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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Jun 08. 2020

人香萬里(인향만리)

'맡다'

비누를 만든다.

    

호호바오일이나 시어버터가 들어간 품질이 좋은 비누베이스를 구입한다. 벽돌 두개 정도의 사이즈 한덩어리가 베이스 1kg이다. 이 베이스 한덩어리로 대략 열 개 정도의 비누를 만들 수 있다. 넓다랗게 상을 펼쳐놓고, 베이스부터 자른다. 깍둑썰기를 해야 베이스를 녹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누베이스를 썰다보면 이곳저곳에 묻고, 흘리기도 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비누니까. 어디에 묻든 물로 쉽게 지워진다.

     

그렇게 잘라낸 비누 베이스를 커다란 스테인레스 통에 붓고, 핫플레이트 위에서 서서히 녹여준다. 비누베이스는 쉽게 녹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조금 부지런해져야 한다. 글리세린과 비타민E를 넣고, EM효소나 동백오일 등을 첨가하기도 한다. 비누에 첨가하는 천연가루들을 베이스에 넣는데, 어떤 가루를 넣느냐에 따라 비누의 색이 달라진다. 피지에 좋은 숯가루는 검은색, 여드름에 좋은 어성초는 카키색, 비타민이 많은 파프리카는 붉은색... 그리고 밀싹, 오트밀, 황토, 청대 등. 비누에 넣을 수 있는 천연가루는 매우 많다. 한 가지만 넣어도 좋지만 몇가지를 조합하여 다양한 색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녹은 베이스에 천연가루를 넣어 잘 저어 가루가 충분히 녹은 뒤, 녹은 베이스의 온도가 60-70℃ 정도로 낮아질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리고 비누의 향을 결정하는 아로마오일을 넣어준다. 그리고 여러 가지 모양의 몰드에 부어주면, 여기까지가 가장 기본적인 비누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누만드는 법을 배우고 좋았던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비누 선물을 해주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향기를 선물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모양도 색감도 예쁜 비누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지만, 사람들은 비누를 받으면 제일 먼저 코에 갖다대고 냄새를 맡는다. 나역시 내가 만든 비누를 사용하면서 샤워할 때 부드러운 거품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향기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 너무 좋아 계속해서 수제비누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레몬그라스나 유칼립투스, 티트리와 같은 향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비누에 많이 사용하는 오일로는 라벤더와 오렌지를 블렌딩해서 쓰기도 한다.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의 향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처음 비누를 배울 때에는 레몬그라스를 많이 사용했다. 비누를 만드는 날이면 며칠동안 집 안에 레몬그라스 향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레몬그라스가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민감한 피부는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기가 좋다고 해서 모두에게 맞는 향은 아니다. 처음 맡았을 때 좋다가도 머리가 아파지는 향기가 있고, 조금 독특하고 강렬한데도 자꾸만 맡고싶은 매력적인 향기도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향기여도 나에게는 맞지 않아 피하고 싶은 향기도 있다.

     

사람으로 치면 ‘분위기’라는 것이 향기와 비슷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이 가진 분위기는 내가 닮고 부러워하는 느낌이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아 오래 인연을 함께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처음엔 나와 너무 다르고 독특한 분위기에 당황하다가도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고 가까워지는 사람도 있다. 멋진 카리스마를 가졌거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기있는 분위기의 소유자임에도 왜인지 내 마음 한구석에서 피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나의 향기, 나의 분위기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갖고 싶어하는 나의 분위기를 향기로 표현하자면 어떤 느낌일까.

     

'페트리코(Petrichor)'라는 단어가 있다.

비가 올 때 마른 흙이 젖으면서 나는 비 냄새를 뜻하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 풀냄새와 흙냄새가 습기에 젖어 뒤섞인 그 냄새가 이렇게 한 단어에 담겨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독특하고, 따뜻하면서도 촉촉한...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그런 향기랄까. 내가 가진 나만의 분위기가 그런 향기라면 좋을 것 같다.

     

인공으로 실제의 장미꽃, 민트, 라벤더와 똑같은 향을 만들 수는 있어도 실제로 그 향기를 오래 맡으면 대부분 머리가 아프다. 실제로 호르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거나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고 한다. 

나에게 비누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아로마테라피스트인 나의 친구에게, 사람에게 맞는 좋은 향기란 어떤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현대사회는 인공향이 난무해. 사람들은 그걸 좋은 향이라 착각하고 살고 있고...
하지만 사람에게는 자연의 향기가 꼭 필요해.
자연의 향은 인간의 호르몬을 정상적으로 돌려주고 심리상태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지.
사람마다 각자의 신체상태, 감정상태에 따라 맞는 향기가 있어.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향을 찾는 게 중요하지."


‘진짜 같은 가짜’ 향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향기가 있지만 그중 나에게 잘맞는 향기, 나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주는 자연의 향기를 찾아 살고싶다.


내가 내맽는 말, 내가 하는 행동, 그리고 나의 글 속에 나만의 향기는 그대로 드러난다. ‘좋은 향기인 척’ 할 수는 있지만 그 향기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삶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찾아내어 기억하는 사람, 긍정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살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향기가 내 안에 품어지지 않을까.          

‘酒香百里(주향백리) 花香千里(화향천리) 人香萬里(인향만리)’

‘좋은 술 향기는 백 리를 가고,
향기로운 꽃내음은 천 리를 가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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