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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22. 2020

소신 있는 사람들의 선택

영화 <소수의견> 리뷰

소수의견: 의사결정이 다수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합의체에서 다수의 의견에 포함되지 않아 폐기된 의견. 즉 결정에 대한 반대의견 혹은 채택되지 않은 의견을 말한다.

여기 이상한 영화가 하나 있다. 아직 대중들에게 공개하지도 않은 영화 하나. 시사회도 시작하지 않은 이 영화에 평점이 달리기 시작했다. 대게 영화가 공개되지 이전의 평점들은 영화 관계자들이나 배우의 팬들이 남기어 응원성이 짙기 마련. 그런데 이 영화, 평점이 조금 이상하다. 보지도 않은 영화에 달리는 욕설과 비난들이 쏟아지며 영화의 평점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영화, 왠지 잘 될 거 같다고. 이 낮은 평점이 바로 이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진 증거라고 말이다.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이끈 영화 <소수의견>이다.
재개발 강제 철거 현장,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의경과 철거민의 아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검찰은 철거 용역을 소년 살인범으로, 아들을 잃은 철거민 박재호(이경영)를 의경 살인범으로 지목하는데. 박재호의 변호를 맡게 된 건 내세울 것 없는 대학 출신에 경력도 변변치 않은 국선 변호사 윤진원(윤계상). 그런데, 박재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것은 용역이 아니라 경찰이라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진원을 찾아온 여기자 수경(김옥빈) 역시 같은 이야기를 꺼내고. 열람할 수 없는 수사 기록,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과 부딪히며 수상한 냄새를 맡은 진원은 선배 변호사 대석(유해진)과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뛰기 시작한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위험에 빠지는 진원은 재판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비밀을 안고 있는 살인 사건, 다른 사람의 만류에도 진실을 찾으려는 주인공, 그런 사건을 둘러싼 부조리와 생생한 재판 이야기까지. 영화 <소수의견>에는 여느 법정 드라마와 다를 바 없는 요소들이 들어있다. 특별할 것 없는 법정물이 마주한 ‘평점 테러’. 게다가 <소수의견>은 평점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 기현상을 보여 주었다. 영화를 둘러싼 세 가지 연관 키워드는 ‘실화’, ‘윤계상’, ‘개봉’. 그 안에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소수의견>의 비밀이 들어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못 박는다. 영화의 인물이나 사건은 실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오프닝에 보여주는 문구와 달리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영화를 꼭 닮은 실화에 꽂혀 있었다. ‘용산참사’. 2009년 1월, 용산의 한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로 6명이 사망한다. 사망자는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 그 건물 옥상에서는 재개발 문제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경찰, 용역 직원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철거민 유족과 국가 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이 실제로 1년 간 이루어졌고 재판은 합의로 마무리되었는데.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소수의견>. 그 안에는 상상력을 만나 생기를 얻은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두 번째 키워드 ‘윤계상’. 극 중 진원의 역할을 맡은 배우 윤계상. 사람들이 배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그 <소수의견>의 캐스팅에 있다. 유해진, 이경영, 김의성, 장광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출연으로 보기도 전에 믿음이 가는 영화가 된 <소수의견>. 이제는 가수의 이름을 벗고 배우로 당당히 선 윤계상은 영화 속에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떠나 제 할 일을 찾으며 세상과 부딪히는 별 볼일 없던 변호사로 다시 태어났다. 또한 시종일관 재판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과 진상을 밝히기 위한 전쟁이 뒤얽혀 무거운 분위기에 잠겨 있는 영화 속에서 재치 있는 대사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영화에 재미를 더하는 유해진의 연기도 놓치지 말 것. 특히 주연들뿐 아니라 조연 한 명 한 명 모두가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발산하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소수의견>의 큰 원동력이다. 이처럼 <소수의견>은 배우들의 쟁쟁한 연기력으로 더욱더 풍성한 그림을 그려내었다.

그러나 자칫 완성된 그림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할 뻔한 김성제 감독. 그것이 <소수의견>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개봉’에 관심을 쏟은 이유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용산참사’와 관련된 영화라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 그래서였을까, 영화는 만들어지고 나서도 2년 동안 스크린에 오를 수가 없었다. 처음 <소수의견>의 배급을 맡은 CJ E&M이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구속 이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영화 개봉을 미뤘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떠돌았지만 CJ 측은 이를 극구 부인하며 해명했다. 김성제 감독에 따르면 2013년은 영화 <변호인>과 소재의 유사성 때문에,  2014년은 세월호 침몰 사고 때문에 개봉을 연기했다는 게 CJ 측의 이유였다고 한다. 어렵고 민감한 소재라 개봉에 외압이 들어왔다는 설을 딛고 2년 만에 관객들 곁을 찾은 <소수의견>. 결국 영화는 CJ가 아닌 시네마서비스에서 개봉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결국 모두가 피해자인 세상.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복무 중이었던 21살 의경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시위 중인 아버지를 찾은 16살 소년도 그 위에 군림한 권력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다수결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채택받지 못해 폐기되는 의견을 일컫는 소수의견. 그러나 채택되지 못했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폐기된 수많은 소수의견 중에는 진짜 진실, 혹은 옳은 결정이 들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무작정 따르는 일은 쉽고 편하다. 게다가 그 가운데 권력을 더하면 더욱더 대세를 따르려는 것이 사람의 욕심. 그러나 여기 폐기될 뻔하고도 다시 돌아온 영화 <소수의견>이 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떠오른 영화가 이 시대의 수많은 ‘소수의견’에게, 그리고 ‘소수의견’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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