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의 글
요즘 두 개의 기분 사이에서 널을 뛰고 있다. 일의 기쁨 같은 게 세상에 어디 있어, 사기꾼 새끼들, 염병할 자본주의! 와 같은 맹렬한 피로가 첫째 자리를 차지한 다음, 그래도 매일 아침 눈을 떠서 갈 곳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데에 미지근한 안도 혹은 자기 위로가 뒤따르는 식이다. 피로와 위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분을 내느라 제풀에 지친 나머지 퇴사라든가 사직이라든가 그런 것은 오히려 잘, 생각하지 않게 되고…
딸기가 직장을 잃으면 뭔지 아세요?
어느 날 옆자리 동료가 물었다.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는가 싶어 고개를 틀었다가 그의 입꼬리에서 웃음이 질금질금 새는 걸 보고 말았다. 짧은 사이 나는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동료의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주는 건 사회인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다. 뭔데요? 하고 되물으니 그가 냉큼 답했다.
딸기 시럽이요!
그는 더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양껏 웃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는 상대의 동조를, 아주 희미한 미소의 흔적이나마, 기다릴 수 없을 만큼 딸기 시럽이 웃겼던 거다. 한동안 야근이 잦더니 기어이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쩐지 나도 딸기 시럽이 웃겨지는 바람에 본래 다짐했던 것보다 더 크게 많이 웃었다. 급기야는 그 농담이 진심으로 좋아져서 이런 게 인지부조화 현상의 한 사례가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여기에 이렇게 글로 옮기고 있다.
여러분. 딸기가 직장을 잃으면 뭔지 아세요?
그때는 그냥 신나게 웃고 말았지만, 이제 와 감히 평하건대 농담을 나누기에 더없이 적절한 순간이었다. 입사하고 반년이 넘어갈 무렵이었는데 돌이켜 떠올려도 일이 많았다는 것 외에 여타의 세부가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자꾸만 뭐가 많았다. 어영부영 이것저것을 하는 동안 머리칼이 급격히 희었고 도무지 미용실에 갈 기력이 없어 이천오백 원짜리 카카오프렌즈 족집게를 구매해 부적처럼 모셔두었다.
그런 순간에, 매일의 과업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자칫하면 정말 일에 잠겨 죽을 수도 있겠다고 덜컥 겁이 나는 그런 때에, 싱거운 농담을 해서 남을 웃기려고 드는 이가 옆자리에 앉아있다는 건 예상 밖으로 대단한 감흥을 주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허술하고 헐렁한 데가 있게 마련이니까. 이 모든 일을 해내는 것도 망치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나도 얼추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겠고 혼자서 일하던 때와는 다르게 여기엔 퍽 사람이 많으니 나 하나쯤은 어찌어찌 묻어갈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기어이 이 모든 일이 망해도 까짓 인간 시럽이 되고 말지, 저 바보 같은 농담을 탓해버리자는… 글로 쓰니까 약간 이상한데 아무튼 용기를 얻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도 요즈음의 나처럼 일하는 게 싫다가 좋다가 할 사람에게 심정적으로나마 보탬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오고 있으니까 귀신이 나오는 얘기인데, 단칸방 독립생활이 답답해 처음으로 아파트 월세를 결심한 무렵의 일이다.
풀옵션 원룸보다 세가 저렴한 아파트라는 게, 새롭게 구매해야 할 살림의 목록과 관리비 같은 걸 계산에 넣기 시작하면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몸집이 큰 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자연히 세간도 함께 불어날 테니 다음번 이사부터는 용달차 기사님이 아니라 포장이사 업체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도 예상되는 문제점 중의 하나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주방과 분리된 거실에 큰방 하나와 작은방 하나, 작은 베란다가 딸린 집이었다. 안에서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까 숨통부터 탁 트였다.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거리가 멀어져 어쩐지 시력도 조금 좋아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작은방이 기꺼웠다. 함께 사는 사람과 사이가 좋아도 타인의 기척이 싫은 날은 온다. 그런 때마다 화장실에 틀어박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집안을 쓸고 닦을 때마다 내가 무슨, 어연번듯한 영지를 갖춘 영주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우스운 소리지만 정말 그랬다. 물론 영주에만 감정이입을 한 것은 아니고 어떤 날에는 드라마 〈브리저튼〉 OST 따위를 틀어놓고 높으신 귀족 나리를 맞이할 준비에 바쁜 하녀 따위에 빙의해 미뤄둔 집안일을 해치웠다.
나는 그 집이 정말로 좋았다. 그런데 동거인 K는 어땠냐 하면, 처음에 그곳을 좀 탐탁지 않아 했다. 이사를 하고부터 꿈에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온다는 거였다. 딱히 뭘 하는 건 아닌데 그냥 나타난다고 했다. 대체로 현관 앞이나 화장실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식이었다. 한 번은 자동차 트렁크를 열었는데 안에서 그 여자가 불쑥 일어난 적도 있다고 했다. K는 그 대목을 말할 때 특히 질색했다.
무심히 들어 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의 꿈에 들어가서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나더러 어쩌라는 건가 싶었고…
아니, 귀신이라니? 어디까지나 K의 꿈 이야기일 뿐이기는 하지만, 소중하고 귀중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집에 귀신이 산다니? 귀신이 그의 꿈에만 나온다는 것도 곱씹어 볼수록 썩 마땅찮았다. 계약서에 서명한 건 난데, 그러니까 이 가구의 명실상부한 세대주는 나인데 와서 읍소를 하든 협상을 하든, 담판을 지으려면 나하고 지어야 할 것 아니냔 말이다.
어디 마주치기만 해 보라지. 매일 밤마다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꿈에서도 나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가전제품 위나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창틀에 끼인 흙먼지를 닦아내면서 온 집안을 쏘다녔다. 그러다 보일러실에서 커다란 마대자루를 여러 장 발견했다. 쓸모가 없거나 더는 쓰지 않을 것들을 자루 안에 추려 담았다. 이상하게 집안에 자투리 수납공간이 많고 내 것 아닌 낯선 물건이 여럿이었다.
그런데 정말 K의 말처럼 집안에서 웬 여자가 불쑥불쑥 나타나는 거라. 문 뒤에 가만히 있다가 내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튀어나와 어깨를 치고 지나가고, 거실이 널찍한데 좀 멀리 가 있기라도 하든지 걸레질하느라 바쁜 사람 앞에서 서성거리고, 욕실 앞에 우두커니 선채 비켜주지 않아 통행에 지장을 초래하고, 안방 한가운데 커다란 궤짝이 놓여있기에 안에 뭐가 들었나 하고 뚜껑을 젖혔는데 그 여자가 들어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집안일에 꽤 진심인 편이다. 빨리 청소를 끝내서 모든 것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제 자리를 찾은 가운데 나만 혼자 아무렇게나 너부러지고 싶었기 때문에, 궤짝 안에서 여자가 불쑥 솟아올랐을 때 내 더러운 성질머리도 함께 솟구쳤다. 그래서 들고 있던 빗자루를 바닥에 팍! 내팽개치고는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그래 귀신하고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사는 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여기는 내가 계약한 내 집이고 매달 집세도 지불하고 있는데 남의 집에 막 들어와서 이렇게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게 이치에 맞느냐, 정히 내가 여기 사는 게 억울하고 아니꼬우면 정정당당하게 당신이 나를 대신하여 세를 내시든가, 제 손으로 직접 벌어먹을 수도 없는 주제에 유세 부리는 법만 배워가지고 죽어 나자빠지면서 수치심도 갖다 버리셨냐!라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말이 너무 심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날은 꿈에서 온갖 짜증을 다 내다가 욕실에서 뭐가 퍽, 터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세면대 배수관이 해져서 사방에 물난리가 났는데 뭐, 거기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정말로 낡은 아파트였기 때문에 충분히 일어남직한 사고였다. 우리 엄마 말씀처럼 귀신이 분풀이를 한 거라 손치더라도, 상관없었다. 철물점에 가서 천사백 원을 주고 튼튼한 새 배관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와 K는 더 이상 그 여자가 나오는 꿈을 꾸지 않았다.
일이 하기 싫어질 때마다 꿈에 나왔던 그 여자를 떠올리고는 한다. 집세를 내는 한 내가 귀신보다 강하다. 이제는 내 동료의 가르침 덕분에, 잠깐 인간 시럽이 되어도 별로 문제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어차피 귀신은 산 사람의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잘 모를 테니까. 제까짓 게 집주인이 소리 지르면 나가야지 어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