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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May 18. 2020

오늘 하루, 나를 보다.

'보다'

AM 06:30.

아침 출근 전,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후 거울 앞에 앉는다. 오늘의 이나영은 눈이 조금 부어있고, 눈밑 다크서클이 다른날보다 진하다. 새벽 세시쯤 잠이 깨어 뒤척인 탓이겠지. 거울 속 얼굴은 언제부터인가 내 엄마의 눈매와 표정을 닮아가고 있다. 어릴적 화장대 앞에 앉아 곱게 화장을 하고 외출준비를 하는 엄마를 보면, 눈가의 주름을 살피며 한숨을 나직히 쉬시곤 했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화장은 빠르고 간단하게 하는 편이다. 눈썹도 그리지 않고, 썬크림과 CC크림만 바르면 거의 모든 화장이 끝난다. 화장할 때면 화장대 앞에서 하는 것보다 거실 테이블 편한 자리 아무곳에나 화장할 때 쓰는 거울을 세워두고 한다. 아주 오래 전 동대문 두타쇼핑몰에서 구입한 타원형의 엔틱 거울인데, 아침마다 내 얼굴을 비추어준 지도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거울의 입장에서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요즘 너 많이 지쳐보이는 것 같아.' '왜그렇게 잔뜩 무언가 마음에 안드는 얼굴을 하고 있어? 예전엔 생글생글 잘 웃기도 하더니.' 라고 말하진 않을까.


AM 08:00.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20여분 정도를 걷는다. 아침시간 아침 시간,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하는 상점들의 쇼윈도에 걸어가는 내 모습이 비친다. 걷는 걸 좋아하기에 오늘도 납작하고 편한 신발을 신었고, 검은색 블라우스와 깅엄체크무늬의 스커트를 입었다. 자세가 좋지 않아 많이 구부정한 편인데,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은 오늘도 거북목 자세인 것만 같아 자세를 다시 한번 고쳐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보며 걸으려고 애써본다. 종종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지만 사실 머릿속은 오늘 해야 할 일들로 분주하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느라 아마 내 모습은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에 나오는 좀머씨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좀 내버려두시오!'라고 속으로 외치며 걷고 있는.


AM 11:00.

내가 하는 일은 늘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함께해나가는 일보다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많다. 오늘도 새롭게 만나고, 인사하고, 업무처리를 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첫인상을 주었을까.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많이 애를 썼던 때도 있었다. 온화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고, 친절한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외적인 환경에 나를 맞추느라 나 자신을 잃어버리진 말자는 마음을 붙잡고 싶다는 것이다. 엊그제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은 남들에게 맞추어주는 사람이 착한 게 아니예요. 진짜 착한 사람은 자기자신에게 정말 잘해주고 위할줄 알아요. 그런 사람이 착한 사람이예요."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한 적은 굳이 없었지만...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허영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요즘 많이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남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는 말자. 라고.


PM 05:20.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노트북을 열고 오늘 쓰고 싶은 글을 적는다. 일상을 기록할 때도 있고, 그날의 감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글을 적으며 내가 디테일하게 잡아내지 못했던 감정의 조각들이 발견될 때도 있다. 나는 내 글 속의 나를 보는 일이 조금은 편안하다. 글로 적는 내 생각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수정이 되고, 찌꺼기들은 걸러질 수 있으니까. 다 적은 글을 읽으면서 나를 다시 본다. 내 글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아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그런 마음도 있었겠구나.' '오늘의 이 기록은, 아마 두고두고 오래 생각이 날 것 같아. 그렇지 않아?'라고.


PM 9:20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핸드폰을 열고 SNS를 둘러본다. 오늘 하루 가장 내 얼굴을 많이 보았을 물건은 아마도 이 핸드폰이었겠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누군가가 올린 글을 읽고, 나에게 온 메일을 읽을 때 순간순간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요즘 나는 핸드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을 찾아보거나, 식물 사진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타인과의 대화, 연락, 소통보다 혼자서 떠도는 여행을 하듯 나만의 컨텐츠를 찾아 조용히 눈으로 감상하며 위로를 얻는다. 집 안에 한그루 들여놓고 싶은 수채화고무나무를 검색하고, 강가의 통나무집 사진을 보며 그곳에 가는 상상을 한다. 그 순간 나는 핸드폰을 보며 미소짓고 있었으려나.


***

가끔, 내 머리위로 쑥 올라가서,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싶어진다. 나를 그렇게 객관화하여 바라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속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은 내가 어이없을 때도 있을 것이고, 웃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때로는 안쓰럽거나 걱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내 머리 위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는 또하나의 이나영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아이고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일단 뭐든 지금 당장 해봐!'라고 소리를 지를 것만 같다. 머릿속으로는 잔뜩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정작 실행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미루는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이니까. '단순한척, 남에게 신경 안쓰는 척 하느라 애쓴다 애써... 쯧쯧,'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괜찮은척 하느라 용쓰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별탈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매일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가끔 한숨짓고 후회도 하며 살아가지만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그닥 많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게 있다. 몇년 뒤의 내가 오늘의 나를 볼 수 있다면, '뭐 나쁘지 않았네. 나름 애썼다구.'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오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쇼윈도를 스쳐 지나간 내 걸음걸이가, 나를 만났던 사람들이 보았던 내 표정이, 내가 적은 글 속의 내 마음이 모두 그런대로 진솔했고 부끄럽지 않은 정도였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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