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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산책 Nov 23. 2020

가을에게, 봄에게 : 손에 무언가 잡히지 않을 때

글 사이토 린,우키마루/ 그림 요시다 히사노리/ 이하나 옮김, 창비.

꿈이 아스라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걸어 나가는 중인 것 같은데 닿지를 않아서, 영영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의 나는 언제나 저 멀리 보이는 별이, 꿈이 궁금합니다. 꿈도 내가 얼마큼 걸어왔는지가 궁금할까요?


잠에서 깨어난 봄은 겨울에게 찾아가 인사를 건넵니다. 그렇게 봄이 옵니다. 몇 달이 흐르면 여름이 와서 말합니다. “슬슬 바꿀 때야.” 봄은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합니다. 그때 여름의 말이 들립니다. “좋아, 가을이 올 때까지 힘내자.” 봄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가을을 만난 적이 없네


겨울은 말해주었습니다. 가을은 따뜻한 아이라고. 여름은 말해주었습니다. 가을은 차가운 녀석이라고. 따뜻하고 차가운 애. 봄은 가을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썼습니다. 언젠가는 만나기를 바라면서. 벚꽃의 화사함을 담아 가을에게 쓴 편지를 여름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봄은, 어서 가을이 자신이 쓴 편지를 읽기를 기다렸겠지요.


  

저 멀리 있다고 믿고 있는 것, 있다고는 들었으나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답장이 올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그렇습니다. 나를 잘 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마저 그 두드림은 허공을 헤매는 돌 팔매질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사실은 스스로도 이 두드림이 허공을 헤매는 손짓이었나 싶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나의 두드림에 미세하게나마 진동이 올 때, 답장이 올 때가 있습니다. 가을의 답장에 봄도 그런 기분이었을까요?


  

그렇게 봄과 가을은 서로에게 편지합니다. 여전히 마주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갑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아서 깊어지는 것들이 있나 봅니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은 끊임없이 ‘의심’과 싸워야 합니다. “진짜 있대?”, “진짜 될 것 같아?”, “그런데 왜 아직도 안 보여?” 봄에게도 의심이 찾아왔습니다. 그 의심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생각들로 변했습니다.


“가을은 나 같은 애 안 만나고 싶을 거야. 나를 만나면 실망할지도 몰라.” 우리 삶에도 봄의 마음처럼 ‘그늘’이 찾아들 때가 있습니다. 도전할 때의 자신감과 설렘은 사라지고 눈에 띄는 발전이나 변화가 없으면 실망하는 마음, 핑계 대려는 마음, 그러다가 결국 내가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까지 가게 됩니다. 사실 그럴 필요 없는데 마음에 짙은 그늘이 생기면 자신의 모습도 온전히 볼 수가 없어서 감추려 하거나 외면하려고 합니다. 여전히 가을은 그 자리에 있고, 꿈은 같은 보폭으로 내게 걸어오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가을의 답장을 받자, 봄의 마음에 그늘이 물러나고 바삭한 햇살이 내려앉았을 겁니다. 가을 역시도 봄과 편지하며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민했고, 봄 덕분에 자신의 존재를 더 아름답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는 서로를 통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존재로 변해갑니다. 달라서 알게 되고 닮아서 위로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겨울은 말해주었습니다. 봄과 가을은 꼭 닮았다고.


여전히 꿈은 저만치 멀리 있는 듯합니다. 만날 수 없는 봄과 가을처럼 그렇게 더 다가갈 수 없는 무언가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오늘의 나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반짝이는 빛이 되며 나를 태울 수 있는 일들을 찾고 해 나가는 것은 내가 이루고자 했던, 만나고자 했던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보다 의미 있는 과정입니다.


오늘의 내가 가진 마음이, 생각이, 걸음이 나의 꿈에게 보내는 편지가 됩니다. 답장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창 밖에 있는 목련나무를 통해 답장이 왔습니다.


꽃이 지면 열매가 난다고,
겨울의 냄새가 짙어지지만 나무 끝에 틔운 봉오리를 보라고,  
다가가고 있다고, 봄이 온다고,

겨울이 다가옵니다. 책의 내용처럼, 겨울이 제게도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꿈과 너는 꼭 닮았다고.



오늘의 언어산책,

- 나와 닮은 계절은 무엇인가요?

-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 봄은 왜 가을이 자신을 보면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 봄에게 가을처럼, 가을에게 봄처럼 ‘나’를 알아가게 하는 존재가 있나요?

- 봄과 가을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좋은 친구가 됩니다. 관계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봄과 가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일까요?


마음을 산책해보면 만나게 되는 언어들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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