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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30. 2020

순응이라는 이름의 속박

영화 <순응자> 리뷰

 19세기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파쇼(Fascio)의 당원들은 극단적인 권위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워 ‘파시즘’을 탄생시킨다. 개인을 비롯한 그 무엇보다도 국가를 우선시하고 결속을 통한 힘을 강조하는 파시즘.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의 저자 로버트 팩스턴은 그의 책에서 파시즘을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공동체’ 와 ‘일체감’. 질서 유지와 정상적인 삶을 열망한 한 남자에게 파시즘은 너무나도 매혹적인 사상이었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순응자>는 그런 그의 선택의 순간들을 따라간다.
 
 호텔 침대에 앉아 있는 한 남자. 전화를 받고는 급하게 몸을 이동한다. 그의 이름은 마르첼로(장 루이 트린티냥).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정신병원에 있는 아버지와 저를 압박하는 어머니 아래서 불안에 시달린다.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위해 평범한 삶을 꿈꾸는 마르첼로. 이를 위해 중산층 집안의 줄리아와 결혼한다. 그런 그가 한 가지 남들과 다른 일을 하게 되는데. 바로 사람들이 기피하던 파시스트가 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선택은 그를 둘러싼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정상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루어진다. 비밀리에 파시스트가 되어 받은 임무는 바로 제 스승이었던 콰두리 교수의 암살하는 일. 임무 수행을 위해 신혼여행으로 파리를 간 마르첼로는 콰트로 부부에게 신뢰를 얻고. 특히 교수 부인인 안나에게 이성적으로 끌리게 되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가장 첫 정면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의 간판을 보여준다. ‘La Vie A Nous’. 불어로 ‘삶은 우리의 것’이라는 뜻인 이 문구는 마르첼로가 걸어온 길과는 정 반대의 의미를 지니며 아이러니함을 불러일으킨다. 마르첼로를 움직이게 하는 건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시선. 그를 둘러싼 환경은 여러 방향에서 압박해 온다. 마르첼로의 부모님은 그에게 바른 모습을 기대하며 결혼을 종용하고 이에 그는 적당한 상대를 찾아 적당한 결혼을 하며 평범함을 유지한다. 또한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찾은 종교 역시 그의 목을 죄는 족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동성애적 성향을 보이는 마르첼로에게 종교는 위로가 아닌 동성애에 대한 질타만을 던진다. 어느 것 하나 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유를 잃고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마르첼로. 그는 정상으로 살고자 남들이 싫어하는 파시스트 단체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역시 그의 순수한 열망보다는 평범한 삶을 위해 내린 결정. 무언가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마르첼로지만 다른 사람처럼 살기 위해선 제 본성과 다른 일마저 해내고. 영화는 그가 어떻게 점점 ‘순응자’의 삶을 이뤄가는지 묵묵히 지켜본다.
 
 그리고 이 시선을 담은 건 비토리오 스토라 촬영 감독.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인 효과는 현대의 영화 못지않게 감각적이고 독특한 미장센을 만들고 있다. 현재의 어느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마르첼로의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교차 편집하여 시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마르체로의 삶이 얼마나 혼란스러움 속에서 흔들리는지 나타낸다. 여기에 더해진 건 자유자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줌의 조절, 공간들의 비정상적인 배치, 여백의 적절한 사용과 조명. 이러한 프레임 구성은 특별할 것 없는 화면이 기이하게 보이도록 만들며 끊임없이 영화 속 인물과 거리감을 조성하게 만든다. 이로써 우리는 한 청년의 마음에 동조하게 되기보다는 낯섦을 느끼고 지속적으로 그의 선택과 행보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후에 동정과 연민의 마음마저 불러일으켜 ‘순응자’로 사는 삶이 과연 그에게 행복을 주었는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느린 호흡으로 따라가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환경에 의한 세뇌의 위험성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는데. 영화가 왠지 낯설지 않은 건 영화 속 현실이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타인의 평가를 기준으로 맞춰지는 삶의 모습인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것 하나 없는 우울한 세상 속에서 결코 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사실은 무엇보다 치열하고 어려운 일인 아닌가. 그러면서 점차 삶 속에 ‘나’를 잃고 끝내 ‘우리’ 혹은 ‘공동체’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남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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