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어산책 Dec 21. 2020

거인의 정원 : 나도 모르게 벽을 만들 때

글 오스카 와일드, 그림 리트바 부틸라, <거인의 정원>,  베틀북

칠 년 만에 거인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거인의 정원에서 뛰놀 노래하는 아이들을 쫓아냈습니다.


여긴 내 정원이야! 나 말고는 아무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어!


거인은 정원 둘레에 높은 담을 쌓았습니다. 그러자 거인의 정원에는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눈과 서리와 북풍만이 정원을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거인의 정원에는 겨울이 계속될 뿐이었습니다.


피터팬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른들도 한 때는 어린이였는데 왜 어른과 어린이는 다른 존재가 될까?”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대답했습니다.


놀 시간이 없어서 그래요.
휴대폰을 너무 많이 봐서요.
많이 안 웃어서 그래요.
어른들은 한숨을 많이 쉬어요.
경험이 쌓여서 그래요.
장난감보다 돈이 더 중요해져서요.
상상력이 사라지고 공부만 많이 해요.
너무 힘든 일이 많아서 쓰러지기도 해요.


당신은 이 중에 몇가지나 해당되는 어른인가요? 책 속의 거인처럼 사는 ‘어른’은 마음에 찾아드는 속삭임들을, 해사하고 맑은 것들을 봐줄 여력이 없습니다.  순수하고 맑은 것들 오히려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현실’이라는 깃발을 꽂아두고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노래를, 봄을, 어린아이의 마음을 몰아냅니다. 삭막한 겨울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거인의 정원에 봄이 왔습니다. 담장에 난 작은 구멍으로 아이들이 금슬금 들어왔거든요. 그제야 나무엔 꽃이 피고 향기가 맴돕니다. 러니 우리의 작은 틈, 연약함을 숨기려고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구멍이 봄이 오는 통로가 될지도 모릅니다.


초록빛 잔디와 꽃나무들 사이에 딱 한 곳, 아직 겨울이 남아있는 구석진 곳이 거인의 눈에 들어옵니다. 키가 작아서 나뭇가지에 손이 닿지 않는 남자 아이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거인은 그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나무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나무는 금세 꽃을 피우고, 새들도 날아오는 완연한 봄이 됩니다. 아이들은 거인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고는 정원으로 달려왔습니다. 거인은 커다란 도끼로 담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그 꼬마 친구는 어디에 있니? 내가 나무 위에 올려 준 아이 말이야.”


아이들은 날마다 정원에 와서 함께 놀았지만 거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 아이는 그날 이후 보이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거인은 늙고 쇠약해져서 이제는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그 아이를 떠올립니다. 거인의 마음을 연 첫 꼬마 친구였기에 언제고 다시 만나기를 바라면서.


이제 거인은 겨울이 와도 싫지가 않습니다. “겨울은 다만 봄이 잠들어 있는 때일 뿐이며, 꽃들도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창밖을 보니 정원 가장 구석에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아이가 서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나를 이 정원에서 놀게 해 주었지요.
오늘은 당신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초대하려 합니다.


그리워하던 아이를 만났는데 그 아이의 손과 발에는 상처가 있습니다.  그 상처를 보고 거인은 누가 그랬냐며 속상함에 화를 내지만, 그것이 사랑의 상처라는 것을 알았을 때 거인은 그 존재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손과 발에 못 자국이 난 그 존재는 거인을 자신의 정원으로 초대니다. 거인은 그렇게 하얀 꽃으로 뒤덮인 나무 아래에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자신의 정원을 넘어 그의 정원으로 초대받은  거인은, 이 패인 그 손의 못 자국을 몇 번이고 어루만지며 아온 지난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지 않았을까요?


거인처럼 자신이 쌓아놓은 높은 담장을 무너뜨리고 작고 연약한 것들이 들어와 쉴 공간을 마련해두어야겠습니다. 번듯하고 고급한 목소리와 태도가 아니어도 진실하고 맑은 소리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정원을 가꾸어둔다면 아이들은 그 정원에 날마다 찾아와 노래하고 놀다 가겠지요. 그런다고 어른의 권위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올해 겨울은 방역과 거리두기라는 핑계로  나의 건강과 안위만을 생각하게 하는 견고한 벽이 세워지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결국 다시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함인데 내가 막아서고 있는 것이 침방울인지, 타인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작고 연약해 보이고, 별것 아닌 것들을 들여다봐주고 높여줄 때, 새들이 날아오고 꽃이 핍니다.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존재들을 안아줄 때 나의 정원이 싱그럽게 자라납니다. 올 해가 가기 전에, 인생의 연약한 자리에, 작은 꼬마 아이가 보인다면, 넉넉히 끌어안아  향기를 내고 싶습니다. 그 꼬마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이 책을 추천해 9살 나의 친구 영일이, 지윤이, 태연이, 서연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글을 씁니다. Merry Christmas.



오늘의 언어산책,

- 내가 담을 쌓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요?

- 침범당하기 싫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거인은 왜 높은 담을 쌓았을까요?

- 나는 무엇을 찮게 여기며 무시하고 있나요?

- 아이의 손과 발의 못 자국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사랑의 상처란 어떤 의미일까요?

- 나에게도 그런 꼬마아이가 찾아와 마음을 녹였던 경험이 있나요?

- 나에게는 그런 사랑의 상처가 있나요?


하늘엔 영광을, 땅에는 평화를.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에게, 봄에게 : 손에 무언가 잡히지 않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