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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25. 2020

엄마의 집요함이 불의를 물리친다

영화 <범죄의 여왕> 리뷰

 지방의 한 미용실을 운영하는 여자 미경(박지영 분)은 여느 아줌마들과 다를 바 없다. 혼자 아들을 기르기 위해 불법 시술까지 병행하며 돈을 벌고 사시에 합격하지도 않은 아들을 꼬박꼬박 이 판사라 부른다. 동네 아줌마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아들의 한 마디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수도 요금이 120만 원이 나왔어.”
 언뜻 보면 아들의 수도요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단순한 스릴러로 보이지만 <범죄의 여왕>은 제법 여러 마리의 토끼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영화다. 엄마라고 하기에는 다소 젊어 보이는 미경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화장과 빨간 구두 그리고 눈에 띄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자신의 당당함을 드러내며 아들의 고시원을 찾는다. 그에 비해 엄마를 맞이하는 아들 익수(김대현 분)는 평범하다. 시험 때문에 예민해진 모습으로 서울까지 굳이 올라온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고 그녀의 오지랖이 부끄러운 수험생이다. 스릴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영화의 전반부는 여느 가족영화와 다르지 않게 보인다. 특히 몇 번이나 부딪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현실감이 있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두 사람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아버지의 존재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되지 않는다는 점은 두 사람만으로도 온전한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시사한다. 더불어 주변의 인물들 역시 함께 하지 않지만 결국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얻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영화는 사회가 일반적으로 용인하는 가족의 ‘완전성’을 탈피하고 현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가족상을 자연스럽게 그 안에 녹여내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본 장르인 스릴러에 충실함을 보인다. 극적인 반전으로 놀라움을 선사하진 않지만 예상 가능한 범위의 플롯이 주는 진부함을 다양한 인물들의 얽힘과 고시촌이라는 장소에 깃든 특유의 분위기로 어느 정도 무마시키고 있다. 사실 범인을 알리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요섭 감독이 처음부터 모든 패를 드러내 놓고 시작했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써 영화는 누가 범인인가 보다는 미경이라는 여인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그 과정에 대한 궁금점을 자아낸다. 인위적인 미스터리나 복잡한 설정을 빼낸 것이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감독이 원하는 바에 더 집중하게 만든 것이다. 모든 게 밝혀진 상황에서 영화는 각 캐릭터가 가진 강한 개성과 그런 캐릭터들이 만나 이루는 하모니를 통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특히 미경과 그녀를 돕는 개태(조복래 분)가 주는 성적 긴장감이나 고시원에 살고 있는 덕구(백수장 분)나 402호 여자(이솜 분)가 보여주는 독특함은 기존의 스릴러에서 보기 드문 재미까지 선사한다.   
 또한 <범죄의 여왕>은 현대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고시촌이라는 특수한 지역으로부터 기인된 일들은 꼭 뉴스를 통해 우리가 봐 왔던 모습을 닮아 있다. 별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그곳에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헛된 희망과 미련에 발목 잡혀 반복된 실패 속에서도 시험의 끈을 놓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기도 하는데 <범죄의 여왕> 역시 평범한 한 인간이 어떻게 변하고 마는지에 대한 암시를 넌지시 던지며 평범함으로 포장된 개인의 특수성을 이야기한다.


광화문 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 <범죄의 여왕>. 저예산 독립 영화와 상업 영화 그 사이 즈음에 있는 <범죄의 여왕>은 작은 영화들이 상업 영화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대중성을 겸비하기 위해 필요한 방향을 가리킨다. 자칫 구구절절 긴 이야기가 될 뻔한 지점들을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방법으로 갈무리하며 자신이 꼭 말하고 싶었던 바를 103분의 러닝 타임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 이요섭 감독. <범죄의 여왕>이 가진 힘은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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