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 banksiae Grizabella

장미, 그리고 '캣츠' 그리자벨라의 아름다운 추억에 대하여

by 다이안 Dyan

꽃의 여왕 장미가 화려하게 본인의 계절인 5월을 수놓으면 우리는 장미의 화려함과 장미 향이 흩날리는 산들바람과 함께 5월을 즐긴다. 하지만 모든 이가 이런 장미의 아름다움을 좇지는 않는다. 그 중 한 사람은 나다. 꽃다발로 즐기는 장미의 향긋함, 다채로운 색감은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정원에서 뿌리를 내린 온전한 장미는 좋아하지 않는다. 꽃다발 속 장미는 화려한 그 순간만 보고 즐기면 그만이지만, 공간 속의 온전한 장미는 녀석의 삶 전체를 봐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려한 꽃이 진 장미의 모습을 알기에 그 서글픈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녀석의 삶을 나누자면 화려한 전성기인 5월에서 6월, 그리고 나머지 시기로 나뉜다. 꽃을 피워 내기 전, 장미는 그저 뾰족한 가시가 달린 줄기가 삐죽빼죽 자라나거나, 아치를 뒤덮은 알 수 없는 식물 중 하나이다. 그래서 화려한 꽃을 피워 내기 전 장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갈색 또는 짙은 녹색의 줄기에 잎의 가장자리마저 날이 서 있으며, 자라나는 모습과 수형이 아름다운 편도 아니다. 덩굴로 자라는 녀석은 타고 올라갈 벽이나 지지대를 더해주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일반 관목의 장미는 그저 삐죽빼죽 자라난다. 어찌 말하면, 화려한 꽃에 비해 줄기도 잎도 참 볼품없다. 그렇게 장미는 화려한 두 달의 시간을 제외하면, 열 달의 시간은 아름답지 않아서, 가시가 돋은 날카로운 존재가 되어 사랑과 관심을 잃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장미의 우아하고 화려한 그 시간은 열 달의 시간 동안 서서히 잊혀 간다.


그런 녀석의 삶을 닮은 것이 있다. 아름답고 우아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늙고 병든 고양이, 뮤지컬 ‘캣츠’의 그리자벨라다. 캣츠에서 그리자벨라는 미묘였던 젊은 시절의 모습과 다르게 털은 잔뜩 엉키고 몸짓은 느려진 늙은 고양이가 되어 젤리클 세계에 돌아온다. 다른 고양이들은 추하고 늙은 그리자벨라의 모습에 하악질을 하며 경계한다. 그런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Memory’는 젊은 날의 화려하고, 아름답던 모습과 사랑받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그리움이 담겨있다. 유월의 어느 날, 장미정원에서 서서히 그 화려함을 내려놓는 녀석들을 보니 고양이 그리자벨라와 그녀의 노래가 떠올랐다.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사랑받길 기다리는 장미의 삶이 어쩐지 그리자벨라의 삶을 닮았다고 느꼈다. ‘그래도 장미 너는 다시 그 계절이 되면 그 모습을 되찾으니, 너의 삶이 덜 기구하지 않니?’라는 위로를 건네본다. 그리자벨라는 다시 예쁘고 아름답던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서 추억을 노래함과 동시에 체념이 묻어있지만, 너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그리자벨라는 젤리클 고양이가 되어 천상의 고양이로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게 됐지만, 너는 묵묵히 시간을 견뎌내기만 하면 다시 그 시절이 돌아오니까 말이야. 그리자벨라가 추억에서 시작해서 새로운 삶을 그리듯이 너의 화려한 전성기는 추억으로 자양분이 되어 다음 해의 너를 더 빛나게 해줄 거야.



장미, 너의 생애를 위로하다 보니 너에게 줄 위로가 하나 더 생겼어. 내게도 온전한 너를 사랑했던 기억이 있어. 나, 너를 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야. 그저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좀 속상하고, 어딘가에서는 그리움이 차오를 뿐이지. 내가 사랑하는 너의 기억은 어쩌면 상상의 동물 해태, 봉황, 기린처럼 존재가 신비로운 것일지도 몰라. 짙은 빨간 벽돌의 담벼락 위로 솟아오른 노란 장미 한 송이. 그런데 그 노란색이 특별해. 버터 색에 흰색을 조금 섞어 연하게 만들고, 그 위에 분홍 물감 한 방울을 톡 떨어뜨려 긴 막대로 한 바퀴를 휙 저어 만든 색이었거든. 소고기의 마블링처럼 마구 분홍색이 섞인 것이 아니라, 딱 한 번 휘저어 번진 느낌도 어린 그런 색 말이야. 이처럼 오묘한 색상의 장미 한 그루가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의 앞마당에 서 있었어.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장미의 색을 잊지 못 해. 빨간 간판의 사탕 가게에서 파는 달콤한 사탕 같은 그 꽃송이가 낡은 붉은 벽돌 앞에서 고고하게 햇빛을 받아 빛나던 그 모습을. 기억은 미화된다는 인간의 말이 있어.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이 상상의 동물 같은 장미는 미화된 기억 중 한 편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직도 내 기억 속의 장미와 똑같은 장미를 다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장미는 내 기억 속에서 더 신비롭고,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어.


너를 마주하게 될 때면, 그 기억이 더 선명해져. 그래서 너의 화려한 모습 속에서 아직 같은 장미를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움의 감정이 한 데 뒤섞여. 이렇게 뒤섞인 감정이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을 향하는 너와 그리자벨라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너를 불편해했던 이유는 어른이 돼버린 내가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봤던 일곱 살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잘 알아서였을지도 모르겠어. 장미 너도, 그리자벨라도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나는 아직 그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여전히 내 기억 속 장미를 찾아 헤매곤 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아.




Rosa banksiae Grizabellaㅇㅇ

Rosa banksiae는 목향장미의 학명입니다. 식물의 학명은 "속명(Rosa) 종명(banksiae) 변종명, 품종명(Grizabella)"으로 이뤄집니다. 여기서 'Grizabella'는 제가 임의로 만든 품종인데, 실재했으면 좋겠네요:)

Rosa banksi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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