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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06. 2021

가족과 사랑, 오래된 기호들이 주는 사랑스러운 따스함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 리뷰

 야스타케 치에(히로스에 료코 분)는 성악을 전공한 꿈 많은 대학생이었지만 25살에 암 판정을 받는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치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남자 야스타케 싱고(타키토 켄이치 분)가 있다. 두 사람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한다. 삶과 죽음을 오가며 항암 치료를 받고 암을 극복하던 치에와 그런 그녀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싱고 사이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이 하나(아카마츠 에미나 분). 세 사람은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아쿠네 토모아키 감독의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에서는 실존 인물인 故야스타케 치에 씨가 집필한 원작 에세이 <하나와 미소시루>에 대한 헌정을 느낄 수 있다. 투병 생활 중 치에가 운영하던 블로그 글의 내용과 이에 대한 싱고의 시선으로 쓰인 글로 구성된 에세이처럼 영화는 치에와 싱고의 시선을 번갈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솔직한 심정을 담아낸다. 암과 싸워야 하는 환자와 이 모든 걸 지켜보는 보호자의 시선을 넘어 치에와 싱고는 평범한 연인으로 또 평범한 부부로 살아가는데. 혹시 올 지 모를 이별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치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담담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 오히려 그 일상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강인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두 사람의 아이 다섯 살 하나가 서 있다.

처음부터 하나의 존재가 마냥 선물만은 아니었다. 싱고와 부모님, 그리고 시부모님에게는 축복이고 기적인 하나였지만 하나를 품은 치에 본인에게는 다시 암이 재발하게 되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임신 사실을 안 치에는 낙태를 결심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가족들은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까지 아이 낳을 것을 강요한다. 특히 “죽을 각오로 낳아라”라고 말하는 아버지. 치에는 결국 하나를 낳게 되고 아이를 기르며 천천히 아버지의 말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 지점에서 가족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삶과 죽음의 기로의 선 여인이 죽음을 염두하며까지 완성한 가족의 모습은 비단 어떤 형식적인 가족의 모습을 위한 게 아니었다. 생명의 잉태가 치에와 싱고 모두에게 죽음만이 있을 줄 알았던 인생에 새로운 시작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암이 전신으로 퍼진 것을 숨겨온 치에는 결국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고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엄마 없이 남을 하나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 건강한 삶을 위해 현미와 미소된장국을 고집해 온 치에는 이제 그 삶의 방식을 딸에게 물려주려 한다. 때로는 다소 강압적으로 보일 때까지 하나를 몰아세우는 치에.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조차 우리는 남겨진 하나에 대한 걱정을 읽을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도 아이들을 생각하는 어머니 상은 보편적이지만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법. 끝을 알고도 따라가기 시작한 세 사람의 이야기의 종착에서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실 영화는 이미 제목에서 그 모든 비밀을 그려냈다. 하나, 그리고 미소시루. 치에가 살아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된 이 두 가지가 이 영화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것. 물론 이는 비단 치에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안아준 싱고에게도 같은 이야기다. 여기에 야스타케 가족을 응원하는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의 손길까지 더해져 완성된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 <하나와 미소시루>. 스스로 “나는 운이 좋다”라고 말하는 치에를 보며 겨우내 추웠던 심장 깊숙한 곳까지 따스함이 스며드는데. 어쩌면 이 계절 믿지 못할 이야기를 책으로도 영화로도 만날 수 있는 우리 역시 “운이 좋다”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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