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몸-마음-삶인가
얼마 전 점심시간, 동료가 내게 무심하게 말했다.
“마음은 따뜻한데, 그 온기를 품을 체력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순간 칭찬인지 지적이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괜히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이 떠올려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60대인 엄마보다 체력이 약한 나는 평소에는 웃음도 많고 누군가 돕는 걸 즐기지만, 피곤이 몰려오는 날이면 금세 달라진다. 지하철 안에서 인상을 찌푸린 채 서 있거나, 일이 몰린 시기에는 동료의 작은 부탁에도 “왜 내가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올라오곤 한다. 체력이 바닥나면 말투는 짧아지고,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는 눈빛도 굳어버린다.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가 남긴 격언, “Mens sana in corpore sano(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 심리학 연구에서도 신체 활동이 우울·불안을 완화하고,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수면과 면역이 약화된다는 결과가 보고된다(미국심리학회, 2019). 닥터U로 잘 알려진 유태우 교수 역시 “내몸·내맘·내삶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라고 말한다.
좋다는 이론은 많다. 그러나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나는 거창한 루틴 대신 매일 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을 선택했다.
수면 리듬 지키기: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침대에서는 휴대폰 멀리 두기.
움직임 늘리기: 점심시간 15분 걷기, 계단 이용하기, 한 시간마다 스트레칭.
먹는 것 관찰하기: 과식은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 챙기기.
‘무(無)의 시간’ 확보하기: 하루 10분 호흡에 집중하거나 멍하니 있기.
신체 신호 듣기: 두통·소화불량·지속 피로가 반복되면 일정 조정하기.
이런 습관들은 즉각적인 기적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작은 적립처럼 쌓인다. 몇 주가 지나면 감정 기복이 완만해지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여유가 생긴다.
돌봄은 신기하게도 연결된다. 가족을 위해 밥을 챙기다 보면 나도 건강하게 먹게 된다. 남을 돌보다 보면 나도 함께 건강해지고, 나를 돌보다 보면 주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몸-마음-삶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자기돌봄은 결국 공동체의 돌봄이기도 하다.
물론 습관을 꾸준히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얼마 전에는 밤낮이 바뀌고 지방 출장이 이어지면서 식사·운동·수면 습관이 모두 무너졌다. 몇 주가 지나자 몸은 급격히 망가졌고, 병원을 다니며 약에 의지해야 했다.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회복을 시작했다. 첫 주차에는 식후 15분 걷기, 그다음 주에는 채소 위주 식단, 이후에는 바른 자세와 스트레칭. 건강이 무너지고 나서야 다시 자기돌봄을 시작하는 날이 반복되지만, 중요한 것은 회복할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 위기를 더 빨리 이겨내는 장치가 된다.
또 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돌봄 신호’를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오늘 컨디션이 별로라 목소리를 줄일게요” 같은 짧은 말은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장치가 된다. 서로의 상태를 존중할 때 돌봄은 훨씬 수월해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권한다. 오늘 단 한 가지라도 선택해보라. 수면 30분 앞당기기, 점심에 10분 걷기, 약속 하나 건너뛰기. 사소한 변화가 쌓이면 체력은 회복되고, 마음은 가벼워지며, 삶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몸-마음-삶은 서로 기대며 빚어지는 관계다. 그 관계를 돌보는 일이 곧 자기돌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