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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01. 2021

욕망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 <어느 하녀의 일기> 리뷰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오웬 윌슨 역 )은 낭만이 가득한 1920년대의 파리를 꿈꿨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피카소의 뮤즈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는 1920년에 만족하지 못했고. 그녀가 진정 원한 건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였다. ‘좋은 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해당하는 이 시기 파리는 전에 없던 풍요와 평화를 누렸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강렬한 색채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물랭루주와 레스토랑 맥심으로 아름답게 물든 이 시대 거리에는 우아한 복장의 신사 숙녀들이 넘쳤다. 문화가 꽃피우고 화려하기만 한 시절. 영화 <어느 하녀의 일기>가 번지르르한 가면 뒤에 숨어 있던 화려함의 비밀을 폭로한다.  

오디에른 지방 출신의 하녀 셀레스틴(레아 세이두 역).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나 하녀 일로 삶을 이어나가는 그녀는 매혹적인 외모와 도도한 언행으로 여자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남자들에게는 욕망이 대상이 된다. 수많은 집을 거치며 사람에 대한 불신과 염증을 느낀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던 그녀의 새 일터는 노르망디 시골에 사는 부유한 랑레르 부부의 집.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랑레르 부인과 시도 때도 없이 추파를 던지는 랑레르 씨. 저를 반기지 않는 여자 요리사 마리안과 속을 알 수 없는 마부 조제프까지. 조용한 시골에 찾아온 발칙한 셀레스틴의 일상이 시작된다.  

영화의 원작 소설 <어느 하녀의 일기>는 ‘벨 에포크’ 시대 소설 장르의 변화를 이끈 옥타브 미르보의 작품. 권력 비판과 사회 참여에 앞섰던 지식인 옥타브 미르보는 <쥘 신부>, <세바스티앵 로크> 등의 작품을 통해 금기시되었던 전쟁과 종교에 대한 내용을 담아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예술 비평가로도 활동하면서 로댕, 고흐, 모네 등의 예술가들을 세상에 알리고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에 맞서 싸워온 그의 대표작 <어느 하녀의 일기>는 당시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추악한 행위를 일삼았던 부르주아들의 실상을 하녀의 눈으로 드러냈다. 1946년에는 장 르느아르 감독을 통해, 1964년에는 루이스 브뉴엘 감독을 통해 이미 2번이나 리메이크되며 그 저력을 입증한 <어느 하녀의 일기>. 2015년 브누와 쟉꼬 감독의 손 끝에서 매력적인 레아 세이두로 다시 태어난 <어느 하녀의 일기>는 그들만의 색을 자랑한다.

 기존 영화들이 보여주는 '하녀'의 이미지를 답습하는 <어느 하녀의 일기>. 어리고 예쁜 하녀와 그녀를 향한 성욕에 물든 부자 주인, 젊고 예쁜 하녀를 질투하는 안방마님까지 신선하지 않은 이미지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배우의 힘 덕분이다. 이미 <페어웰, 마이 퀸>에서 브누와 쟉꼬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레아 세이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녀 역에 이어 이번에도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하녀로 거듭났다. 몸은 굽혀도 마음은 굽히지 않는 도도한 태도와 상대를 교묘하게 비꼬는 예리한 언행, 귀족들에게 지지 않는 세련된 패션 감각과 우아한 몸짓의 이 하녀는 그저 순종적인 다른 하녀들과 차원이 다른 마력을 내뿜으며 스크린 밖 관객들까지 유혹한다.

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원작 소설과 달리 영화는 그 어떤 내레이션도 없이 진행된다. 또한 원작 출판 당시 빈번한 플래시백과 과거 회상 형식으로 전통적 소설 장르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부분 역시 재현되고는 있지만 다소 짧고 빠른감이 있어 아쉬움을 안긴다. 대신 레아 세이두의 표정과 혼잣말, 몸짓이 그녀의 속마음을 완벽히 대변하고. 쉴 틈 없이 지나가는 셀레스틴의 일상 속에서는 그녀가 느끼는 피곤과 그녀 주위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호기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19세기 고증에 정성을 기울인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어느 하녀의 일기>. 그 시대의 화려한 옷과 장신구, 큰 저택과 안에 들어 있는 장식품들은 부유층이 누렸던 사치를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추악함은 그 악취를 숨기지 못하고. 셀레스틴을 향한 마수들은 금욕적인 척하며 뒤로는 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하는데. 또다시 찾아온 평화의 시대. 과거 그 어느 시절보다 부유하고 다양화된 21세기에는 진짜 하녀들부터 기업과 국가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눈부신 발전 속에 숨겨진 이면을 폭로할 수많은 하녀들의 이야기를 엿볼 날이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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