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토끼를 쫓아가라!
그렇게 약해서 가서 잘 걷겠어?
나를 오랫동안 지켜본 지인들은 체력이 그래서 갈 수 있겠냐며 다들 걱정 어린 한마디를 한 마디씩 건넸다.
늘어지게 자고 있던 오월 어느 날..
소용돌이 같이 몰아쳤던 2022년 한 해가 언제 일어났었는지 모를 정도로 평온하고 나른한 오월이었다.
볕은 따뜻했고, 얼마만의 낮잠인지 하루가 평온했다.
저녁시간 돌아온 엄마는 나에게 핸드폰 고장 난 걸 고쳤냐 물어보기 시작했다.
웬 핸드폰?
내 핸드폰 멀쩡한데?
엥?
나는 직감적으로 위험감지 센서가 발동했다.
뭔가 일이 났구나 직감했다.
아주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엄마가 말하길 내가 핸드폰이 고장이 나서 수리를 위해 서비스센터에 폰수리를 맡겨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폰을 사용할 수 없으니 대신 도와줘야 한다며 원격 앱을 깔고 운전면허증 사진까지 정보를 제공하게 만들었다. (핸드폰 수리비용이 없어 부모에게 손을 벌릴정도로 애기는 아닌데…)
부모님 심리를 이용한 전형적인 수법의 카카오톡 피싱 수법이었다.
나는 엄마가 이 뻔한 수법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그 시간 집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자마자 엄마는 손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담당형사가 알려주는 금융감독원 신고와 전체 거래 은행 및 알뜰폰 업체 전체 내역을 확인 후 가입 해지를 신청하라는 안내를 받고 밤새 업무를 처리했다.
심장이 콩닥 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동이 트고 경황없이 경찰서에 달려갔다.
우리가 아무것도 준비한 것 없이 왔었어서 형사님은 피해금액과 은행 증빙 내역과 신분도용 알뜰폰 가입내역 및 인출 내역서를 제출하라는 안내를 해주셨다.
그리고 6하원칙에 맞춰 피해를 본 내용을 적은 조서를 미리 작성해 오면 신고 내용을 빠르게 처리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거래 은행들을 들려 구구절절 상담과 내역서를 받아 정리와 직접 알뜰폰 업체에 전화를 해서 가입 및 해지 내역서 서류를 준비해 경찰서로 향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나무 구멍으로 빠지면서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것처럼 나 역시 휘 몰아치던 회오리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듯했다.
나는 몰아치는 불행에 속이 울렁이는 듯했다.
담당 형사님은 그래도 다행히 악질 보이스피싱은 아니었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정말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을 정도로 정신이 너덜너덜 해졌었던 것 같다.
운이 바뀌는 시기가 되면 정말 몸과 마음이 탈탈 털릴정도의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고 하더니 나에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리는 일들이 나를 정말 영혼이 쏙 빠질 정도로 피곤하고 힘든 시험을 하는 듯했다.
도움 닿기로 이 상황을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는 길을 부디 안전히 걸을수 있게 해달하고 신을 안 믿는 사람조차도 간절히 신을 부르게 될 정도로 간절히 기도를 했다.
“제가 당신을 위해 특별한 걸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우리 가족을 불쌍히 여겨 굽어 살펴주세요!
제발!”
퇴사 전 신청해 둔 마라톤 일정이 다가왔다.
마라톤이긴 하지만 3km 가족 걷기 행사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친구와 신청을 해놨었다.
2023년이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마인드의 전환점이 필요했던 타이밍은 마라톤 참가는 나에게 신선한 작은 도전이 되었다.
비예보가 있었고 나는 전화로 비가 오는데 취소가 되는 건 아닌지 문의를 했더니, 태풍이 부는 정도가 아니면 취소가 될 일은 없다고 했다.
휘몰아치듯 마라톤 당일 비바람이 불어댔다.
나는 마라톤 참가는 처음인 데다가 사람들이 이런 날 출전을 할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경기장 근처에 도착을 하자 민소매를 입고 연기를 내뿜으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영접하게 되었다.
홍보대사로 헬창 개그우먼 김혜선 씨가 정말 온 기운을 발산하며 참가자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바람에 더 신이 난 김혜선 씨와 함께 뛴 후에도 여운이 가시질 않는지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며 경기장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축제를 즐겼다.
이게 무슨 일이지?
비옷이라도 입고 올걸 아마 내가 걷는 길은 이 길보다 험할 텐데?
나는 아직까지는 이곳 한국 땅에 영원히 붙어 있을 사람처럼 꽁꽁 싸매고 삼 킬로 걷기 대회 참여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와 지쳐 뻗어 버렸다.
그렇게 저질 체력인데 내가 산티아고 간다고 말해놓은 게 있으니 뭐 말만 하면 산티아고 이래서 갈 수 있겠냐? 이런 말들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산티아고를 완주하지 못할 거라 장담하며 검열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속으로 다짐한 게 있다.
“꿈을 이루는 과정을 이야기해도 진짜 꿈은 마음속에만 넣어 두어야겠다고 말이다.”
벌써 아빠가 떠난 지도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크고 작은 대소사를 겪으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사소한 것들을 챙기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갔다.
지구는 정상적으로 자전했고, 누구도 가족과 지인들 외에는 나의 슬픔을 직접 말로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먹먹한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타인과 나의 간격이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종종 꿈에 아빠가 나타났다. 그러다 목소리가 직접 듣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곳에선 잘 지내고 계실까?
2022년 7월의 장례식장에서의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었다. 2023년의 여름은 그간 못 나왔던 태양이 아쉬움을 달래듯 어둠 끝까지 태양빛이 빛을 드리우는 것처럼 뜨겁게 땅을 달궜다.
큰일을 겪고도 내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미라클모닝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규칙적인 루틴에 맞춰 긍정의 에너지와 일기 그리고 운동으로 채워진 하루하루가 쌓여 슬픔의 구멍이 있음에도 하루하루를 지켜낼 힘으로 작용했었던 것 같다.
나는 퇴사를 하고도 여전히 미라클모닝을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 일기를 쓰고 아침 루틴을 하고 있었는데, 마라톤 이후 변화가 필요했다.
마라톤 리듬을 타고 여름이 지나서야 집 앞에 있는 국립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날이 더워서 의외로 등산화를 신고 걷기는 쉽지 않았다. 걷는 거보다 내 취향은 등산로 옆 냇가에 발을 담그고 앉아 송사리를 구경한다던가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마시는걸 더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것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늘 산행이
느리게 진행됐다.
날도 덥고 등산화는 무겁고 어느새 나는 걸을 때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산을 걷기 시작했다.
매일 약수터에 물 뜨고 냇가에 발담그러 산책을 가자고 목표를 세웠다.
그래봤자 다해서 5km밖에 안되니 부담도 없고 아침에 시작한 운동 겸 물놀이는 꽤 며칠은 재밌었던 것 같았다. 집에 오면 아침 샤워를 마치고 하루를 시작했다.
거의 매일 걸으며 산기운을 받고 그 좋다는 맨발 걷기를 실천하고 있으니 얼마나 몸이 좋아졌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건넸다.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다고 얘기할 수 없어서 그냥 웃음만 지어댔다. 여행을 가긴 갈 건데 막 신나고 즐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산티아고를 걷는 순례자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이상한 나라의 원더랜드 문을 열었던 것 같다.
어디로 가건 그건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가는 길이다.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내가 빨간약을 먹었는지 파란 약을 먹었는지도 매 순간 선택에 달려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자유를 맛본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갔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같다.
그저 다시 걷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