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시간을 받아들이기
남편이 술집을 시작한 뒤, 우리 집의 저녁은 텅 비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불 꺼진 거실이 먼저 나를 맞았다. 인기척 없는 집, 너무 조용해서 내가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시간. 처음에는 그 적막이 낯설었다. 사람 하나 없는 집에 혼자 들어서는 일이 생각보다 더 쓸쓸했다. 그래서 현관문을 닫자마자 습관처럼 유튜브부터 켰다. 누군가의 목소리라도 흘러나와야, 비로소 집 안에 숨이 도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일곱 시쯤 집 앞 피아노 교습소에 갔다. 한 시간 남짓 건반을 두드리고 돌아와도 밤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어떤 날은 심심해서 학교 운동장을 빙빙 돌았다. 특별히 운동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집에 너무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걷고 들어와 샤워를 마치고 시계를 보면 아홉 시, 잘해야 열 시였다. 그때마다 조금 막막했다. 아직 자긴 이르지 않나. 이 긴 저녁을 뭘로 더 채워야 하나.
예전에는 비어 있는 시간이 어딘가 낭비 같았다. 계속 채우려 했다. 일찍 잠드는 것도 왠지 아까웠다. 그래서 또 영상을 틀고, 또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무언가를 계속 넣고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조용히 있는 건 쉬는 일이 아니라, 견디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저녁이 반복되자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날은 침대에 기대앉아 있다가 졸음이 스르르 밀려오는 걸 그냥 두었다. 어느 날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있다가 문득 화면을 끄고 눈을 감았다. 꼭 뭘 하지 않아도 시간이 간다는 걸, 저녁이 꼭 알차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몸이 조용해지자고 할 때는 그냥 조용해져도 된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꾸 더 밝아야 할 것 같고, 더 움직여야 할 것 같고,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속도를 따라가려 하면 마음이 먼저 지치고, 그다음엔 몸도 따라 지친다. 반대로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 있으면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도 덜 피곤하다. 집에 돌아온 뒤 오히려 에너지를 얻을 때도 있다. 삶도 비슷하다. 억지로 끌어올린 에너지보다, 내게 맞는 리듬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훨씬 덜 소모적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건 처음엔 뜻밖의 변화였다. 그런데 그 시간 덕분에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혼자 산책하고, 멍하니 앉아 있고, 천천히 집안일을 하면서 나는 나에게 맞는 속도를 조금씩 배워갔다. 힘을 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때로는 힘을 빼는 것이 더 건강한 방식이었다.
요즘의 나는 예전처럼 저녁을 다 채우려 애쓰지 않는다. 조용한 집에 들어와도 곧장 무언가를 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졸리면 자고, 멍하니 있고 싶으면 그냥 있는다. 빈집의 저녁은 여전히 조용하다. 다만 그 조용함이 이제는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도 속도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조금 덜 해도, 조금 더 고요해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에너지의 높이와 삶의 속도가 있다. 예전의 나는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자꾸만 더 채우고 더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늘 더 많은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덜어내는 것이었고, 가만히 두는 것이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저녁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저녁이 늘어나며 나는 알게 됐다. 비어 있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시간이 오히려 사람을 회복시킨다는 것을. 나에게 맞는 속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