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멈추게 하는 말과 나를 움직이는 말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잘 알려진 회복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1897년 교향곡 1번 초연에서 큰 실패를 겪었다.
연주는 좋지 않았고 평도 혹독했다.
그 일은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았다.
라흐마니노프는 깊은 침체에 빠졌다.
몇 년 동안 거의 작곡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의사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이름은 니콜라이 달.
그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자기 암시 요법을 시도했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나는 협주곡을 완성할 것이다.”
“나는 성공적으로 이 작품을 써낼 것이다.”
이 문장을 반복해서 듣고,
스스로도 되뇌게 했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작곡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한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그는 이 곡을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했다.
이 일화 때문에 자기 암시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두려움은 사람을 멈추게 한다.
불안은 사람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긍정 확언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모든 자기 암시가 효과적일까?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이다.
나는 백억 부자가 될 것이다.
나는 세계 최고의 자산가가 될 것이다.
이런 말은 종종 공허하다.
현실과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내 욕망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세상이 좋아하는 성공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럴 때 자기 암시는 힘을 잃는다.
그래서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두려움은 이런 것일 수 있다.
내 글이 형편없으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필요한 문장은
“나는 위대한 작가가 될 것이다”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말일 수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오늘 한 문장을 쓸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문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는 역사에 남을 걸작을 쓸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반복했다.
나는 협주곡을 완성할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성공적으로 써낼 것이다.
막연한 확언은 약하다.
구체적인 확언은 다르다.
긍정 확언을 통한 자기 암시는
무너진 사람이
다시 자기 안의 가능성을 믿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
사람을 움직이는 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타인의 박수에서 온 문장도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정말 필요한 말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끝까지 가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