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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31. 2020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마음의 시간

영화 <유스> 리뷰

사무엘 올만은 그의 시 <청춘>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니’라고 말이다. ‘나이 먹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꿈과 희망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고도 말하는 사무엘 올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마 그 혼자만이 아니었나 보다. 만물이 푸른 봄과 같다고 여겨지는 청춘, 혹은 젊음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시선을 그린 영화 <유스> 역시 또 다른 젊음을 그리고 있으니까.
 
스위스에 위치한 고급 호텔. 그곳에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휴양을 즐긴다. 딸 레나(레이첼 와이즈 역) 함께 단골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저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 프레드 벨린저(마이클 케인 역). 24년 간 몸 담았던 베니스 오케스트라를 떠나 휴식을 즐기는 그에게 찾아온 영국 여왕의 특사는 필립 왕자의 생일을 맞이해 프레드의 역작인 <심플송>을 연주해달라 부탁한다. 한편, 프레드의 오랜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믹 보일(하비 카이텔) 또한 그의 작품 <생의 마지막 날>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작가들과 머무르는 중. 그는 프레드와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면서도 시나리오 진행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들과 친해지는 건 또 다른 투숙객인 영화배우 지미 트리(폴 다노)로 그는 지난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사람들 안에 굳어져 가는 이미지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이 외에도 공중부양을 위해 수양을 하는 수도승과 왕년의 축구스타, 그리고 미스 유니버시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호텔에 모여 자기 나름의 시간을 이어간다.
 

프레드와 믹, 두 노인의 시선에서 젊음을 고찰하는 영화 <유스>.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은 단순히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젊음이 가져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던진다. 그들이 기억하는 젊음이 결코 잘 나갔던 현역 시절이 아닌 점이 가장 큰 이유. 그들은 현재를 살고 있고 과거는 그들에게 이미 지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저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는 두 사람. 그러면서도 그들이 놓지 않는 것이 바로 젊음에 대한 열망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기에 프레드와 믹은 호텔 안에서 함께 지내며 차차 더 먼 미래의 자신을 생각한다. 다만 그들의 발목을 잡는 건 과거에 잔재에 허덕이며 젊은 시절의 가들을 추억하는 현실. 그러나 믹과 프레드는 이미 알고 있다.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면 그때야 말로 진짜 늙어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진짜 ‘젊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의 삶을 더욱 부각해주는 것은 곁에서 함께 고민하는 젊은 청년 지미. 삶에 대한 의미 부여와 진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에는 나이가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 세 사람이 머물고 있는 곳은 스위스 한 고급 호텔. 영화는 세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뿐 아니라 종종 호텔 안팎의 풍경을 비추며 그 공간 속에서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프레임 안에 잡히는 화면은 마치 한 장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황금 비율이 맞춰 배치된 사람들과 물건들 그리고 감각적인 배경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이 호텔 안의 다른 사람들 역시 각자의 시간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잊기 않게 상기시킨다. 한 컷 한 컷 섬세하게 맞물린 장면들을 탄생시킨 건 파울로 감독과 주요 작품으로 함께 호흡을 맞춘 루카 비가지 감독. 때로는 단조롭게 또 때로는 다채롭게 그려지며 엿볼 수 있는 호텔의 일상은 투숙객 모두가 나아가고 있는 각자의 현재이자 미래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 영화 <유스>의 인물들은 그들이 잡을 수 없는 시간에 얽매이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온 또 다른 자신을 기대하며 마음의 ‘젊음’을 유지한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그와 별개로 흐르는 마음의 시간임을 전달하는 <유스>. 지금 당신 마음의 시간은 몇 시에 머무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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