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나홀로 2박3일 - 셋째날 이야기 (1)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날씨가, 구름이 끝내준다.
전날 밤, 매우 늦게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 깜박 잠들었다 깨보니 12시정도였는데, 유튜브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몇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의 요약본을 보다가 시간이 훌쩍. 2시간 반이 넘는 긴 영상을 다 보고, 그리고 나서도 한참 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드라마 요약본같은 걸 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보니 묘하게 빠져들어 보았다. 아마 일상생활중이었다면 시간을 그리 흘려보내는 걸 용납할 수 없어 하지않았을 일인데 여행중의 일탈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고민하다 잠못드는 밤이 아니었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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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날 조식은 어제와 거의 비슷한 메뉴라, 역시나 쌀국수와 계란, 빵, 과일과 요거트를 먹었다.
삶의 여러가지 선택 중 하나 가운데 계란 요리도 포함된다.
스크램블, 오믈렛, 써니사이드업, 삶은계란...
나는 양파와 버섯이 들어간 오믈렛을 좋아하는데, 가끔 달걀프라이가 땡길때가 있다.
어릴때 가끔 두통이 있었다. '엄마, 나 머리아파.'라고 하면 엄마는 그날부터 매일 달걀프라이를 먹이셨다. 엄마 나름의 단백질 공급원이었겠지. 그런데 그 기억이 세포에 새겨졌는지, 달걀프라이는 나에게 무언가 정성과 사랑이 배어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 비빔밥이나 김치볶음밥 위의 달걀프라이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생각이 문득 나서, 오늘은 써니사이드업의 프라이를 먹었다.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은 호텔이었는데... 부부구나, 싶은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에서는 대부분 많은 대화가 없다. 음식을 가져오고, 각자의 핸드폰을 보고, 서로를 쳐다보지 않은채 음식을 먹는다. 부부나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갇히면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없어지고, 대화가 줄어드는 관계가 된다면 비극인걸까, 아니면 대화가 없어도 통하는 평안한 관계, 익숙한 관계라면 괜찮은걸까.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두 사람이 함께인 여행이라면, 혼자가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상주의자, 감정형인 로맨티스트라서 어쩔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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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에 예쁜 욕조가 있어서 아침을 먹고 방에 들어가 반신욕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결국 못했다. 왜냐하면... 업무 문자가 대폭탄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짐을 정리하고, 반신욕을 하며 충분히 쉬고, 즐기다 체크아웃을 하고싶었던 나의 일정은 카톡과 전화에 묻혀 그렇게 사라졌다.
대신 짐을 다 정리하고 한 이십여분 정도 남기고, 베란다에 앉아 바다를 보며 호텔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고요히, 평화롭게 즐겼다. 매우 뜨거운 날이었는데, 구름이 너무 예뻐서 무더위여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 프런트에 캐리어를 맡기고, 노트북을 들고 어제 갔던 카페에 다시 갔다. 역시나 마음에 드는 곳이다. 여행지에서 이틀 연속 같은 카페에 가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인데, 두번째날도 역시 좋았다. 더 괜찮은 다른곳을 찾아 헤메이는 것보다는 동선을 줄이고 고요히 쉬다 돌아가는 일정이 좋을것 같았다.
이 날, 옆테이블에 한국인 커플이 앉아 있었다. 2박3일의 여행중 처음 만난 한국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이 한국인임을 눈치챈 것은 작은 소리로 쿡쿡. 웃는 것 같은 소리때문이었다. 웃음소리만 들어도 내나라 사람임을 알아챌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한국인이구나, 생각하고 나중에 보니 여행을 많이 다니는 커플인 것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그들에게는 이 도시가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여러 여행지를 다니는 상황이었다면 이 도시가 바다 외에는 특별할 것 없는 관광지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고, 만약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면 너무나 뜨거운 동남아의 햇살에 질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편안하고 소박하면서도 매력있었던 도시였는데, 같은 일정으로 지낸다해도 여러가지 상황이나 경험에 따라 다른 인상을 남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여행도 어쩌면 사람 사이의 인연과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도 결국엔 타이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