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조프라 가는 길
힘겹게 한걸음을 걸어 나가는 것도 어려웠던 곳에서 벗어나 드디어 나에게 산티아고가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켜켜이 쌓인 사진들을 분간하지 못하면서 이 기록들을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 나처럼 길을 헤매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나의 마음에도 자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스럭 대는 소리에 아침 7시경 잠에서 깨어났다.
남아공 부자와 폴란스 순례자는 부지런히 이미 길을 떠난 듯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오늘도 하갈과 함께 걸으면 좋겠지만 하갈 언니는 발목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걷기가 아니라 치료를 받는 게 먼저 같아 나는 빠르게 짐을 챙기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2층 부엌으로 가서
어제 삶았던 계란과 샐러드를 챙겨 먹고는 방명록을 남겼다.
나바레떼에서의 추석 보름달은 잊지 못할 하루였다.
나에게 있어 순례길 초보자란 딱지를 떼어낼 뭔지 모를 분기점을 넘어섰다고 해야 하나?
똑같은 하루였지만 다른 느낌의 새로운 날이 밝았다.
Cafe Monkey
광장 근처에는 이른 아침부터 열려 있는 자그마한 카페가 있어서 나는 불빛이 있는 곳으로 무작정 걸어 나갔다.
카페에는 아침 일찍 일을 하는 청소부와 공공근로 공무원들이 카페에 모여서 아침식사 중이었다.
분위기를 따질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덩치 큰 인부들을 뚫고 바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 향과 빵냄새가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안녕 나바레떼!
까미노 앱을 켜고 노란 화살표를 찾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기 전에는 항상 걸을 수 있다면 더 걷겠다 마음을 먹지만 걷다 보면 무리해서 더 걷는 것이 앞으로 걷기에 좋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래서 보통 12시 전에 땅이 뜨거운 태양에 달구어지기 전에 모두들 빠르게 걷는 것 같다.
걷기 시작하면서 하갈 언니 걱정이 들긴 했지만,
내 템포에 서둘러 걷지 않는다면 이 폭염을 뚫고 나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챙기며 걸을 자신은 더 없었다.
나바레떼를 빠져나오는 길 나바레떼가 끝났다는 표지판이 나에게 길을 알려준다.
길을 걸으며 무수히 마주치고 지나친 자연경관들 중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몬드 나무를 보았다.
살면서 뭐든 간에 아는 게 많다는 것은 역시나 힘인 듯싶다.
고소한 아몬드를 길에서 은행 줍듯이 따먹을 수 있다니 정말 이곳은 기름지고 축복받은 땅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몬드 열매껍질을 까고 있던 콜롬비아 순례자 크리스티안은 내가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난 듯 연신 호두 껍질과 비슷한 재형의 아몬드 열매껍질을 돌로 까주었다.
모르고 지나칠 때는 그저 평범한 자연이지만 그 안에는 각자 자기 이름이 있다.
그늘 없는 태양
가이드 맵에서 조차 벤또사 까지는 식수대가 없고 그늘도 없을 테니 단단히 준비해서 나헤라까지 걸으라는 당부가 있었다. 서둘러 걷는 것 밖에는 답이 없지만 그늘 없는 일찍 선 길은 마치 러닝머신을 뛰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숙소에서 가장 소극적이고 조용했던 프랑스 청년 임마뉴엘은 공원 입구 벤치에 앉아 바게트 빵을 뜯고 있었고,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오늘 길을 걷는 내내 업치락 뒤치락하며 내내 마주치다 결국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임마뉴엘
국적 프랑스
키 190그 즈음
나이 30대 초반
깡마른 몸매
내향적이고 조용한 수줍은 프랑스 청년
우리가 더 빨리 친해진 이유 중 하나는 지팡이인데
그는 내 키보다도 큰 대나무 지팡이를 두 개나 들고 다녔다.
임마뉴엘은 프랑스 남부길서부터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미 1000KM는 더 걸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천천 길을 걸었고,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역앱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말이 안 통할 때 더 좋은 게 뭔 줄 아는가?
생전 처음 보는 이 청년은 나에게 남들에게는 못하는 고해성사를 털어놓았다.
나 역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간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이 나 역시 같은 배경에서 느꼈던 것들과 비슷했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의 외로움과 슬픔의 치유를 위해 많은 순례자들이 순례길을 걷고 있는 거니까 말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각자 혹은 같이 느슨하게 걸어 나갔다.
어느새 포도밭 풍경이 펼쳐졌는데 그 사이 누군가 포도를 따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보였기 때문에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스티브?
나: 스티브 왜 여기 있어요?
레온 간다고 들었는데?
당신은 안 갔나요?
나바레떼에서 우연히 봤던 사람이 스티브가 맞았었나 보다 사실 에스페란자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 거지
에스페란자의 남편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걷는걸 더 상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가 여기 있는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에스페란자는 일정에 맞춰 길을 걸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레온행 기차를 탄 것이었다.
스티브는 로그로뇨에서 에스페란자를 배웅하고 남아서 통으로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맙소사!
그들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임에도 어떻게 만났는지 스티브에게 듣게 되었는데, 진짜 신세계였다.
캐나다 토론토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롱디커플로 만난 연인이었다.
이들은 미국, 캐나다 협회의 순례자 모임에서 같이 순례길 갈 사람을 구하면서 서로 zoom으로 대화를 하고 만남을 이어갔다고 한다.
tinder 매칭 앱을 매칭하듯이 순례길로 매칭을 했다고?
와 이거 완전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아닌가?
서울과 부산도 장거리 데이트라고 헤어지는 한국에서 미국 서부 LA와 캐나다 토론토 장거리 커플이라니
나는 에스페란자와 스티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얼마나 작은 세상에 살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임마뉴엘은 저 멀리 긴 다리로 성큼성큼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세 명이 업치락 뒤치락하며 자연스럽게 그룹이 돼서 걷기 시작했다.
임마뉴엘의 큰 키는 나에게 큰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그림자를 따라다녔더니 그 모습이 웃겼는지 스티브가 웃어댔다.
나헤라에 도착할 즈음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먹어야 했다.
임마뉴엘과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나눠준 것이 고마워서
에스프레소를 사주었다. 나는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잠시 해를 피하며 휴식시간을 가졌다.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에게 이렇게 라도 작은 성의를 표하고 싶었다.
우리가 앉아 있던 곳에 줄지어 순례자들이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그늘 없던 길을 걷다가 만난 오아시스 같던 카페에 앉아 무조건 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했다.
언제 어디서든 앉아서 도착할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일기장을 펴 그때그때의 기록을 남기는 유럽 사람들이 보기에 좋아 보인다. 그들에게 어디에 도착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길을 걷다 힘들면 그곳에 멈춰 서서 숙소를 잡고 하루를 쉬면 그만이다
뒤늦게 스티브가 우리가 있던 CAFE BAR LA LUNA의 테라스 테이블에 홀로 앉아 신발을 풀고는 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스티브는 신발이 불편했던 것 같다.
나는 기록하는 순례자들을 지나치면서 나 역시 이 길을 본격적으로 기록을 남겨 보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그래 나도 길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해 보자 조금은 디테일하고 나만의 스타일로 그림과 글을 써서 말이다.)
카페 바로 옆 개인 집에서 보더콜리와 강아지 주인이 산책을 나오면서 우리는 모두 일제히 보더콜리에게 시선이 집중 됐다. 녀석은 그 시선을 즐기듯 갑자기 배를 까고 만져달라고 울기 시작했다.
팜플로나에서도 봤었지만 스페인 개들은 재밌는 게 사람보다도 산책하기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스페인 사람들이 너무 산책을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심하게 밖에 오래 있으니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모양새다.
자기주장 쌘 보더콜리 덕분에 다들 큰소리로 웃으며 배를 쓰다듬어 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덕분에 나헤라에서의 추억이 사랑스럽고 따뜻하게 남는 듯하다.
임마뉴엘은 늘 가방에 들어 있는 물통의 호수로 물을 마셨다.
견과류 팩을 늘 들고 다니면서 에너지 보충을 한다.
스티브는 신발이 불편해서 인지 자주 길을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여러 번 만났음에도 스티브의 이름과 연락처를 이제야 교환하게 되었다.
임마뉴엘과 스티브 역시 숙소를 아직 정해놓은 게 없다고 했다.
우리는 캐나다, 프랑스, 한국에서 가져온 자료를 총동원해서 Azofra에 있는 숙소에 자리가 있는지 예약이 가능한지 알아보았다. 나는 전화를 걸어 개인 프라이빗 룸을 예약했다.
스티브와 나는 프라이빗룸을 예약했고, 임마뉴엘은 우선 예약만 해놓았다.
다들 신기하게도 전화로 예약이 가능하단 것을 몰랐던 눈치였다.
앱예약 말고도 다양한 예약 방법이 있어서 미리 알아보는 게 좋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아조프라까지 함께 걷게 되었는데, 스티브와 임마뉴엘이 자연스럽게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해서 나는 뒤로 빠져서 혼자 걷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우리 셋 중 가장 연장자였고, 알고 보니 2년 전 북쪽 길(Norte of Road)을 완주한 경험이 있는 경력자였다. 게다가 미국인이 아니라 캐나다계 필리핀 이민자였다.
건축업계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은퇴를 하셨다고 했다.
에스페란자와 스티브를 보면서 인생의 기준을 100세로 본다면 인생의 반은 다양한 나라에서 삶을 펼쳐봐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Azofra 에는 해가 이글 거리는 오후 3시 30분에 도착했다.
아조프라는 가이드앱에 나오는 대로 숙소는 많이 있었지만 이 동네에는 레스토랑 한 개와 슈퍼마켓 한 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힘들게 나헤라에서 더 걸어서 온 건데 나헤라 보다 더 작은 규모였다.
마을의 아주 작은 공원에 식수대와 밤이 되면 유럽식 노란 조명이 켜지는 것 이외에 정말 허허벌판인 동네 주변에 목장이 있는지 분뇨 냄새가 많이 났다.
Albergue de Municipal de Peregrinos de Azofra
아조프라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마을 외각으로 빠져나왔다.
삼층 규모의 대형 숙소였고, 숙소 마당에는 작은 분수대가 있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 발 담그고 근육을 푸는 수영장으로 사용했다. 빌라바에서 함께 묵었던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이미 이곳에 짐을 푼 듯 얼굴들이 보인다.
다행인 것은 우리는 미리 예약을 마친 상태였고, 일인실을 예약했기 때문에 더 이상 코골이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게다가 순례길 전부터 계속 들고 다니면서 개시하지 못했던 수영복을 오늘 드디어 입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지쳤던 마음보다 들뜬 에너지가 더 컸던 것 같다
.
빠르게 씻고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분수대로 향했다.
여유롭게 그늘 아래 테이블에 앉아 여가를 즐기는 얼굴들 사이로 도시를 도착할 때마다 만났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저 사람은 팜플로나에서 만났던 이탈리안이고,
저 사람들은 남아공 부자, 아! 저분 필라델피아 멋쟁이 미국인
오! 마리앤도 오셨군요? 안나는요?
비아나에서 만났던 빡빡이 영국 헬창 순례자도 분수대에 몸을 식히고 있었다.
그간 걸었던 지역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미리 일인실을 예약했던 나와 스티브 방의 컨디션을 보고는 임마뉴엘 역시 일인실로 예약을 변경했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간밤에 코골이에 푹 잠을 못 잔 탓에 다들 피로와 근육통으로 싸우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저녁 시간 식사시간에 보기로 하고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물만 보면 신나 하는 나만 걸을 땐 그렇게 골골하더니 신이 나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시에스타를 즐긴 거지.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있는 음식점과 슈퍼마켓도 다 둘러보았는데, 딱 한 군데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길을 걸으며 얘기한 고기를 주방에서 굽는다거나 하기가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별수 있나 그냥 레스토랑에 가서 순례자 메뉴를 먹을 수밖에 수영을 마치고 다시 또 샤워를 하고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개인 방인건 좋은데 소똥냄새가 너무 난다.
임마뉴엘은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며 연락을 달라며 톡이 왔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임마뉴엘과도 좋은 친구가 생겼단 생각에 마음이 좋았다.
우리는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유일하게 있는 음식점
유럽의 조명과 개수대에 물이 흐르고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아이들이 나와서 뛰어노는 모습이
마을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스티브는 피곤한지 눈이 벌겋게 닳아 올라 있었다.
임마뉴엘도 깨워서 데리고 나가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다들 피곤한 눈치였다.
Restaurante Camino de Santiago Bar Sevilla
슈퍼마켓은 너무 작아서 사실 뭐 살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작은 음식점은 전천후로 카페에서부터 산티아고 순례자 메뉴까지 전부 취급을 했다.
산티아고 메뉴를 시키고 음료로 와인을 시켰더니 세명분의 와인 한 병이 그냥 왔다.
스티브는 식사하는 내내 임마뉴엘은 모르는 에스페란자 얘기만 줄줄이 늘어놨다.
게다가 영어까지 미숙해서 인지 "Say HI"라는 통역 앱을 이용해서 대화를 했는데, 대화가 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일 일정을 공유했다.
임마뉴엘은 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있는 성당을 꼭 봐야 한다면 추천을 했다. 사실 그냥 지나칠 계획이었는데 그곳에 머물 건지 걸을 건지는 내일 걸어 보고 정하기로 했다.
스티브는 내일 새벽 6시에 걸을 생각이라고 마음이 있으면 함께 하자 제안해 왔다.
식사를 하는 중간 하갈언니가 근처 호스텔에 일인실에 묵고 있다는 소식을 연락해 왔다.
나는 이곳 유일한 음식점에서 식사 중이라고 했고, 언니가 나타났다.
임마뉴엘은 많이 피곤했었는지 식사가 끝나갈 때 즈음 먼저 일어나겠다고 했다.
그는 종아리 통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고, 일인실의 맛을 본 임마뉴엘은 더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를 필두로 레스토랑의 빈자리에는 순례자들로 가득 채워졌다.
필라델피아 미국분이 빈자리에 우리와 합석을 했는데, 스티브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 듯 보여서 나는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리고 시크해 보였던 이 멋쟁이 순례자가 꽤나 스티브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는 여전히 에스페란자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나는 대화하는 두 분을 뒤로하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하갈 언니 테이블에 앉아 언니에게 안부를 물었다.
나: 언니 다리 괜찮아요?
하갈: 발이 뜨거워~
그리고 조금 추운 것 같아.
나: 일인실 숙소를 구했는데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하지만 잠은 잘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언니랑 같이 예약할걸.
식사를 마치고 나자 갑자기 피로가 급 몰려왔다.
나는 내 테이블로 돌아가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먹고는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얘길 했다.
필라델피아 순례자와 스티브는 왜 이제 오냐며 모두 일어나 자리를 정리했지만, 내가 봤을 때 둘의 이야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을 만큼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걸로 보였다.
편한 걸로 치면 하갈이 나에겐 더 편하고 좋다.
이제 숙소로 들어가서 쉴 준비를 해야겠다 말하니
같이 일어나기로 했다.
은은하게 비추는 노란 아조프라의 조명이 아름답게 작은 마을을 빛나게 했다.
시골 농가외각에 외지인을 몰아놓은 듯한 공립 알베르게로 가는 길은 빛하나 없어서 살짝 무섭기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내일 새벽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하자고 약속을 하며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만약에 못 나오면 각자 걷기로 약속하고 말이다.
내일은 원래 계획대로 Grañón (22Km)까지 갈 수도 있고 임마뉴엘 말대로 Santo Domingo de la Calzada(15.4KM)를 갈 수도 있다.
뜨겁고 힘든 하루였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