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2월 초가 되니 날이 점점 따뜻해졌다. 기분이 안 좋았다. 입춘이라지만 그리 기쁘지 않았다. 나 혼자 추워해야 하는 거잖아. 너무 싫었다. 쭉 겨울이었으면 했다. 긴 패딩 속에, 추운 날씨 속에 나를 묻어갈 수 있었는데, 날이 따뜻해지면 그럴 수가 없잖아.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게 두려웠다. 봄이 오면 내가 더 선명해질 거니까. 밝은 봄이 오면 내 그림자가 더 선명해질 거니까 무서웠다.
혼자 춥기 싫다고 다 같이 추웠으면, 하고 생각하는 내가 정말 한심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약에 내성이 생긴 건지 다시 이전과 똑같아졌다. 이 즈음, 약을 한 단계 높였다. 항불안제는 그대로 가져가되, 항우울제를 10mg에서 20mg짜리로 바꾸었다. 그렇게 약을 먹으니 조금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굴곡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다시 훅 가라앉았다. 늘린 약을 먹고 며칠 후엔 괜찮았다가 또 깊은 늪에 빠졌다. 자꾸 멍해졌다. 마음이 아파서 몸도 아팠다. 지독한 코감기에 걸려버렸고 머리는 몽롱해졌다. 하루 중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제일 안 좋았다. 오늘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건데, 언제까지 나약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허비해 버리는 걸까.
꿈을 안 꾸는 날이 없었다. 계속 깊게 못 잤다. 무의식 속에서 계속 답을 찾으려 했다. 그 답은 무엇일까. 무슨 질문에 대한 답일까. 그 질문조차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힘이 없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약을 먹고 있는 중에도 파동이 있는 게 맞았다. 그냥 유쾌한 영상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사람이 됐다가, 조금이라고 상처를 건드리는 순간이 오면 그 무엇도 즐겁지 않았다. 우는 일은 줄어들었다. 약의 효과는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2월 중순, 또 가라앉았다. 굴곡이 있다지만 너무 힘들었다. 도대체 몇 번째 가라앉는 건지. 사라지고 싶었다. 죽는다는 워딩보다는 사라지고 싶다는 워딩이 더 맞는 것 같았다.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다들 각자 몫은 해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뭐 하는 건지. 내가 나를 책임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무책임으로 회피해 버리겠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상처도 받지 않으려는 거, 즉 사라지는 거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하루에 수천번 씩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남는 게 뭐가 있나고. 좀 더 성장한 내가 있을 순 있겠지만 그 후에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이 걱정이었다. 괜찮아졌다는 것의 기준은 또 뭔지, 언제쯤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럼 원래의 나란 사람은 어땠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새로운 내가 된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차라리 어둠 속이 편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우울을 방패로 삼아 세상이 나에게 닿지 못하게 하고 있는 상태. 침에 위에 누워있어도 등부터 몸 전체가 바닥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추락하고 있는 건지 이미 끝까지 갔다 온 건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약을 계속 먹어보는 것.
약에 의존하는 것.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괜찮아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루고 미루던 문제가 떠올랐다. 휴학.
계속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몰라 두고만 있었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