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믿을만한 맛집이 있는 일

동네 컬렉션을 업데이트하는게 난 더 좋다

by 최효훈
미식가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식가의 정의를 무엇이라고 할지도 조금 곤란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 혹은 조건을 생각해보면 왠만해서는 미식가라고 규정하기 쉽지 않은 듯 하다. 이걸 나에게 대입해보면, 미식가가 되기 '글렀다'라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혹은 맛집'을 찾아다니기 보다는 '동네의 꽤 괜찮은 음식점'을 찾는 일에 더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물론 나름대로 이곳저곳 돌아다녀보기는 했다. 워낙 활동 범위가 넓었다보니 다양한 지역의 음식을 먹을 일이 많았고, 무언가를 먹으러 가는 일도 좋아하는 편이다. 국내외 여행을 종종 다니면서 먹어보기도 하고, 다양한 음식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한식이나 양식, 일식, 중식, 동남아 음식이나 기타 해외음식 종류별로 크게 가리지 않고 다녀보기도 했다. 지도 앱에 2천 개 정도가 되는 식당 정보를 저장해두고, 또 계속 그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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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음식,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뭔지는 아는 정도라고 하겠다. 덕분에 흑백요리사 같은 프로가 나오면 '아 그 식당?'하면서 으쓱할 수준까진 되겠다. 미각은 애초에 그렇게 대단한 수준이 아닌 건 명확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음식을 적당히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해도 새로운 식당과 음식을 찾아다니는 건 충분히 다른 가치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래서 너의 Best 음식 혹은 식당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본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내 미각이 고작 그정도 수준이라 먹어본 여러 유명 식당들의 순위를 판가름하기 어려워하는 것이 큰 이유겠지만, 무엇보다 내겐 대부분 꽤 맛있었고 꼭 누군가가 엄청나게 뛰어넘을 정도라고 생각할 만한 곳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좋았던 식당이 있다손 치더라도, 사람마다 입맛의 차이에 따라 충분히 뒤집힐 수 있는 정도라고 느낀다. 내겐 다른 곳 보다 더 좋았지만, 다른 사람에겐 다른 곳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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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여전히 배움이 짧구나'라고 퉁칠수도 있겠다. '압도적으로 추천할만한 곳을 모르겠다는 건, 고작 그 정도만 다녀봤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 어느정도 동의하면서도, 내가 여기서 몇 배의 식당을 더 간다고 해서 크게 바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내게 식당, 맛이라는 건 개인의 취향이 굉장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믿기 때문이고, 그런 면에서 기본적으로 '나에게 베스트였다 한들 너에게도 그럴지는 모르겠다'는 큰 명제가 뒤집힐만큼의 격차를 가질만한 식당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특히 맛은 '가격'과도 어느정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유명한 파인다이닝이나 이런 곳이야 당연히 다른 곳에서 먹기 힘든 경험을 선사해주지만, 그건 그 정도의 가격을 내니까 그런 일이다. 게다가 가격이 비쌀수록, 누군가가 '이 정도 돈을 내면서까지 맛집을 찾아야 할 일이야?'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올라갈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맛있다한들, 금액이 일정 이상 올라가면 그곳을 '최고의 맛집'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자고로 '최고'라 하는 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거려야 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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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나는 동네의 맛집들을 조금 더 사랑하는 편이다. 이곳이 다른 번화가의 유명 식당과 비교했을 땐 조금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 디테일이 조금 부족할 수도 있고, 맛이 그렇게 대단한 수준이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네 맛집은, 최소한 그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만족하는 곳이다. 식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아니 그저 그 식당을 지나는 일상의 길에서도 '동네에서 인정받는 곳'이라고 느껴지는 곳들이 있다. 손님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동네에서 밥을 먹고 싶을 때 먼저 생각나는 곳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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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내가 주로 다니는 강동구 성내동에 한 작은 일식당이 있었다. 돈가스와 덮밥, 모밀류를 파는 일본식 밥집이었다. 이곳을 처음 인지한 건 점심시간에 지날 때면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그렇게 많은 곳이 아닌데도 늘 사람들이 웅성거리곤 했다. 어느 날 그 식당에 방문했고, 꽤 만족했다. 엄청 대단하거나 기절초풍할 맛은 당연히 아니지만, 가격이 저렴했고, 그 가격을 생각하면 만나기 힘든 수준의 맛이었다. 주인은 친절했고, 음식의 양은 많았다. 요새 많이 쓰이는 말로, 'humble'한 식당이었다.


어느 날 그 식당이 문을 닫았다. 알고보니 가까운 곳에 확장 이전을 하는 것이었다. 내 일처럼 기뻤다. 옮긴 뒤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줄을 섰고, 주인 분은 친절했다. 맛도 여전했다. 돈가스가 한 줄이 아니라 두 줄이 나오는 '배포'는 여전했다. 동네 친구들과 때가 나면 자주 들렀고, 퇴근하고 마음이 지친 날이면 집에 가는 게 아니라 그 집을 들러서 밥을 먹고 가곤 했다. 시쳇말로 '힐링'이 되는 감각이 있었으니까. 그 길을 지날 때면 식당에 바글거리는 사람을 보며 괜스레 흐뭇하기도 했다. 집에 가는 전철에서 나와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걸로 추정되는 분이 '동네 맛집'에 대한 전화를 하면서 그 가게를 언급하는 걸 들으며,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하군'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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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당은 지금은 없다. 건강 문제로 문을 닫은 뒤 몇 개월 지나 다른 동네에 다시 문을 열었다. 아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그 동네 사람들이 부러웠다. 우리 동네의 자랑이 이제 그 동네의 자랑이 될테니까. 비슷하게, 내겐 그런 식당들이 몇 군데 있었고, 있다. 그 중에는 '우리 동네에 있어서 좋지만, 우리 동네에 있기엔 아까운 수준인걸'하는 곳도 있다. 그 중 한 곳은 실제로 핫한 동네로 떠나서 장사를 하기도 했고, 아직 자리를 지키는 곳도 있다. 그들이 더 큰 동네에서 더 성공했으면 좋겠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떠나지 않고 우리 동네에 계속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 '믿을만한 내 동네 맛집 컬렉션'을 유지하고 싶으니까.




그런 식당의 기준이 있을까? 그건 '내 인생 최고의 맛집'을 뽑는 일보다 훨씬 쉽다. 적당한 가격일 것, 꽤 준수한 맛을 낼 것, 친절한 사장님이 있을 것, 편한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을 것, 믿을 만한 포인트가 있을 것. 믿을 만한 포인트라 하면, 남다른 그 가게만의 '킥'이 되는 맛이나 메뉴일 수도 있고 엄청난 청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오랜 기간 장사했다는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다른 가게와 구분되는 무언가 요소까지 갖추고 있다면, 나는 그 식당을 충분히 '내 동네 맛집 컬렉션'에 넣게 된다. 누군가 우리 동네에 온다면, 데려가주고 싶은 식당. 지친 날 방문해서 기운을 얻고 싶은 식당. 다양한 동네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일상이 녹아있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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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명한 동네의 맛집을 찾아가서 맛을 볼 때도 즐거웠지만, 새로 생긴 동네의 괜찮아보이는 집(그러니까, '내 동네 맛집 컬렉션' 후보)을 찾아가는 것에 더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그러니까 다른 동네의 유명한 곳은 '해외여행' 같은 거라면 동네 맛집은 '일상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다른 맛집을 방문했을 때는 맛집을 직접 경험하게 되서 즐겁지만, 행복하진 않다. 난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 지도 모르고, 다시 온다 해도 한참 뒤의 일일테니까. 그리고 이곳을 한 번 더 오기보단 궁금한 다른 식당을 더 찾아가 보고 싶을 테니까. 행복은 보다 일상의 영역이니까.


그런 면에서 난 제주도의 어느 스페인/포르투갈 음식을 하는 식당을 좋아한다. 그곳의 음식은 어떤 걸 시키든 맛있다. 접객도, 와인 리스트도(술은 마시지도 않는 나지만), 하다 못해 기물 하나하나 맘에 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을 마냥 추천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제주도에 갔을 때, 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식당이 있는 동네에 갈지 안갈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 계획을 바꾸면서 까지 추천할 만한 곳이냐라고 하면 조금 부담스럽다. 애초에 맛이란 건 주관적인걸. 난 그 식당의 분위기에 조금 더 가점을 주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난 그곳을 가는게 너무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지는 모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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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식당은 '맛'만으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방문했을 당시의 감정과 기분, 함께 방문한 사람, 그 날 시킨 음식의 컨디션, 조금 더 호들갑을 떨자면, '방문했을 당시의 시공간과 공기'까지 포함해 그 식당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의 베스트 식당이 내게 베스트가 될 수 없을 수 있고, 그 반대도 성립하는 거라면, 나는 '믿을 수 있고, 배신하지 않는' 동네 식당에 조금 더 끌리는 것 같다. 어차피 수많은 식당을 찾는 일은 누군가에게 '이 식당은 나만의 보석이에요'라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닐진대, 내가 맘에 들어할 곳을 찾는 기나긴 여정일텐데, 내가 맘에 드는 곳은 내가 자주 갈 수 있는 곳일 수밖에 없으니까.


최근 조금 더 마음에 둔 동네 식당이 있다. 4-5개의 테이블이 있는, 작은 국밥집이다. 깔끔함도, 한 끗이 더해진 메뉴들도, 친절함도, 맛도 맘에 든다. 그럼에도 동네 식당만이 가지고 있는 '편안함'이 좋다.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다. 한 신문의 칼럼에 다뤄지기도 했고, 최근 배우 조인성이 동네를 소개하면서 '거기 맛있는데'라고 언급하는 걸 보기도 했다. 이곳이 세상 최고의 국밥집이냐고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국밥집을 알려줘'라고 했을 때 추천하기엔 좀 꺼려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겐 가장 좋아하는 돼지국밥집이다.



이런 동네 식당에 온 게 얼마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점심 회사 근처 식당에 가면 물기가 덜 마른 테이블 위에 휴지를 깔고 숟가락을 놓았다. 눈을 마주치는 일이 없는 종업원이 곧 아무 말 없이 음식을 가져다줬다. 무표정한 사람들 틈에 앉아 연료를 집어넣듯 밥을 먹노라면 빨리 바깥공기를 맡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집에 오니 조금은 느긋해지고 자세가 편해졌다. 동그랗고 깔끔하게 마감된 테이블 모서리, 갈색톤으로 장식한 실내, 도톰한 종이에 깔끔하게 인쇄된 메뉴판, 한숨 돌리고 나니 이런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식사를 마칠 때쯤 주인장이 손을 모으며 물었다. “혹시 음식은 괜찮으셨나요?” 나는 그저 “좋았다”고 답했지만 잊히지 않는 것은 맛뿐만이 아니었다. 아마 그 아이는 오랫동안 이 집을 기억할 것이다. 옹이 하나 없는 나무 테이블, 맑고 따뜻한 국물과 그만큼 온기를 지닌 주인장의 마음. 시간이 지나면 그 아이가 거친 시간을 견뎌 어른이 될 것이다. 지친 하루와 위로받을 수 없는 어른의 막막함이 수시로 찾아올 것이다. 그때 마음 한구석에 사라지지 않는 그리하여 또 다시 견딜 수 있게 만드는 따스함이 있다면 이 집의 몫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 계곡처럼 투명하지만 밀도는 빡빡하다, 맑은 돼지국밥, 조선일보, 정동현,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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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주말이면 새로운 동네 맛집을 찾으러 다니곤 한다. 그리고는 '내 동네 맛집 컬렉션'에 들지 아닐지를 잰다. 보통 동네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해서, 오픈한지 조금만 지나도 그 집은 사람이 바글바글해져서 줄을 서야 할 때가 많지만 상관없다. 편한 상태로, 혼자서 혹은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을 품고 왔을 테니까. 내가 이 가게에서 얻고자 하는 건 다른 사람도 비슷할 것이고, 우리는 남이지만 그런 면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인스타에 올릴 만한 핫한 자랑거리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온 거니까.



주말을 맞아 친구와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수도 있고, 가족끼리 오랜만에 집 앞에서 외식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친 평일을 보내고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혼자 방문한 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곳을 응원하고, 사랑한다. 그 기분이면 충분하다. 편하게 들어설 수 있고,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곳. 자리에 앉고나면 턱하고 긴장이 풀리며 편한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릴 수 있는 곳. 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나설 수 있는 곳. 늘 그자리에 있어 믿을 수 있는 곳. '먹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면 갈 수 있을 곳. 내 평범한 일상을 살짝 다르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곳. 난 그런 곳이 좋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런 식당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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