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모 압박이 불편한 유학생 엄마의 하소연
많은 여성들이 공감한 <며느라기>라는 SNS툰, 나 역시도 재미있게 봤다. 남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며느리 상'에 나를 맞추기 위해 나의 본모습과는 상관없이 노력하는 시기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나도 처음엔 딱 그랬으니까. '모성'이란 단어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단어의 무게만큼의 부담감이 있다. 아이를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어야 할 것 같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희생하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동원해 아이에게 최대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좋은 엄마가 해야 할 의무처럼 느껴진다.
자연분만의 산통을 겪어 출산을 하고, 모유수유 그것도 완모 직수를 해야 진정한 '모성'을 가진 엄마인가? 그렇다면 나는 빵점짜리 엄마였다. 임신중독이 심해 제왕절개를 하고도 회복이 느려 모유수유를 하지 못한 우리 엄마도 그렇고. 각자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하나의 기준으로 불량엄마 프레임을 씌우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자연분만에 모유 먹고 자란 아기가 더 건강하고 지능이 높다고들 하지만, 제왕절개로 태어났고 분유 먹고 자랐어도 난 건강하고 머리도 나쁘지 않다(고 믿는다). 현대사회에서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출산방법과 모유수유 여부보다 훨씬 더 다양하지 않을까.
"내가 너 가졌을 때 태교를 너무 못했어, 반지하방에 살면서 좋은 공기도 못 쐬고, 가난해서 좋은 음식도 많이 못 먹고, 출산해서도 초유만 겨우 먹이고."
엄마는 내가 아플 때마다 자책하셨고, 난 그게 왜 엄마 잘못인 건지 늘 불편했다.
산부인과와 가까운 (걸어서 3분 거리)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했다. 룸을 배정받고 조산사 출신 원장님과의 첫 만남에서 당연한 듯 목표는 완모*라는 말에 당황했다.
"아, 전 사정이 있어서요."
아기 엄마는 세 달 후에 공부하러 출국해야 하고 이후 세 달간은 아기의 외할머니가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기에, 너무 완모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고, 내 상황을 변명하듯 말했다. 별 희한한 산모도 다 있네, 하며 나무라는 듯한 원장님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완모: 완전 모유수유의 줄임말. 분유를 섞어 먹이지 않고 순전히 모유로만 수유하는 것 (다음 국어사전)
출국 전에 단유하려면 젖을 말리는데 한 달 정도 잡아야 한다는 가슴 마사지 담당 선생님의 말에 차라리 유선을 너무 뚫지 말아달라고 했다. '더 많이 나오게 해줄 수 있는데 왜?' 하는 표정을 보고 서둘러 덧붙였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유축해서 먹여볼게요."
신생아실 이모님께도 밤중 수유는 웬만하면 유축해둔 모유로 먹여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래도 수유 콜은 왔고, 이모님들은 재차 물으셨다. 진짜 수유 안 하실 거냐고. "네, 저 수술부위도 아프고, 오로가 계속 나와서 거동도 불편하고, 부기 빠지느라 땀도 한 바가지씩 흘리는데.. 그냥 오늘 밤엔 편히 자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여긴 '산후조리'하는 곳이잖아요."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식사와 간식, 한약, 식후 차까지 모두 모유 생성을 촉진하고 양질의 모유를 생산하게 한다는 이름으로 제공되었다. 조리원에서 근무하시는 이모님들도, 마주치는 산모들도 모유는 잘 나오느냐고 안부인사처럼 물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내 가슴이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어버린 게 당황스러웠다. 출산을 하고 회복 중인 산모가 사람이 아니라, 아기가 먹을 고퀄리티의 우유를 생산해야 하는 도구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모유가 좋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산모를 압박하고 집착할 일인가, 의문스러웠다.
사실 모유 수유를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전에 수술하고 다음날 오전이 되면 스스로 일어나서 소변을 보러 가야 한다. 아기 면회도 가능하고, 가스가 나온 후부터 미음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수술 이틀이 지나면 모유 수유하라고 신생아실에서 연락이 온다. 나 역시 다른 산모들과 나란히 앉아 가슴을 풀어헤치고 수유를 시도해봤다. 배고픈 아기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젖을 빨았지만, 유선이 뚫리지 않은 채 퉁퉁 불어있는 가슴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루에 몇 번씩, 며칠 반복되자 젖병에 익숙해진 아기는 엄마 가슴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아기의 엄마 가슴 거부가 절정에 이르렀는데, 아기는 배고파하면서도 엄마 젖은 안 빨겠다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자지러졌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얘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꼭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약해졌고, 포기는 빨라졌다.
그러나 조리원의 완모, 직수, 파이팅 분위기는 날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름대로 모유 수유에 대한 확고한 의지(여건이 되면 먹이고 상황이 안되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마음 편히 포기하자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난, 노력하지 않는 엄마였다. 아기가 울고불고하더라도, 굶겨서라도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던 찰나, 산부인과에서 연락이 왔다. 신생아 검사에서 갑상선 수치가 기준치에 맞지 않아 재검을 했는데 그 결과도 좋지 않아 다시 채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출산 전날까지 임신성 갑상선 기능 저하로 복용해 온 호르몬제의 영향이 모유에도 남아있을 수 있으니, 사흘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말고 재재검을 해보자는 거였다. 그 순간부터 유축한 모유는 고스란히 냉동고로 들어갔고, 그제야 난 완모 직수 신화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이곳 스위스에서도 산모에게 모유 수유를 적극 권장한다. 간혹 공원이나 백화점 휴식공간 등 조용한 곳에 앉아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아기 엄마를 마주치기도 한다. 생후 백일도 안되어 보이는 아기와 함께 공원에 나와 젖병을 물리고 있는 엄마들도 있다. 여기서 만난 아기 엄마들과 나의 초보 엄마일 때의 모습을 비교해 봤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태도인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기의 주관과 철학대로 육아하는 자세. 주변 사람들도 좋은 엄마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규정짓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사회 분위기. 먼저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