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의 코치가 될 수 있다면

by 성장썰

그 애는 카페에서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는데, 손은 여전히 따뜻한 무언가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 진로 다시 고민 중이야.”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았다.

얘는 늘 갈림길 앞에서 오래 서 있는 사람이니까.

“안정적인 길을 가야 할지…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애는 웃으며 말했지만,

빨대를 괜히 눌렀다 놓는 버릇이 나왔다.

저건 불안할 때 나오는 신호다.

나는 십 년 동안 그 장면을 여러 번 봤다.

“내가 봐온 너는 말이야,”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사람이나 동물 이야기할 때 제일 살아 있어.

눈빛이 달라져.

솔직히 연구실에만 있는 학자보다는

현장에서 뛰는 사람이 더 어울려.”

그 애가 고개를 들었다.

“진짜 그렇게 보여?”

“응. 근데 동시에… 넌 정이 많잖아.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도 많이 받아.

그게 너의 강점이자, 네가 힘들어하는 지점이야.”

그 애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내 말을 곱씹는 듯 표정이 조금 무거워졌다.

“맞아. 나 너무 쉽게 상처받아.”

잠깐 정적이 흘렀다.

카페 안은 시끄러웠는데, 우리 테이블만 조용했다.

“근데… 해보고 싶긴 한데 무서워.”

그 애가 낮게 말했다.

“괜히 실패하면 어쩌지.”

나는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 싶어 일부러 웃으며 말했다.

“넌 왜 또 시작도 전에 최악부터 상상하냐.”

“그러게…”

“낯선 거 무서워하는 성향이잖아.

그럼 두려움을 작게 만들면 되지.”

“어떻게?”

“절친이랑 같이 가보고 싶다는 기관에 먼저 가봐.

동물 복지에 관심 있다 했잖아.

센터 봉사부터 해보는 거야.

완전 올인 말고, 발만 살짝 담가보는 거지.”

그 애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표정을 보며 나는 알았다.

얘는 또 한 번, 천천히 자기 길을 걸어가겠구나.

중간에 울면서 전화할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언어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반복을 아는 것일까.

사람은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괜찮다면서도 손을 떨고,

해보고 싶다면서도 몸을 뒤로 뺀다.

그래서 때로는 나 자신보다

나를 오래 본 타자가

더 정확하고 다각도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언어와 생각에 갇혀 보지 못한 나를

조용히 비춰준다.

그날 나는 친구였지만,

동시에 그의 라이프 코치이기도 했다.

나는 대단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그가 이미 가지고 있던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고,

망설이며 앞이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는

함께 수풀을 조금 걷어냈을 뿐이다.

상담실에서만 삶의 고민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꼭 전문가만이 삶을 이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와의 상담시간도 유의미하지만,

더 긴 시간을 함께한 가족과 친구,

동료와 연인은 그 사람의 결을 더 깊이 안다.

언제 그의 눈이 반짝이는지,

언제 두려움에 작아지는지,

어디에서 늘 멈추는지.

우리가 서로의 시간을 기억해 주고,

넘어질 때 패턴을 짚어주고,

가능성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면

우리는 이미 서로의 코치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서 서로의 라이프 코치가 되면 좋겠다.

“그간 내가 봐온 너는 이런 사람이야.”

“넌 늘 이 지점에서 멈추더라.”

“두려움을 줄이는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

혼자 길을 찾으라 말하는 대신,

옆에 앉아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사람.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덜 흔들릴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한 답을 주지 못해도 괜찮다.

오래 축적된 시간과 기억, 애정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든든한 라이프 코치가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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