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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Nov 11. 2016

오사카 4일차 : 신들의 나라

나라공원, 다도와 종이접기, 유카타, 쥬니히토에 체험 

4일 차는 홈스테이 가정에서 시작했다. 우리의 아침식사는 서양식과 일본식의 조화였다. 

신선한 빵과 버터, 그리고 영국식 홍차와 일본식 차. 미도리 상은 언제나 홍차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선 곳은 나라. 오사카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진 옆 동네다. 

나라는 교토와 함께 전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고, 도시 분위기도 고즈넉한 도시에 속한다고 한다.

나라에 갈 때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지하철로 오사카 우에혼마치 지역에서 약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요금이 편도 약 5000원으로 비싼 편이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에 그런 듯 하기도 하고, 그동안 느끼기에 일본의 대중교통 가격은 높은 편에 속했다.



나라 역에 내리면 바로 공원으로 가는 길 앞에 닿는다. 거기서 사람들과 사슴들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거대한 신사가 나온다. 길거리에는 사슴들이 자유롭게 걸어다닌다. 사람들이 만져도 반응하지 않는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 사슴을 만지고, 사슴과 함께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하지만 미도리 상은 본래 일본에서 사슴은 신의 현신이기에 만지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렇다면 이 곳은 신들이 가득한 거리였다.


신의 눈망울은 깊다.

하지만 이 신들은 그래서인지 조금 제멋대로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을 잡아 뜯거나, 때로는 종이를 잡아 물어 뜯었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종이나 가방을 내주어야 했다. 다만 이 신들 역시 마냥 자유롭지는 못했는데, 수컷 사슴의 경우 뿔들이 모두 잘린 상태여서 애처로워 보였다.


신들은, 때로 인간에게 폭력적이었다


사슴공원을 지나면 히무로 신사가 있다. 거대한 건물을 앞에 두고, 큰 길이 잔뜩 이어져 있다. 미도리 상은 이곳이 본래 왕들과 귀족들이 다니는 길이며, 일반인들은 옆에 난 작은 길로만 다녀야 했다고 설명해주었다. 또한 신들과 왕의 거리이기에 본래는 정숙을 지키는 거리였다고도 설명해주었다. 물론 지금은 관광객들로 가득한 거리였으나, 직선으로 이어진 권위가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신사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기와 부분이 그럴 것이다. 조선시대에 주요 건축물의 주심포 양식과 비슷한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었다. 또한 입구 부분 양쪽에 놓여진 금강역사들은 우리나라 건축과 마찬가지로 수의 역할과 동시에 악귀를 내쫓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내부는 입장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해서 들어가지는 않고, 대신 주변을 걸었다. 주변에는 일본식 정원도 있었다. 일본식 정원은 말 그대로 감탄사를 내게 했다. 말 그대로 "정원의 진수"였다. 서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다. 



이 정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즈넉함? 공간 효율 추구의 극치? 그 무엇도 가능하고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동양 건축, 특히 한국과 일본의 건축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고들 한다. 이 정원은 자연과의 조화를 넘어, 건축물 자체가 자연에 숨어 자연의 일부가 되는 듯하다.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것도 자연을 해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후엔 역 앞에서 산 도라야끼와 녹차를 나누어 먹고, 오사카 국제교류센터로 돌아갔다. 이후에는 다도 체험, 종이접기 체험, 쥬니히토에 체험, 유카타 체험을 했다. 다도 체험은 미도리 상의 집에서 진행한 것과 같았다.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그것을 섞는다. 거품이 날 정도로 진한 녹색의 차. 처음 미도리 상의 집에서 이것을 섞을 때, 미도리 상은 나에게 훨씬 더 세고 강하게 섞어야 한다고 했다. 강한 향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듯 했다. 


종이접기 체험은 예상과 다르게 신기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접힌 종이들은 단순히 그 모양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접은 종이로 다양한 활동이 가능했다. 이를테면 새일 경우에 나는 모습을 연출한다던지, 다른 동물의 경우 뛰는 모습을 연출한다던지, 입으로 불어 돌린다던지 하는 것들. 


쥬니히토에 체험은 신비로우면서도 과거 일본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었다. 쥬니히토에는 높은 지위를 가진 여성들이 입는 옷이었는데, 최소 8겹 이상의 옷을 겹쳐입는 것이었다. 옷을 입는 데에는 2명의 사람이 달라붙어야 했고, 다 입는데만 20분이 넘게 걸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의 무게는 체감상 20kg에 달할 정도다. 그렇기에 실제로 그 입을 옷은 여성은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은 여성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한다. 그리고 다양한 색의 그라데이션으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쥬니히토에는 실제 일본인들도 보기 어려운 것이라 한다. 그렇기에 오사카 국제교류센터에 있었던 다른 일본인 분들까지 와서 함께 구경을 했다. 옷을 입힐 때는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앞에서 옷 입는 것을 도와주는데, 옷을 다 입는 동안 무릎을 절대로 들 수 없다. 이는 계급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허나 이 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든 것은, 저 옷을 입는 여성이 고위에 있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을 거라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기 어려울 정도의 무거운 머리장식, 팔 하나 올리기 쉽지 않은 무게의 옷을 입는 사람의 삶이 어떨까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남성의 복식에는 이런 것이 없거나 훨씬 더 간소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특히 유카타에서 나타나는 여성 유카타의 복잡함과 남성 유카타의 단순함), 그것은 긴 시간 동안 있었던 여성차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에 대한 느낌이 강했다.


비단 일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전통의상들은 늘 여성의 옷이 더 아름답다. 남성의 옷은 미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모두들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남성은 "멋질 필요"가 없었던 것일 테고, 여성은 "예뻐야만"하는 것이었기에 벌어진 일로 느껴졌다. 지금은 신기한 복식이 되고, 아름다움이 되었지만 사실 그것은 기나긴 역사 속에 있었던, 여성을 하나의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예뻐야만 하는 성적 대상으로 여겼던 차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아이러니였다.


마지막으로 유카타와 나막신을 입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유카타에서 재밌는 점은 소매에 주머니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나막신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유카타를 입는 과정에서 미도리 상이 도와주셔서 마지막에 인사를 드렸다. 일본에 대해서 더 생각할 수 있던 날이었다. 


아래는 나라의 표지판.


나라 공원에선 신들을 조심하자
물론 신들은 귀엽다
신들은 하늘도 난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신호등. 일본은 언제나 장애인 배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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