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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27. 2020

멀티 페르소나, 부캐의 시대를 예견했을까?

영화 <홀리모터스> 리뷰


멀티 페르소나: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일컫는 단어 페르소나(고대 그리스인들이 쓰던 가면). 현대인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며 상황에 맞는 여러 가면을 쓴다. 이 여러 개의 가면을 멀티 페르소나라 칭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1] 참고)

이른 아침, 고급 리무진 ‘홀리 모터스’에 올라타는 사업가 오스카(드니 라방). 그의 비서 셀린(에디뜨 스콥)이 운전하는 리무진을 타고 새벽부터 밤까지 파리를 누비는 오스카는 차가 멈출 때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하나씩 처리해 간다. 사업가, 걸인, 암살자, 광인, 죽어가는 노인, 광대, 배우 등 아홉 명의 인물이 되어 업무를 수행하는 오스카. 전혀 다른 인물의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그의 행보를 영화 <홀리 모터스>를 통해 따라가 보자.
 레오 카락스 감독의 본명은 알렉상드르 오스카 뒤퐁. 레오 카락스라는 이름은 자신의 이름 알렉스와 오스카의 철차를 혼합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홀리 모터스>의 주인고 이름 역시 오스카. 그동안 <나쁜 피>와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알렉스 역을 맡았던 카락스의 페르소나 드니 라방은 이번 영화에서 오스카 역을 맡아 다시금 열연했다. 자신의 영화에 철학과 메시지를 담아 신선한 이미지로 연출해내는 감독 레오 카락스. 그가 <홀리 모터스>를 통해 우리에게 인생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영화 시작,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다 몸을 일으킨다. 그 남자는 바로 레오 카락스, 본인이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일어나 열쇠가 된 손가락으로 잠긴 문을 여는 남자. 그가 걸어간 곳에는 시체 마냥 굳어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갈매기 소리와 함께 뱃고동이 울리며 화면은 배를 닮은 빌라로 전환되고 드디어 영화의 주인공 오스카가 걸어 나온다. 영화는 이미 <홀리 모터스> 속 오스카의 삶을 또 하나의 영화로 간주하며 그의 일상을 영화 속의 영화처럼 이중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미동도 없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과 대조되어 <홀리 모터스>는 관객으로 하여금 조금 더 영화와의 심적인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오스카를 비추는 화면은 그가 업무에 주어진 인물로 변하는 모습을 몇 번이고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하나도 둘도 아닌 아홉 명의 인물. 모습도 나이도 성별도 전혀 다른 인물들을 연기하는 드니 랑방은 정말 속에 다른 인격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이 연기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키게 만든다. 걸인으로 시작하여 CG 액션 배우를 거쳐 암살자가 되기도 하고 광인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평범한 아버지가 되는 오스카. 한 업무를 다 마치고 나면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오스카로 돌아가 다시 다른 업무를 기다린다.

 해 질 녘 차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오스카. 마치 그 간의 일들이 모두 꿈인 것이었던 것처럼 그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만난다. 엔딩을 비추며 들려오는 소리는 ‘삶이 변할 것’을 노래하고, 오스카가 내일의 해가 뜨면 또다시 새로운 삶들을 살아갈 것을 예고한다. 오스카, 그리고 9명의 인물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사람의 마음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특히 무의식에게도 인격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오스카가 연기했던 다른 아홉 명의 사람 모두 어쩌면 그의 또 다른 무의식의 인격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모두 결국 단 하나의 오스카일 뿐.  
 우리 인생도 그저 ‘홀리 모터스’에 올라타 흘러가는 오스카의 업무와 같은 건지 모른다. 필요에 따라 차를 타고 내리며 그때 그때 우리의 다른 인격을 덮어쓰는 것이다. 혹은 알 수 없는 누군가 우리에게 준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일까? 그가 준 파일을 열어보며 우리가 맡은 역할을 해내고, 그렇게 죽음 혹은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것. 어느 것이 정답이든 끝은 같다. 홀리 모터스가 일을 마치고 주차장에 주차된다는 사실. 자신의 리무진이 주차되는 그 날까지 계속되는 인생의 길을 달리며 우리는 오늘도 차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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