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원 Jan 08. 2021

 윤회의 굴레 속에 반복되는 역사

영화 <리우 2096> 리뷰

 2016년 광복절,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가 고정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했다. 광복절 당일 올린 SNS 게시물 때문이었다. 그녀가 올린 사진 속 전범기는 국민들을 광분하게 만들었고 여론은 그녀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이건 그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을 앵무새처럼 외치는 국민들을 뒤로한 채 우리나라는 10억 엔(약 108억 원)으로 일본에게 역사를 또다시 빼앗기려는가 하면 한반도에 배치할 ‘사드’ 문제가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 중국 힘의 논리에 종잇장처럼 흔들리고 있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되는 법. 이는 지구 정 반대편 거대한 땅 위에서도 다를 바 없는 진리였다.
 1566년, 투피남바족 전사 아베구아(셀튼 멜로 목소리 분)는 사랑하는 여인 자나이나(카밀라 피탄가 목소리 분)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 후 자신이 무냐 신으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사명은 아냥가로부터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는 것. 그러나 포르투갈 정복자들의 옷을 입은 아냥가는 투피남바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자나이자마저 빼앗아간다. 슬픔에 잠긴 아베구아는 절벽에서 뛰어내리지만 신의 가호 속에 붉은 새로 환생하고 영원의 삶을 얻게 된다. 그로부터 수 백 년 후, 다른 여인으로 환생한 자나이나를 발견한 그는 다시 사람이 되어 그녀를 열렬히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함께 때로는 노예제, 때로는 군부독재의 이름으로 그들을 위협하는 아냥가에게 끊임없이 저항하지만 또다시 쓰라린 죽음을 맛보며 절망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2096년, 깨끗한 물을 권력으로 휘두르는 아냥가에게 대항하기를 포기한 그의 앞에 나타난 자나이나. 600년 간 반복되어 온 역사가 또다시 그를 걷잡을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진다.  

투피남바족이 살고 있던  리우데자네이루를 배경으로 600  피로 쓰인 역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루이즈 볼로네지 감독은 감각적인 선과 다채로운 색의 사용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아베구아와 자나이네의 인생을 영화 <리우 2096> 고스란히 담아냈다. 아마존의 전사, 흑인 해방 운동가, 군부 독재 시대의 게릴라로 영원한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아냥가와 투쟁하는 아베구아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강렬한 음악이 더해져 극명하게 드러나고 루이즈 볼로네지 감독만의 독특한 그림체는 아베구아를 비롯해 자나이나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리우데자네이루의 풍경을 선명하게 보여주며 사실감을 한층 높였다. 그러나  모든 예술적 묘사와 서정적 정서의 뿌리에는 눈에 보이는  어떤 시각적 효과가 아닌 브라질의 깊은 역사가 박혀있다.  
 유럽의 식민지배로 잔혹한 대학살이 시작된 16세기부터 노예 해방 운동으로 격렬히 맞붙었던 19세기, 군부 독재로 자유와 평화를 억압당한 20세기 그리고 아직 오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리하지 않을 거라 말하는  없는 22세기까지 브라질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대서사시가 아베구아 그리고 자나이나의 끝없는 환생과 맞물려 있었다. 수백   무냐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인디언 전사는 그가 막아야  악마와 같은 존재 아냥가에 대한 예언을 듣는지만 실상 아냥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악령이 아닌 인간의 욕심  자체였다.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추악한 욕심은 수많은 이들의 무고한 죽음을 부르고 세상을 암흑으로 덮으려 하는데. 무냐 신이 내린 예언을 굳게 믿으며 반복되는 지옥 속에서도 아냥가와 싸우지만 번번이 좌절하며 의지를 잃는 아베구아. 600년의 세월 속에서 그가 모르고 있던  가지 사실 하나, 아베구아가 계속되는 패배 속에서도 버틸  있던 진정한 힘은 신의 은사가 아닌 자나이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내려놓은 상황 속에서도 오로지 자나이나를 향한 사랑만으로 다시 일어서는 아베구아의 모습 속에 루이즈 볼로네지 감독은 영원히 지속되는 그의 삶처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의 메시지를 녹여냈다. 모든 시련을 이겨내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이다.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참혹한 역사지만 이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정신을 깃들어 있는  역시 인간이다. <리우 2096>으로 재현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과거와 미래는 결국 남아메리카 대륙만이 아닌  지구 전체의 보편적인 역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7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인류의 역사를 함축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리우 2096>. 영화는 2021년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는 아냥가를 똑바로 보고 있냐고 말이다. 지난해 광복 75 년을 맞이하였지만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더럽혔던 아냥가의 찌꺼기조차 제대로 닦지 못한   역사를 쓰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이제는 <리우 2096> 통해 마음속을 울리며 아직 우리나라를 지배하며 지난 역사를 되풀이하려는 아냥가가 떠나지 않았다는 소름 끼치는 진실과 마주해야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경계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