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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Nov 18. 2016

수능 이전 대신 수능 이후를 응원합니다

수능 이후 다가올 삶을 응원하며, 수능에 자신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은 날이 꽤 따뜻했다고 한다. 비록 나는 추웠지만 그건 내가 추위를 잘 타서라고 생각했다. 수능을 보러가는 사람들은 따뜻함을 느끼길 바랐다.


내 주변에서도 수능을 많이 봤다. 현역으로 수능을 본지 5년이 지난 나지만 그렇다. 그동안 부족하나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해준 19살의 친구들도 수능을 보았고, 당장 내 주변의 또래친구들도 보았다.  


이제 다시 수능을 보는 내 동갑친구들을 두고 어떤 어른들은 혀를 찰 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나는 그러지 못하겠다. 오히려 그런 선택을 하는 용기마저 부러울 따름이다. 어쨌거나, 나는 재수를 할 용기조차 없었다.


내 친구들이 수능을 보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대학교를 다녔었다. 그리고는 다시 대학을 가겠다고, 다시 과를 정하겠다고 수능을 준비했고, 오늘 수능을 쳤다. 짧은 응원의 인사를 전해주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어쨌거나, 오늘 틈틈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 주변에서 수능을 치는 이들을 응원했다.


나는 "수능이 네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수험생의 삶에선 전부에 가깝다. 수능으로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능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능 뒤에도 최소한 그만큼의. 보통은 그보다 더한 역경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을 마친 뒤 겪는 20살의 시간, 그리고 이후에 모든 시간들은 수능만큼이나 중요하고 수능만큼이나 어렵고 수능만큼이나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수능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모의고사 등급에 안달난 어른들이 이제와서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위로랍시고 하는 말들을 나 역시 하지는 못하겠다. 실제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순간을, 이때까지 그렇다고 말해놓고 이제와서 사실 아니라고 하는 아이러니를 나까지는 하지 못하겠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도 그 때만 잠깐 그럴 거면서. 수능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되는 사회를 바꿀 생각은 없으면서.


내가 본, 가장 최고의 수능에 대한 위로의 말은 <무한도전>에서 정준하가 부른 노래였다. 사실 노래 가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4수를 했던 사람이 애써 유쾌하게 부르는 모습이 중요했을 뿐. 당장 수능의 결과에 실망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그 어떤 위로가 닿을 수 있겠는가. 정준하 정도 되는 사람이(물론, 유명 연예인이 아니라 4수를 하고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으로서) 잘보든 못보든 하면서 웃음이라도 나게 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수능 결과 뿐만은 아니다. 초겨울의 바람을 뚫고, 12년 간의 배움을 정리하러 향하는 19살들. 이후 홀로 새로운 수많은 것들을 마주하고 겪어야 할 사람들. '대학만 가면'이라며 수능 이후 겪을 것들에 대해서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앞으로 놓여질 길과 그들이 겪을 일에 대해서 그 어떤 심심찮은 위로라도 전할 수 있을까.


수능이 끝나고, 어둑어둑해진 길을 걸으며 나는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허무함은 고독을 안고 있었다. 이 시간 이후에 겪을 일들은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할 것들이었다. 수능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수능은 시작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게된 건 20살이 지고 21살로 넘어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냥, 뭐라도 써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위로 대신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전해보고 싶었다. 앞으로 새로운 길을 걷게될 19들을 응원한다고 해보고 싶었다.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된 중동고의 응원영상은 멋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 정도의 응원을 해야할 정도로 수능이 대단한 것이라는 게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뭐, 말처럼 수능 말고 다른 것들도 그 정도의 대단함은 갖췄다고 하지만 그래도.


수능 이후 있을 자기혐오, 자기비판, 자기검열, 후회 그리고 모든 감정들. 그것들은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고 오로지 자신만이 안고 가야할 감정이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그 감정들을 잘 추스리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언제든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겠다. 나는 언제나, 수능 이전이 아니라 수능 이후를 응원하고 싶었다.


최소한 수능을 쳤던 2011년의 나에게, 그 때의 내 주변 친구들에게,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수능 이후에 대한 응원'이었던 것 같다. 응원이라고 해봐야 별 대수로운 것도 아니다. 수고많았고, 앞으로 찾아올 일들도 잘 해나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는 것 뿐이다. 이번 수능 결과가 어쨌던 간에 그 모든 결과를 홀로 안게될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믿을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또 새로운 일들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 뿐이다.


수능을 마치고 나올 때는 엄청난 인파 속이었다. 허나 그 순간 이후로 내가 겪을 일들은 오로지 나의 것이었고,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그 많은 인파와 나의 삶은 별개였고 그 인파만큼의 수많은 책임과 삶이 시작되었다. 고교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들 모두 이제 뿔뿔이 자신의 길을 갈 것이었다. 이제 필요한 건 다가올 일들을 견뎌낼 자신을 되찾는 것이겠다. 수능이 앞으로 다가올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수능에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난 오늘 수능을 본 사람들이 자신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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