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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Dyan Mar 03. 2024

있잖아요, 할머니

2024. 03. 01.


할머니, 오늘은 봄의 시작을 알리듯 예쁘게 파란 하늘인데, 아직 바람이 찹니다.

달리는 차에서 창문을 살짝 내리니 들이치는 차가운 바람에 눈꼬리가 시려요. 

오늘은 할머니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드리러 가는 길인데, 이상하게 슬퍼요.


저는 항상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좋으면 좋은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렇게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이에요.

전 여전히 해사로운 빛을 만나면 다음의 어둠을 걱정합니다. 만남의 즐거움이 끝나기도 전에 이별의 아픔을 걱정해요. 그래서 오늘 기뻐할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다가도, 할머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버렸어요.

상상이 만든 눈물이 현실이 될까 봐 저는 연신 눈꼬리에 힘을 주기 바빴습니다. 자꾸만 젖어드는 눈꼬리에 다시 힘을 주며 이 못 된 상상을 떨쳐내려 버둥거렸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할머니. 아무래도 이 못 된 상상을 떨쳐내는 데는 할머니의 웃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의 그 함박웃음 말이에요.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게 웃어주시는 할머니의 미소를 보니, 그제야 못 된 상상이 사그라들었어요.


있잖아요, 할머니. 제가 이런 못된 상상 한다고 너무 혼내지는 마세요. 제가 할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위해서 미리 연습하는 거거든요. 씩씩하게 잘 살 거니까, 걱정 말고 편안하게 가시라고,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서 할머니랑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싶거든요, 전. 눈은 울더라도, 입만은 예쁘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어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게 전 마지막까지 할머니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드는 손녀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가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믿고 있어요.


근데 있잖아요, 할머니. 참 이상하죠. 할아버지랑 이별할 때보다 열 살이 넘게 먹어 몸도 마음도 더 커졌는데, 여전히 이별은 어려워요. 몇 번을 머릿속으로 이 못된 상상을 그려도, 끝은 늘 눈물에 얼굴이 젖어요. 고맙다고 눈물짓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와서인지, 오늘밤은 철 지난 루돌프가 되어 잠이 들게 됐어요.


그러니까요, 할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제가 할머니에게 마지막 선물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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