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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졔이 Aug 17. 2023

그러니까 그런 줄 알아

2019년 6월의 글

동거인 K는 6일 단위로 산다. 이틀은 늦은 밤에 출근해서 대낮이 되어 돌아오고 그다음 이틀 동안에는 대낮에 나갔다가 늦은 밤에 돌아온다. 그러고서야 쉬는 날이다. 일주일이 6일인 K와 한 주의 시작이 토요일인 나는 남들이 보기에 이빨이나 나사가 한 군데씩은 빠진 채인데 그럭저럭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지낸다.


우리는 대체로 남들이 일할 때 놀기에 상대가 쉴 때 일한다. 칠석이 오듯 휴일이 같으면 서로의 책임으로 슬쩍 밀어두기 바빴던 집안일을 함께하고 우리가 기르는 게 개가 아니라 고양이라 적어도 산책의 책무로부터는 자유로움을 안도하고 우리의 생존이 궁금한 이들이 뭔가를 물으면 집에서 얼굴보고 밥 먹는 게 데이트지 뭐,라고 답한다.


얼마 전엔 K와 나란히 누웠는데도 도통 잠이 오지를 않았다. 갑자기 침대 위에 이불이 두 채인 게 싫었다. 우리는 심지어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도 아니야, 생각하다가 슬쩍 K가 덮고 있는 이불을 나도 덮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순간 K가 방귀를 뀌었다.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뭔데 귀엽지,라고도 생각했다.

 

상념은 번져서 엄마에게까지 닿았는데 엄마는 자꾸만 나더러 남의 집 멀쩡한 아들의 신세를 망치려느냐고 물었고 거기에 분개한 내가 남의 집 아들이 댁네의 딸보다도 걱정이 되느냐고 역정을 내니까 엄마는 요즘 계집애들 하여간 무섭다며 학을 뗐고 그래서 나는 엄마도 요즘 사람이야, 요즘 사람! 그렇게 말을 했는데 엄마는 그 말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근래 들어 자꾸만 자기를 요즘 사람이라고 한다. 


기르는 고양이는 건사료를 통 먹질 않는데 물론 통조림은 비싼 만큼 맛있겠지만 건사료를 먹지 않는 고양이의 이빨이 썩기가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고양이에게도 임플란트가 가능한지 어쩐지는 몰라도 어느 쪽이든 고양이가 겪어야할 일치고는 가혹하고 한편으로 고양이의 건강이 인간의 경제에 끼칠 파급력이 우려되고… 정말 그럴까, 정말 내가 K와 살고 고양이와 살아서 저들의 신세를 망치고 있을까. 


사랑이 적은 내게도 걱정은 이만큼인데. 세상에 불행이 하고 많은데.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났다. 잠든 줄만 알았던 K가 구겨진 내 미간을 슬슬 문질러 펴면서 왜? 했다. 마땅히 답할 말이 없었다. 지금이 좋은데 지금은 지금뿐이라 너무 섭섭하다고 털어놓기는 멋쩍고 내가 너를 좋아해서 미안하다고 하자니 90년대 락발라드 감성이고. 그래서 그냥 으응, 좋아서, 그랬다. 


좋아서 인상을 쓰고 끙끙거렸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나는 K가 뭐라도 더 물어올 줄 알았다. 하지만 K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얼마 안 가 잠들어버렸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는데 태평히 오르내리는 K의 아랫배를 보니까 나도 조금 졸음이 왔고 잠들기 직전엔가, 나는 K가 잠든 이유를 이해했다. 그렇잖아. 


다 좋아서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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