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원 Dec 26. 2020

돈을 돈으로 보지 않는다면

영화 <올 더 머니> 리뷰

 1973년, 황금빛 모래 아래로 검은 석유가 흐르는 중동 땅 위에 전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해 10월, 마지막 중동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끝나고 산유국들은 담합을 도모하여 석유값을 일제히 인상했고 이로 인해 전 세계를 떨게 만든 오일쇼크가 찾아왔다. 비산유국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든 이 재앙은 작은 나라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유일무이한 강대국으로 불린 미국마저 위협했다. 그러나 세계가 석유로 인해 위기에 허덕이던 그때, 유일하게 웃음 짓던 한 사람이 있었으니 한때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진 남자라 불렸던 진 폴 게티. 영화 <올 더 머니>는 바로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중동이 석유를 둘러싸고 총칼을 세우던 같은 해 로마, 한 소년이 납치되어 미국 전역이 들썩인다. 납치된 소년의 이름은 존 폴 게티(찰리 플러머 분), 진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 분)의 손자였다. 납치범들은 아이의 몸값으로 1,700달러(한화 약 186억 원)를 요구했지만 단 한 푼도 줄 생각이 없다고 발표한 진 폴 게티. 그는 아이의 엄마이자 자신의 며느리 게일 해리스(미셸 윌리엄스 분)에게 몸값 대신 납치범들을 설득할 전직 CIA 요원이자 협상가 플레처 체이스(마크 월버그 분)를 보낸다

시간이 흘렀지만 몸값이 오지 않자 납치범들은 게티 3세를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에게 팔아넘기고, 유괴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영화가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 것일까? 영화 <올 더 머니>는 제작 과정에서 J. 폴 게티만큼이나 큰 위기를 맞이했다. 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주연 배우인 케빈 스페이시가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게티와 그 가족들을 향해 날아왔던 언론의 화살은 이제 영화 <올 더 머니>에게 날아왔다. 개봉하기도 전에 관객들을 잃게 된 리들리 스콧 감독. 그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바로 주연 배우를 교체하고 영화를 새로 찍기로 결심한 것. 그는 케빈 스페이시의 촬영분을 모두 삭제하고 재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9일 후, 지난 작품들로부터 받은 우주의 기운이 그를 돕기라도 한 듯 영화가 완성된다. 물론 이때 그를 도운 건 우주의 기운이 아니라 주연 배우로 발탁된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였다 영화에서 그는 완벽하게 J. 폴 게티가 되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부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가족 목숨 앞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는 그 마음. 진 폴 게티는 그렇게 부자가 되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삶, 인간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그려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다시 지구로 돌아와 선택한 소재는 바로 ‘돈’ㅋ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짙은 푸른빛은 돈에 잠식된 우울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납치라는 소재로 포장되었지만 실제 영화는 미스터리나 드라마, 액션보다는 누아르 장르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 <올 더머니>.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며 내내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1970-80년 대 불안한 미국 경제의 원인이었던 석유, 그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영화는 돈이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드러낸다. 단 하나 차이가 있다면 J.C 챈더 감독의 <모스트 바이어런트>가 돈을 둘러싸고 감춰진 어둠을 조명한 반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는 사람들 앞에 드러난 어둠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위에 서서 가장 합법적으로 돈을 모았던 진 폴 게티. 그러나 그의 합법 안에 가족은 들어가지 못했다.  

돈은 결국 돈이 아니다. 돈으로 값을 매긴다는 건 단순히 그 가치가 숫자로 환산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 폴 게티에게 돈은 가족보다 믿을만한 대상이었고 그의 가족들에게 돈은 생명 값이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돈은 부러움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모든 것이 상징으로 대체된 세상 속에서 오로지 돈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진 폴 게티. 그가 꿈꾼 왕국에 사람이 설 자리가 있었을까? 영화 <올 더 머니>가 ‘돈’으로 그린 풍경에서 직접 찾아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멀티 페르소나, 부캐의 시대를 예견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