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기로 한 병원은 엄마의 지인의 남편분이 하시는 병원이었다. 타 지역에 있는 병원이어서 매번 병원을 갈 때마다 기차를 타야 하는 점이 번거로웠지만 믿을만한 병원이라는 점 때문에 감수하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에 처음 방문한 날은 엄마와 함께 갔다. 아무래도 집에만 있는 나를 가장 많이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간의 일들과 감정의 변화들을 말해놓았기도 하고.
엄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내내 엄마는 내 눈치를 보았다. 그런 상황을 만드는 내가 너무 싫었다. 무기력하게 무표정으로 창 밖만 바라보고, 엄마가 건네는 빵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렇게 기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엄마한테 미안하고,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괜히 신경 쓸 일 하나 더 만들어주는 셈인 것 같아서, 내가 부모님한테 짐이 되는 존재인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하고 내가 너무 미웠다.
병원에 도착해서 데스크에 접수를 했다. 어떤 일 때문에 병원에 왔는지 묻는 질문에 우울증이 의심돼서 왔다고 했다. 접수를 하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데스크에서 나를 부르셔서 갔더니 여러 질문들이 적혀있는 종이를 주셨다. 우울증 진단을 위해 진료 전에 미리 하는 설문지였다. 강의 때 배운 정신과 교수의 이름이 설문지의 상단에 적혀 있는 걸 보고 순간 신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설문지에 응답을 다 끝내고 데스크에 제출한 뒤 다시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서 그간의 일들을 모두 말했다. 소속되어 있던 집단에서 나온 일부터, 믿었던 사람의 배신, 그리고 우울증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했던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모두. 이야기를 하며 많이 울었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엄마가 보는 요즘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질문하셨다. 엄마의 대답을 듣는 중에 울음이 섞인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와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내가 우울증이 맞다고 이야기하셨고, 내가 겪는 감정변화들은 모두 우울증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하셨다. 충분히 나을 수 있고,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우울증 초기에 병원에 일찍 잘 왔다고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 알이었다. 일단을 약을 약하게 써보고, 이만큼만으로는 안되면 약을 조금씩 늘리기로 했다.
약을 먹은 직후엔 뚜렷하게 변화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도 약을 먹고 있으니 괜찮아지고 있는 거겠지, 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두세 번 더 병원을 갔다.
병원을 처음 간 날이 12월 말이었고, 약을 늘리기 시작한 시점은 1월 말에서 2월 초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