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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졔이 Aug 17. 2023

마무리의 마무리

2017.08 월간에세이

동생과 싸웠다. 그녀와의 신경전이야 빈번하여 별 일이야 아니지만, 이번엔 싸움이 좀 컸다. 청소가 문제였다. 이럭저럭 분담하여 지내온 편이었음에도, 집안일은 매번 새롭게 불어나는 듯했다. 도무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눈만 뜨면 속절없이 아수라장이었다. 결국 엉망을 견디다 못한 내가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네가 짐승이야! 소리침으로써 전쟁의 막이 올랐다. 


한차례 다툼이 있고나서, 그러니까 책임 못질 큰소리가 엄청나게 오간 다음에, 우리는 한동안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억울한 것 같았다. 설거지도 빨래도 하는데 자기가 왜 짐승이냐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가 집안일에 아주 손을 놓고 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보탬이 되는 것 같지는 또 않았는데, 꼭 하나둘씩 손이 가는 일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싸움이 났으니 언니된 도리로써 이겨야 했다. 가사노동에 할애되는 시간을 급여로 환산해보기로 했다. 두 사람이 나누어 지불하는 월세와 관리비 따위에 계산한 비용을 합했다. 엑셀 시트를 활용해 통계를 냈다. 그녀는 내게 매달 삼십만 원씩 빚지고 있었다. 동생을 이겨먹기 위한 수고치고는 퍽 전문적인 접근이었다.  


우리 집에 이렇게 할 일이 많다고? 나의 보고서를 접한 그녀의 첫말이었다. 글쎄, 나도 그게 의문이었다. 두 사람의 생활공간이라고 해 봐야 댓 평 남짓, 두 사람과 고양이 한 마리 분의 가사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할 일이 그렇게 많았다. 벙벙한 얼굴을 한 동생에게 집안일을 세분화하여 만든 목록을 추가로 보여주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자 명확해졌다. 그녀는 집안일이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행동의 묶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예컨대 설거지를 한다, 는 것은 그릇을 씻고 거름망을 비우고 거름망과 물구멍에 낀 물때를 제거한 후 개수대의 물기를 닦는 것을 의미했다. 행주가 젖은 김에 냉장고 문짝의 얼룩을 지우고 행주를 빨아서 넌다. 그사이 마른 그릇을 수납한다. 그러면 하나의 일이 끝난다. 이런 것을 모르고 번갈아가며 일하자는 약속이 공평하다고 생각했으니.


동생에게 집안일이 몇 겹이나 소외된 노동이란 사실을 설명하면서, 나는 세탁기와 청소기가 일상적인 시대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녀에게, 그것들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또 하나의 노동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당연히 그녀는 세탁기를 돌릴 줄 알았다. 하지만 세탁기도 청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청소기도 청소해야 한다는 건, 모르는 게 아니었고,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이것은 승리의 기록인바, 요즘 동생은 노력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동거인 관계가 아니라 단지 자매이던 시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치워주는 곳에 살던 시절에, 자기가 집안일을 하면 왜 일 만들지 말라는 타박만 돌아왔는지 알 것 같다고, 문득 고백하기도 했다. 나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동생이 철든 것 같다고 하자 엄마는 절반만 유쾌해 했다. 증언에 따르면 우리가 함께 살던 시절, 만만찮기는 나도 매한가지였다는 것이다. 어디, 이제 나도 밀린 월급 받아볼 수 있는 거니, 하시기에 웃을 밖에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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