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의서랍] 또 하나의 가족

by 바스락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1시 20분.

화장실을 가려고 방을 나왔는데 온통 깜깜한 가운데 안방에서 가늘게 빛이 새어나왔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남자의 목소리도 안방 문틈을 넘어 복도 바닥에 낮게 깔리고 있었다.


‘하… 오늘밤도, 오늘밤도 또 이런다고?’


아니길 바라며 살금살금 안방 쪽으로 다가갔다. 한 발, 한 발 다가갈수록,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해질수록 속이 뒤틀렸다. 문을 살며시 열자 어제, 그제와 똑같은 모양새로 아빠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구형 핸드폰을 쥔 손을 귀 가까이에 붙이고, 눈을 감은채로.

핸드폰에서는 한 남자가 쉴새없이 북한의 군비와 전쟁 위험성에 대해 위엄있는 목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잠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핸드폰 화면을 살짝 건드렸다. 그 시끄럽고 잘난체하는 목소리가 꺼지니 속이 좀 풀릴 것 같았다. 돌아서려는데, 아빠가 눈을 떴다.


“나 듣고 있던거야.”

“왜 안주무세요, 지금 몇신데.”

“그러는 너는? ”

아빠의 유치한 반문에 꾹 눌러놨던 마음이 짜증이 되어 터져나왔다.


“나는 자다가 화장실 가느라 깼지, 아빠 방에서 소리가 나길래 와본거고. 밤에 자기 전에 TV도 못보게 하던 사람이, 왜 이제는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는 것도 모자라서 자면서까지 켜놔요?”


70세 중반인 아빠는 요즘 어림잡아 10시간은 유튜브와 함께 한다. 밥을 먹거나 길을 걸을 때 빼고는 늘 이놈을 꼭 쥐고 산다. 내가 알던 아빠는 이렇지 않았다. 아빠는 문명의 이기에 늘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살던 사람이었다. TV는 딱 뉴스만 보고, 컴퓨터는 칼같이 50분 사용에 10분 휴식을 지키던 사람. 그뿐인가. 스마트폰도 필요없다고 버티다 겨우 가장 저렴한 모델로 하나 구입하고, 그마저도 필요할 때만 전원을 켜는 바람에 아빠의 지인들이 ‘종호한테 무슨 일 있나요? 연락이 통 안되네요.’ 라고 엄마에게 결국 연락하게 만든 사람.

그러던 아빠가 이제는 유튜브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긴 시간 서서히 아빠의 삶에 스며들었다. 시작은 슈베르트였다. 내가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 아빠의 전축이 고장났다. 거실에서 눈을 감고 슈베르트의 가곡을 감상하던것이 아빠의 오랜 취미였는데, 더 이상 할 수가 없으니 눈에 띄게 허탈해하는 것이 보였다. 효도하는 마음으로 아빠에게 유튜브를 알려줬다. 싫어할 줄 알았던 아빠는 유튜브가 처음 들어보는 마리아 칼라스의 음원을 알려주자 마음을 바로 열었다. 이후 아빠의 재생목록은 세계의 소프라노, 테너 가수들로 채워졌다.

몇 년 뒤 아빠는 은퇴하셨는데 그 때 또 한번 유튜브가 중요하게 역할을 맡았다. 평생 학자로 살던 아빠답게 남는 시간에 양자역할을 비롯한 물리학을 공부해보겠다며 유튜브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탠포드, 하버드의 강의를 들으며 두껍고 어려워보이는 물리학 원서를 뒤적이는 모습은 아빠를 ‘터덜 터덜 노인이 된 친구들과 괜스레 모여, 동네 상가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집에 가는 은퇴자들의 무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아하게 접근한 유튜브가 뒷통수를 칠 줄이야. 결혼 후 10년 가까이 따로 살다가 올해 잠시 부모님집에서 살게 되었을 때에야, 나는 유튜브가 우리 아빠와 그렇게 질척한 사이가 되어 있는줄 알았다. 아빠의 핸드폰에선 마치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기라도 할 듯이 삼프로가, 아웃스탠딩이, 알지 못하는 국방 채널과 역사 채널이 쉬지 않고 재생되고 있었다. 외이염 걱정에 이어폰 없이 소리를 키우고 보기 때문에, 참다 못한 엄마가 머리아파 죽겠다면서 화를 내면 그 때서야 … 끄지 않고, 또 핸드폰을 꼭 쥔 채 슬그머니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둘의 관계는 너무나 돈독하여, 이렇듯 마누라가 불같이 호령을 해도, 자식이 타박을 해도, 손주들이 시끄럽다고 해도 끊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밤마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자는 통에 엄마는 결국 손주방으로 도망갔고, 결국 유튜브는 아빠의 밤과 침대까지 차지하고야 말았다.


유튜브를 왜 이렇게 보냐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아빠는 꺼진 유튜브 화면을 보았다.

“내가 알아서 할께, 얼른 가서 자.” 내가 얼른 나갔으면 하는 표정, 그리고 나가면 바로 재생 버튼을 누를 듯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30년도 전, 수능 모의고사 공부를 한다면서 문제집 밑에 숨겨둔 만화책을, 아빠가 내 방에서 나가기만 하면 바로 펼쳐봐야지라고 생각했을때 드러났을것 같은 바로 그 표정과 얍쌀한 손가락을 내가 70살이 넘은 아빠에게서 보게 되다니… 기가 찼다. 곱게 나갈 수 없었다. 오히려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매일 피곤하다고 하면서, 손주들한테는 30분만 핸드폰을 보라고 하면서 아빠는 도대체 왜 이런거야?”

“심심해. 할 게 없어.”


아 …

싸울 준비가 다 되어 있던, 어깨까지 들썩이던 나는 싸우지도 못하고 어깨를 떨어뜨렸다. 알았다고, 얼른 주무시라며 방문을 닫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빠는 본인 분야에서는 반짝였을지 모르지만, 은퇴 이후에는 오래된 학자 특유의 엉성한 생활력을 보일 일만 남았다. 집안 일은 손에 익지도 않고, 설령 한다 해도 엄마의 의도와 다르게 일을 해놓는 바람에 구박을 받기 일쑤다. 손주들과 놀아준다고 해도, 아이들은 굼뜬 할아버지에게서 몇 분 만에 벗어나버린다. 나와 남편은 각자의 일과 육아에 허덕여 아빠에게 긴 대화를 건낼 틈을 만들지 못한다. 우리집에서 아빠 곁에 있는 건 오래된 반려견 한 마리. 유튜브를 볼 때 잔소리를 하지 않는건 그 녀석 뿐이니까. 누구도 묻지 않는 하루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에 유튜브는 가족을 대신해 아빠에게 구독과 좋아요를 원하고 끊임없이 재잘되니 아빠가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닫은 문 뒤로 유튜브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아빠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버린 그것이.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서랍의서랍] 안녕, 1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