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나홀로 2박3일 - 셋째날 이야기 (2)
비행기는 오후 늦은시간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조금 쉬다가 공항에 가면 될 것 같았다. 어제 가려다 못간 시내의 식당을 검색하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조식을 먹었던 호텔 레스토랑의 런치메뉴가 괜찮다는 글을 보기도 했고, 이만한 전망에 이만한 식당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돌아가는 날이 되니 새로운 경험보다는 익숙하고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다.
화요일이라 주말에 북적이던 여행객들이 모두 빠져나간건지, 조금 늦은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당이 엄청 넓은데 나 혼자 앉아 있으려니 살짝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한쪽 구석에서 냅킨과 그릇들을 정리하던 직원들이 내가 들어오니 부산하게 움직였고, 실내가 살짝 덥네? 생각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에어컨을 틀었다.
나 한사람 때문에 이 커다란 식당의 에어컨을 튼다고 생각하니 민폐손님인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없었다면 에어컨없이 일하고 있었을 직원들에게는 좋은 일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나 다음으로 두서너 테이블의 손님이 들어오기도 했다.
파스타를 씹으며, 천천히 모히토를 마시면서 여행중 세번째 책을 읽었다. 3일동안 하루에 한권씩 읽은 셈인데 매우 오랫만에 책을 연달아 읽은 휴가가 되었네, 라고 생각을 했다.
어떤 여행은 책으로 기억된다.
언젠가 이탈리아의 국경을 넘는 밤기차에서 곽아람 작가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를 읽으며 불안한 밤을 견뎠고,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기차에서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를 몇년 뒤 프랑스 도빌 바다를 보러가는 기차에서 다시 한번 읽으면서, 개츠비는 나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문학 속 인물이 되었다. 낙엽이 온 세상에 가득했던 어느 가을 경주에서 읽은 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도, 부산에서 읽은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여행지에서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몰입되었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가끔, 일부러 여행지에서 서점이 보이면 무리해서라도 책을 사오기도 한다. 그곳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번 여행에서는 황정은 작가의 <일기>, 정지아 작가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그리고 한강 작가의 <작별>이 수록된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앞으로 이 책들의 표지만 보아도, 이곳 바다의 푸른빛을 기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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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후식으로는 지난번 후에에서 먹어보았던 소금커피를 마셨다. 원래 달달한거 좋아하는 사람인데, 건강을 챙기고 체중을 관리해야 하는 나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부터 저지방 우유 마시고, 초콜렛 줄이고 달달한 커피도 선택지에서 제외하며 살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디저트로 케이크나 도넛을 먹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슬픈 일이다.
소금커피는 말처럼 '짠맛이 나는'커피가 아니고, 소금이 첨가된 달달하고 부드러운 커피다. 연유와 커피를 넣고, (지역에 따라서는 달걀 흰자 거품), 약간의 소금을 넣으면 커피의 풍미도, 단맛도 더 극대화된다고 한다. 잠을 깊이 못자기도 했고, 이제 여행의 마무리를 앞둔 나를 위해 오랫만에 달달한 커피를 마셨다.
후식까지 모두 다 먹고, 마지막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퀴년의 푸른색 바다를 눈에 담았다.
나는 수영을 못한다. 한두차례 시도하다 물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해서 바다에 가도 발만 담그거나, 해변에 앉아 파도구경을 할 뿐이다. 영어도 딸리고 운전도 못하고, 겁도 많고 못하는 것도 많은데, 혼자하는 여행은 넘치도록 좋았다.
그래도 내가 할 줄 아는 것, 도전해볼 수 있는 일들이 좀 더 많다면 이런 경험도 좀 더 다채롭고 충만하게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마음 밑바닥에 깔린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삶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조금 더 늘려가볼까? "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