가장 순수한 본능이 ‘아름다움’을 향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자행되는 일뿐인 것이다. 조향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루누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또한 그루누이를 잡고 자기 딸 로라(레이첼 허드우드)응 지키기 위해 마을에서 가장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안토인 리치(알란 릭맨)이 결국 그녀를 지키지 못하고 그녀의 향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은 당시 프랑스의 계몽주의에 대한 냉소적 표현이자 탈이성적 사고에 대한 지향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역시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에서 무너지는데. 그루누이가 만들어낸 향수 앞에서 자신을 잊고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사람들. 그 앞에서 다시 소외당하며 염증을 느낀 그루누이는 자신이 태어난 빈민가로 회귀하고 사람들을 굴복시켰던 향수로 인해 오히려 죽음을 맞이한다.
 
향수가 이끌어낸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잡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내는 영화 <향수>. 이 모든 것 역시 체취와 향, 정체성과 사람들로부터 인정에 목마른 그루누이의 욕망으로 시작했다. 돌아보면 여전히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 깊은 내면이 심어져 있는 자아 찾기와 타인의 인정에 대한 절실한 욕구는 현대판 그루누이를 만들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돈에 누군가는 명예에 또 누군가는 집착하며 자기가 생각하는 최고의 향수를 찾아 헤매는데. 허나 욕망은 지나치면 독이 되고 욕망이 욕망을 불러 자기를 파괴하는 법. 어쩌면 그루누이가 욕망에 사로잡힌 그때 그에게 진짜 필요한 했던 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는 전설의 향수가 아닌 그저 작은 한 사람의 관심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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