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별이 참 두렵습니다. 형제자매 없이 혼자인 탓에 어릴 적부터 친구들이나 친척이 집에 오면 그 가득 찬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영원히 나랑 함께 놀았음 싶은 마음에 평소에 아끼던 장난감들도 손에 쥐어주며 가려는 발걸음을 붙잡으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안녕, 다음에 또보자!” 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지만 여전히 입은 울음을 참고 있던 어린이였습니다.
선생님이 전근 가신다는 말에 하교하지도 못 하고 학교 운동장 나무 밑에 앉아 해가 지도록 울다가 집에 가는 아이였습니다. 바지에는 나뭇잎과 가지가 붙어있고, 눈은 퉁퉁 부어서 엉엉 울며 집에 온 아이를 보고 엄마께서는 사고를 당한 줄 알고 깜짝 놀라셨지요. 유난히도 이별을 힘들어하고 잘 우는 여린 아이, 그래서인지 엄마는 제가 어릴 적부터 이런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너 혼자 남았을 때, 그때에도 여전히 당당하고 멋있게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어.
왜 그런 말을 하느냐며, 엄마 아빠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라고 그러냐며 눈물 콧물로 엉엉 우는 아이에게, 엄마는 꼬옥 안아주시며, 따뜻하지만 단호하게 한결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가장 마음 아픈 이별이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온다고. 여전히 우리는 함께이지만, 따로 있어야 하는 날이 온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에 혼자 남았을 때, 환경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지 말고, 씩씩하게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너와 함께>라는 책이 마침 할아버지, 할머니 사자가 갓 태어난 사랑하는 새끼 사자에게 건네는 말들이기에, 엄마의 말들이 책의 내용과 함께 귀에 울려서 들렸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는 내가 여러 가지 소리에 떨지 않고, 동요하지 않으며 의연하게 걸어가는 사자처럼 그렇게 삶을 걸어 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해주시는 말씀들이 마음 속에 살아 움직이며 나를 다독일 것이고 나를 키워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아가 세상이 늘 환하진 않아. 때때로 어둠에 잠기지. 우리가 함께 있고 싶어도 헤어질 때가 오듯이, 그럴 때면 스스로 빛을 찾아 나서야 해. 희망을 찾아야 한단다.
저는 그림책이 모든 연령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색감과 소통하고 그 질감을 느끼는 것은, 어른들의 소통 방식에 익숙해진 우리의 언어를 깨우고 감각을 살아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이유로든 어린 시절에 다독이지 못했거나 외면했던, 저마다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상처 입은 아이에게 건네는 악수이자 위로이리라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자가 건네는 이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에 여러 세계를 통과하며 내가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이 스쳐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에 이별들을 하며 나름 단단해진 구석도 있네요. 여전히, 이별은 참 힘든 일이지만요.
지난 12월, 중학생이 되는 아이들과 아쉽게도 온라인 상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얼굴을 대면하는 이별이 아니니 실감도 잘 나지 않고 끝난 것 같지도 않아서, 그래도 참을만한 이별이다 여겼는데, 수업 이후에 며칠이 지나 아이들에게 마지막 에세이라며 메일이 왔습니다. 읽고나면 정말 끝일 것같아서 며칠을 미뤄두다가 울면서 아이들의 글을 읽던 연말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하며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는 직업이기에 수많은 직업들 중에 교사라는 직업은 은혜이고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이기에 더 크고 넓고 높은 세계로 언젠가는 보내줘야 하는 자리인 것이 늘 아쉽습니다. 그러나 크고 깊은 세계로 걸어 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 모순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저 역시 이별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놀라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걸어가다가 만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