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난히 씁쓸함이 자주 스쳐갔다.
주말 사이, 한 동료가 반가운 소식을 들고 왔다.
2년 동안 이어진 개인 소송에서 마침내 이겼다며 점심 자리에서 환하게 웃었다.
처음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오래 머물기도 전에, 몇 달 전 패소했던 나의 행정소송이 문득 떠올랐다.
가족이나 산재 관계자 외에는 내가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너무 무겁고, 그렇다고 고민을 나누자니 그럴 성질의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오랫동안 홀로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나와 달리 동료는 밝게 웃으며 그간의 고생을 털어놓고 있었다.
부러웠다.
‘나도 이겼다면 저렇게 웃었을까.’
기대는 실망을 낳는다는 걸 잘 알기에, 애초에 승소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승소한 동료 앞에서 나는 남몰래 씁쓸한 마음을 삼켰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어, 잠시 틈을 내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저 “이런 일이 있었어.”
짧게 말한 게 전부였다.
산재 준비를 늦게 시작해 증거가 소멸된 점이 아쉬웠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해봤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미련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란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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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오랜만에 예전 제자들을 만났다.
25살 선생님과 17살 학생으로 만났던 우리.
이제 제자들이 스물다섯이 되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졸업 이후 처음 만난 제자도 있었고,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서로의 삶을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각자의 인생에는 여러 굴곡과 고민이 담겨 있었다.
험난한 시절을 함께 버텼던 사이답게,
우리 사이엔 묘한 전우애 같은 것이 있었다.
나도, 아이들도.
서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네는 모습이 참 어여쁘고 귀했다.
그 아이들이 참 고마웠다.
서툴지만 성실하게,
어쩌면 나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라 느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고민을 들으며 또 한 번 씁쓸함이 스쳤다.
나와 떨어져 있는 사이,
세상의 풍파를 견뎠을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나 역시 아프고 쓰라린 시간을 통과했지만,
다른 이들의 아픔을 떠올리자니 내 일처럼 아팠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길었다.
주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왜 이렇게 씁쓸하게 느껴질까.
아마도 그 염원이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부디,
지금의 이 모든 과정이 ‘과정’으로 지나가기를.
나의 친구들아. 나의 제자들아.
지금 겪는 이 고통도 언젠가 다 지나가길.
오늘은 참으로
씁쓸하고 아리고 쓰라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