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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May 25. 2020

초콜릿 - 사랑의 맛.

'맛보다'

한국에서 비행기 편으로 약을 받기로 해서 언니가 보내주기로 했다. 약만 받기엔 좀 아쉽고, 비행기 편에 받아야하니 책처럼 무거운 것은 곤란하다. 이럴 때 뭘 받으면 좋을까 잠시 생각을 했다. 그러다 결국 나의 선택은..     

"언니, 초콜릿 몇 통만 보내줘."

     

생각해보면 이곳에서도 흔하디 흔한게 초콜릿인데. 언니가 마트에 가서 사왔다며 보내준 사진을 보니 나 스스로도 좀 어이가 없는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먹는 그 초콜릿이 웬지 맛있어 보여서, 한번쯤 먹어보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달달한 맛에 기대어 위로받고 싶어진다. 기분이 가라앉은 날엔 부드럽고 달콤한 밀크초콜릿을 먹고, 피곤한 날은 다크초콜릿 한쪽을 입에 물고 당충전를 한다. 대학원 입학시험날이나, 회사 면접날같이 긴장할 일이 있는 날이면 조금 일찍 가서 근처 카페에 들러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는, 진한 초코향이 나는 카페모카나, 핫초코를 시켜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딱히 무언가를 살 것이 없는데 잔돈을 바꾸어야 하거나 가게에 들어갔다 빈 손으로 나오기 뭐할 때, 초콜릿을 산다. 초코과자도 좋아하고, 초코머핀도, 초코브라우니도 좋아한다. 술을 마시고 어느정도 알딸딸해지면, 편의점에 가서 초콜릿을 사와서 옆에두고 먹곤 한다. 단 것을 먹으면 술이 빨리 깬다는 핑계이기도 하지만, 살짝 취한 그 시점에 초콜릿이 그리워지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나의 초콜릿 사랑에는, 역사가 있다.

    

1.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에도 꼼꼼하지 못해서 준비물을 종종 잊어버리고 학교에 가곤 했다. 도시락이나 신발주머니 같은 것들... 그래도 나는 언제나 무사태평으로, 걱정이 없었다. 개인 사업을 하셨던 아빠는 보통의 직장인보다 출근이 조금 늦으신 편이었는데, 내가 집에 전화를 걸어 "아빠, 나 도시락 두고왔어~ "라고 말하면 가져다주셨기 때문이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운동장을 가로질러 수위실 앞으로 아빠를 만나러 가면 아빠는 수위 아저씨와 담소를 나누며 나를 기다려주셨다. 한번도 뭐라하거나 인상쓰시는 법이 없이... “아빠 땡큐뺑큐!”를 외치는 나를 껄껄 웃으며 반겨주셨고, 꿀밤 먹이는 시늉만 하고는 손을 흔들며 회사로 가셨다. 그리고 아빠가 내 손에 쥐어주고 가신 내 준비물이나 도시락 가방을 열어보면... 언제나, 반드시 초컬릿 하나가 들어있었다. 아빠를 보내고 교실로 돌아와 가방 속 초콜릿을 꺼내어 입에 물고 흐뭇해하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그래서 가끔 물건을 두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오히려 웃으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가져다 달라고 떼를 쓰곤 했고, 아빠를 기분좋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게 아빠가 내게 보여준 소소하고 다정한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건네준 가방을 열어보고 좋아라 할, 막내딸의 얼굴을 생각하시며 넣어준 아빠의 마음을 생각하면, 정말 사랑만 주셨구나. 이쁨만 받았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2.

한번은 엄마가 동창분들과 유럽여행을 다녀오셨다. 우리 삼남매를 거의 다 키워놓고 큰마음먹고 다녀오시는 거라 열흘이 넘는 일정으로 여행을 하고 오셨었는데, 엄마가 트렁크 속의 짐을 풀면서 “아유 곳곳에 이쁜건 많은데 뭐 내눈엔 죄다 쓸데없는거 천지고... 뭐 사다줄까 하다가...” 라며,


산더미같은 초콜릿을 가방에서 꺼내셨다.


여행을 간 각 나라, 도시마다 보이는 마트에 들러 유럽에서 판매하는 초콜릿을 종류별로 사오신 것이었다. 지금 기억엔 몇십종류의 초콜릿이었던 것 같다. 패키지 여행이라 일정도 빡빡했을텐데... 초콜릿 좋아하는 딸을 위해, 가는 곳마다 가게에 들러 초콜릿 수집가처럼, 새로운 종류가 보이면 담아오신 것이다. 화려하고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이 가방 안에 그득 들어있던 그 장면이, “우와! 엄마, 이걸 다 사온거야?”라며 놀랐던 그 순간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인상 깊게 각인되어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이들이 십대 청소년이 되는 걸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실수할 때 가르치려 들고 나무라지 않고 품어주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내가 가는 곳마다, 보이는 것마다 내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을 챙기는 것 또한 엄마라서 당연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크게 혼난 기억도, 엄마 아빠로 인해 상처받은 기억도 거의 없다. 넉넉하고 부유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때로는 나역시 부모의 인간적이고 초라한 모습에 실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을 주고 표현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던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 것인지를. 나에게는 초콜릿이 그 사랑의 표현이자 상징이 되었다.

    


가끔 어린아이처럼 응석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마음 한켠이 한없이 쓸쓸하거나 처연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은 내 엄마아빠처럼 내 실수에 관대하지 않고, 나에게 상처를 견디라고 혹독하게 가르치곤 한다. 내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을 때, 사람에게 너무 지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날이면, 입 안에 초콜릿을 넣어본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 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면서 위로를 받는다. 겨우 초콜릿 하나에 위안을 받고 힘을 얻는다. 내게 사랑의 역사가 있는 영혼의 양식이어서 그럴 것이다.

     

일년에 한두번, 한국에 가서 언니집이나 엄마집에서 며칠 있는 동안, 일을 보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산다. 초저녁 잠을 주무시던 엄마는, 내가 들어가는 소리에 잠시 눈을 뜨시고는 잘 다녀왔냐고 물으신다. “엄마, 초코 아이스크림 사왔어. 같이 먹을래요?”라고 하면 눈가에는 잠이 가득 들어있는 상태로 빙그레 웃으시며 손을 내미신다. 그렇게 엄마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참 따스한 시간이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받았던 달콤한 기억들을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이 나에게 주신만큼 따뜻하고 다정하게 되돌려드릴 수 있을까. 초콜릿 한조각의 위로같은 다정함이 있는 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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