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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Jan 23. 2023

브레이크타임에 메뉴를 외우는 일

레스토랑 알바에 적응하는 과정

지난 1편 <추운 겨울, 매장 창문을 닦으며 생각했다>에서 이어집니다.


홀서빙을 하며 가장 먼저 배운 건 테이블 번호였다. 그제서야 내가 그동안 갔던 식당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제대로 음식을 서빙할 수 있었던 건지 배웠다. 손님은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테이블의 숫자로 매장에선 소통했다. 7번에서 주문을 받으면 포스에 해당 테이블 번호에 맞춰 주문 내역을 입력한다. 그러면 그 번호는 그대로 주방으로 연결된다. 음식을 만드는 곳과 손님에게 나가기 전 최종으로 점검하는 '백사이드'에 동시에 주문내역이 인쇄된다. '백사이드'에 일하는 사람이 완성된 음식을 받아 마무리를 하고 종을 울리면, 그 소리를 듣고 홀 직원이 해당 번호로 음식을 가져다 준다. 사실 조금만 생각을 해봤다면 알 수 있을 시스템이었지만, 나는 레스토랑 알바를 하며 그 간단한 사실을 처음 배웠다.


번호를 외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당시 레스토랑은 룸이 2개, 4인용 테이블이 12개, 2인용 테이블이 4개 정도였다. 작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엄청 크다고 하기에도 어려웠다. 게다가 한겨울에는 야외 자리를 오픈하지 않았기에 외우기에는 쉬웠다. 그 다음은 메뉴를 외우는 것이었다. 메뉴는 30개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는 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제대로 된 동남아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것 하나 익숙한 메뉴가 없었고, 대체 '뭘 어떻게 만든 건지'조차 알 수 없는 음식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부분의 주문이 5개 메뉴에서 일어나고, 가끔 다른 메뉴들이 들어오는 정도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손님들은 직접 메뉴를 가르키거나 이름을 말하며 주문을 했기에 제대로 기억만 한다면 모르는 메뉴라도 주문을 받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손님들조차 이 메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동남아 음식이 대중화되고 그 깊이도 깊어졌지만, 그 때는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을 취급하는 곳 자체가 많지 않았다. '포00'라고 이름 붙여진 쌀국수 프랜차이즈들만 보이던 때였다. 손님은 그만큼 '이 음식은 뭐가 들어가고 무슨 맛이 나는지'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내가 들어온지 3일 밖에 되지 않은 아르바이트 생이란 건 손님들이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셔츠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그 매장에 서 있는 이상 나는 홀에 앉은 손님들의 모든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다들 '적응하며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했지만, 나는 불안했다. 어쨌거나 이 알바의 목적 중 하나는 돈을 버는 것 외에도 '내가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다'라는 걸 증명하는 일이었기에 실수를 하거나 오랜 적응기간을 거치고 싶지는 않았다. 칭찬을 받고 싶었고, 빠르게 제 몫을 다해내고 싶었다. 나보다 1-2개월 먼저 들어온 다른 아르바이트 생 2명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자극이 됐다.

(나이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 땐 그 둘이 나보다 어린 20살/21살이라는 것도 나름의 자극이었다)



이미 친해진 아르바이트생들끼리, 아르바이트생-직원들끼리 뿜어내는 자연스러운 케미, 능숙하고 여유롭게 해내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얼른 그 대열에 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어리버리하고, 누군가가 와서 알려주거나 대신 처리해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빨리 스스로를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남들이 쉴 때 더 무언가를 하는 것 뿐이었다. 당시 우리 매장은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었는데, 보통 2시 반쯤 라스트오더를 받고 점심을 3시까지 먹었다. 4시반 부터는 슬슬 다시 디너 오픈 준비를 했다. 직원식을 먹고 간단히 치운 3시 쯤이 되면 다들 각자 자리를 찾아 잠을 자곤 했다. 


나는 그 때 잠을 자지 않고 메뉴판을 뒤적였다. 10시 30분 - 10시 퇴근에 적응되기 전에 업무도 적응 과정이라 피곤했지만 1인분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는 게 더 힘들었다. 1시간 반동안 혼자 메뉴판을 보며 메뉴 이름들을 중얼거렸다. 뿌팟풍커리의 발음을 교정하고, 나시고렝과 미고렝의 차이를 배우고, 소고기 볶음 요리 2가지의 재료 차이를 외웠고, 똠양꿍이 부이야베스, 샥스핀과 함께 세계 3대 스프에 속한다는 설명 따이를 외웠다. 우리 매장의 뿌팟풍커리는 소프트쉘크랩을 쓰기에 그대로 씹어먹을 수 있다는 것이나 어린아이들이 함께 온 테이블에는 텃만꿍과 같은 새우고로케를 추천해주면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꿍'이 새우를 뜻한다거나 '뿌'가 게를 뜻한다는 것과 같은 정보들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매장에서는 원래 새로 직원이 들어오고 나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메뉴 테스트를 한다고 했었다. 직원이 정말 모든 손님들에게 가서 자연스럽게 메뉴 설명과 추천을 할 수 있는지, 어떠한 요청을 해도 그에 맞는 메뉴를 추천하거나 권할 수 있는지, 매장 내에서 소통하기에 문제가 없을지 등등을 종합적으로 테스트하는 것이라 했다. 다행히 나는 그 테스트를 하지 않았다. 2주 정도 브레이크타임에 메뉴판을 외우고 나니 어느새 메뉴판에 적힌 설명글씨까지 외우게 될 정도였다. 


런치 디너 때 손님들의 요청을 기다리며 서있을 때도 뿌팟퐁커리의 발음을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연습을 했다. 한 천 번 정도 그 이름을 발음할 때 쯤 되서야 자연스럽게 손님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메인으로는 기존 직원이 응대를 하고 바쁠 때 내가 추가로 주문을 받는 형태가 며칠 반복되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테스트가 필요없을 것이라 했다. 따로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이미 잘 외웠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열심히 외웠는데 테스트를 안 봐?'라며 아쉽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증명을 해낸 듯 해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매장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과 대화나 잡담도 하지 않고 오전 청소, 런치 서비스, 직원식 준비, 디너 서비스, 마감 청소를 반복한지 2주가 지나자 이제 왠만큼 쌓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 일도, 음식을 전달하는 일도, 손님이 나간 후 식기와 음식을 정리하고 테이블을 닦는 일도, 각종 메뉴가 담긴 트레이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룸의 문을 여는 일도, 잠시 비는 시간마다 추가 접시나 냅킨 등을 점검하는 일도, 보다 어려운 메뉴의 주문을 받거나 '뭘 먹으면 좋겠는지' 물어보는 손님들에게 자연스레 추천을 하는 일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나서야 그 모든 일에 속도가 붙었다. 점심시간마다 직원식을 먹는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 때였다. 그 쯤되자 다른 직원들도 나를 '같은 직원'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큰 실수도 없이 잘 보냈다. 메뉴 주문 실수를 한 적도 없었고, 가끔씩 주방에서 '오늘은 숭어 메뉴는 3개까지만 받아야 한다'고 하거나 '특정 메뉴를 푸시해라'라고 하는 일도 무사히 해냈다. 손님이 가득차서 웨이팅 줄이 생긴 시기에도 그 시기를 나름 잘 보냈다. 딱 한 번, 생맥주 서빙을 가던 중 맥주를 쏟은 일이 있었다. 당황한 내게 다른 직원은 일단 손님에게 사과를 했고, 내게 대걸레를 가져와 닦으라고 주문했다. 대걸레를 빨며, 이게 내 첫번째 실수구나라고 생각하며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다. 풀죽은 내게 매니저님은 '자기는 맥주를 손님의 얼굴 쪽에 쏟은 적도 있다'라며 위로를 했지만, 그 실수는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 내게 남은 건 이제 2-3가지 정도였다. 포스기를 맡는 일, 와인 추천 및 와인 주문이 있을 때 와인을 디캔팅하거나 멋스럽게 와인 잔에 따르는 스킬을 배우는 것. 내가 들어온지 1개월 정도가 채워갈 때까지는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고, 나도 이제 조금 여유를 가지고 차츰차츰 배워가면 되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러던 내게 매니저님은 나를 따로 불러 조금 다른 제안을 했다. 홀서빙 대신 백사이드에서 근무를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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