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비행이었다. 비행이라고 적으니 내가 승무원이나 파일럿이라도 된 기분이다. 오늘의 비행은 계획할 때의 첫 설렘과는 사뭇 달랐다. 같이 여행하는 동생들과 비행깃값과 일정 사이를 줄타기하다가 마침내 잡은 일정이 프로젝트의 마감날 출발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훌훌 떠나리라 다짐했는데……
쩝. 완전히 망한 계획이었다. 비행기를 타기 10분 전까지 노트북을 잡고있는 꼴이 왠지 모르게 더 처량했달까. 그렇게 쓸데없는 짐 2kg를 배낭에 추가하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제주도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비행기는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면 호되게 속앓이를 한 적이 많아 떠나는 마음은 언제나 좋지만 끝내는 마음은 늘 어딘지 불안하고 긴장하게 된다. 이 비행기에서 내린 후 다시 내 속이 또 뒤집어져 있을까 봐, 다시 아플까 봐서 말이다.
비행기를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륙과 착륙의 느낌이 거북하기 때문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으로서 발은 땅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서 찰나의 붕 뜨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분명 발은 비행기 바닥에 붙어있지만, 이륙하는 순간에는 내 발은 대롱대롱, 내 몸은 붕- 떠버린 느낌을 들게만 든다. 이륙과 착륙을 할 때면 귀에 오는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다 고막이 찢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팽팽한 고통을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비행기에서는 이어폰을 꽂지 않는다. 가뜩이나 어딘가 팽팽하고 찌를 것만 같은 느낌이 귀를 장악했는데, 이어폰까지 꽂는다면 그 고통이 나갈 구멍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는 것 같다. 내 귀를 먹먹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그 느낌이 싫어 열심히 침을 삼키며 압력을 맞춰보려 애를 쓴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결국 비행기가 안정적인 고도 또는 땅에 안착해야만 귓속의 혼란도 가라앉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찾아온다는 것. 싫어하는 느낌을 한 번에 몰아 느끼며 점점 신경과 감각이 예민해진다. 비행기의 붕 뜨는 몸짓과 흔들리는 움직임에 내 몸 안의 장기들이 함께 흔들리는 것만 같다. 그래서 비행기의 이륙과 동시에 잠을 청하곤 한다. 그렇게 잠시 잠들었다 비행기도 내 몸도 안정을 찾았을 때 눈을 뜨면 그나마 나아진다. 하지만 오랜만의 비행은 그러지 못했다.
10분 전까지 일을 하다 비행기에 올랐음에도 피곤이나 나른함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염없이 솟는 생각의 방울을 하나씩 터뜨렸다.
"내가 여행을 목적으로 비행기를 탄 지가 언제지?"
어언 5년은 된 것 같다.
"여행을 그렇게 오랫동안 안 간 것 같지는 않은데, 가장 최근에 언제 갔더라?"
작년 4월 경주였다.
"비행기를 타고 국내 여행도 간 적이 그렇게 없었나? 제주도는 언제가 마지막이지?"
이 또한 4~5년은 된 것 같은데..?
"그럼, 해외여행은 언제가 마지막인 거지?"
2018년의 포르투갈이 마지막이네. 벌써 5년 전이다.
"우와, 왜 공항이랑 가까이서 살면서 난 여행을 안 간 거지?"
왜긴 왜야.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풀리고 나서는 돈돈하다 보니 자동으로 줄인 거 아니야?
"나 여행 되게 좋아했는데, 역마살이 있다는 내 사주대로 엄청나게 빨빨거렸는데, 그때의 나는 어디 갔지?"
그때의 나는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던건가
"이렇게 비행기와 여행 생각을 하니 설레는데 이번에 대학원 지원 또 떨어지면 추석에 유럽이나 갈까?"
그래. 나는 늘 항상 이런 식이었는데. 뜬금없이, 즉흥적으로 여행을 뚝딱뚝딱 계획했는데.
"진짜 저질러 버리고 싶다."
요즘 유럽행은 얼마나 하려나 (…)
그렇게 하염없이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기도 했다가, 여행 중에만 나타나는 즉흥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이 뿅 하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게 멍하니 하염없이 생각을 퐁퐁 터뜨렸다. 그러다 시선을 창가로 돌려 내가 지나는 구름을 바라본다. 이렇게 켜켜이 흩어진 구름을 '뚫고 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구름은 어떤 질감인 걸까?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구름 위로 뽀얗게 내리는 햇빛 커튼에 눈을 찡그린다. 이 정도 햇빛이면 선글라스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 모습이 신비로워 넋을 놓고 바라본다. 드라마 ‘매니페스트’에서는 사라진 비행기로부터 돌아온 승객들이 이런 빛을 보고 신의 계시를 받곤 했는데, 그 정도 능력을 주려면 눈이 멀 것 같은 밝기의 더 센 빛이려나? 햇빛 커튼에 시린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서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창밖의 빛깔이 바뀌었다.
세상에! 비행기에서 노을을 만나다니. 노을이 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 중에 타이밍이 맞으면 늘 그런 시간을 갖곤 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보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녁 시간대의 비행기여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을 그렇게 마주했다. 한참을 눈으로만 바라보다가 뒤늦게 아쉬움을 느껴 꺼놨던 핸드폰을 켰다. 제발, 핸드폰이 켜질 때까지 지금의 모습이길 바라면서. 하지만 역시 하늘은 그 30초의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처음 황홀하게 반했던 그 노을의 하늘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상공에서 보는 노을을 담았다. 창가 자리가 아니었음에 다시 아쉬워하며, 핸드폰의 줌 기능을 찬양하며, 그리고 맞은 편 창가 자리 승객이 곤히 잠들어 있음에 감사하며.
오랜만에 만난 비행기와 여행의 느낌이 만족스럽다. 점점 다져진 흙이 되어 가던 일상이 다시 막 쪄낸 감자처럼 포슬포슬해진 느낌이다. 여행하며 그 사이사이에 여유도 넣고, 즐거움도 넣고, 긍정도 넣고 왔다. 포슬포슬한 감성을 가지고 다음 여행을 계획 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