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 : 아낌없이 주는 나무

by 다이안 Dyan

헬스장에서 잔뜩 땀을 흘리고 나오는 터덜터덜한 발걸음을 사로잡는 향기가 있었다. 포도 맛 비타민처럼 달짝지근한 향기. 걸음을 옮길수록 진해지는 걸 보니, 향기의 근원지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킁킁. 그렇게 또 탐지견이라도 된 것처럼, 꽃향기를 찾아 나선다. 향수를 싫어했던 시절에도 좋아하던 향 중 하나는 꽃향기였다. 화장품이 뿜어대는 인위적인 향이 아닌, 진짜 꽃에 코를 처박고 맡으면 나는 그런 향. 물론 모든 꽃의 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조팝나무의 향은 코를 처박고 맡기에는 향이 너무 진해서인지 비릿함이 끄트머리에 감돌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근력운동으로 지친 몸이 홀린 듯이 찾아 헤매는 이 향은 그렇지 않다. 달디 달다. 달콤한데 향긋한 풀잎 향이 어려 있다. 드디어 이 진한 달콤함의 시작점을 찾았다. 너였구나, 아까시나무.



아까시나무, 너를 어릴 때는 ‘아카시아’라고 많이 불렀다. 하지만 진짜 ‘아카시아’는 아프리카 초원의 어딘가에서 기린이 뜯고 있을 그런 나무이기에 우리의 “아까시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네”라는 초등학교 음악 시간부터 대학교 술자리에서까지 불렀던 그 노래의 아카시아 역시 ‘아까시나무’가 맞다. 본의 아니게 전 국민 대상의 사기꾼, 아니 사기목(木)이 되어버린 아까시나무도 참 억울할 것이다. 본명인 “아까시나무”를 두고, 의지와 상관없이 가짜 이름인 ‘아카시아’로 불리고 있었다니 말이다. 그리고 어릴 적 나는 그런 아까시나무를 벌하기라도 하듯이 잎을 참 많이도 뜯었다. 우리 가족은 일요일마다 뒷산을 올랐다. 우리가 항상 가는 코스는 ‘쉬어가는 숲’까지였다. 딱 거기까지만 올라 과일을 먹으며 숨을 고르고 난 뒤, 반대편 내리막길로 내려왔다.


일요일 아침 하산길의 기억 중 한 장면은 아까시나무 잎을 한 장씩 떼며 내려오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배운 대로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안 한다”를 잎을 한 장씩 뗄 때마다 말하는 그런 놀이였다. 일곱 살과 여섯 살에게는 사생결단의 질문이고, 아까시나무는 그 무거운 질문에 답을 내릴 잎을 제공해야 했다. 일곱 살의 내가 신나서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 내려가면, 여섯 살의 동생은 기어이 엄마 팔에 매달려 그럴 리 없다며 징징거렸다. 여섯 살의 동생이 의기양양하게 엄마 옆에 꼭 붙어 웃을 때면, 일곱 살의 나는 다시 아까시나무 잎을 뜯어와선 다시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리려 했다. 아까시나무, 너의 생때같은 잎들을 내가 너무 많이 뜯었던 것은 아닌지 미안하다. 사랑을 확인하는 게 중요했던 일곱 살의 어린 마음을 부디 너의 넓게 뻗은 뿌리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길 바라본다.



어릴 때면 산에서 흔하게 보던 너였는데, 생각해 보니 아까시나무 너를 만나는 게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주인이 없는 땅인지 쓰레기가 흩날리는 노지에 빼 빼 마른 몸에 하얀 꽃을 주렁주렁 달고선 서 있는 너를 만났다. 하얀 꽃이 굴비를 엮은 듯이 길게 늘어져 긴 발이 달린 중국집 문 앞을 떠올리게 했다. 네가 늘어뜨린 하얀 사탕들을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두 개의 꽃잎은 마치 상대를 경계하듯 꼿꼿이 방패처럼 서 있고, 나머지 꽃잎은 마치 주둥이처럼 모아져 있는 모습이다. 아래로 매달린 꽃을 바닥에 누워 정면으로 쳐다본다면, 입을 쩌억 벌린 영화 속 괴물처럼 보일 것만 같다. 꼿꼿이 핀 꽃잎으로는 푸드덕 날갯짓하고, 주둥이 속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크아아앙’ 위협하는 그런 괴물의 모습 말이다. 언젠가 아기인 조카가 어린이가 되면, 아까시나무꽃으로 놀려줘야지. 하지만 이 하얀 사탕이 마냥 무섭게만 생긴 것은 아니다. 금낭화의 꽃으로 하트 귀고리를 만들듯이, 조카의 귀에 걸어주며 가지고 놀 수 있는 생김새다. 귀고리가 되기에 충분히 예쁘고 아담한 너의 꽃을 보면서 괴물 놀이를 떠올리게 되는 건, 울먹이는 조카의 귀여운 모습이 보고 싶은 못된 어른이의 마음이랄까!


내가 너의 꽃으로 조카를 골려줄 생각을 할 때, 주변의 꿀벌들은 일하기 바쁘다. 우리 집 찬장 위의 꿀 병을 장식하던 너의 이름, 물론 그곳마저도 너의 가짜 이름인 ‘아카시아’가 자리 잡고 있긴 했다. 아까시나무 너의 달콤한 꽃은 그렇게 꿀벌에게 꽃꿀과 꽃가루를 내주며 달콤한 꿀을 만드는 걸 돕는다. 너의 꽃은 전형적인 콩과식물의 모양으로, 식물의 분류 기준은 생식기관인 꽃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예를 들어 아까시나무와 같은 콩과식물인 등나무의 꽃은 색은 다르지만, 꽃의 모양은 아까시나무의 꽃과 닮았다. 전형적인 콩과식물인 아까시나무는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산을 복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녀석이다. 정확히는 공을 세우라고 심어진 녀석이다. 콩과 식물은 비료식물이라 불리며,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가지고 있는 식물이다. 그렇다 보니 영양분이 부족한 토양에 이 콩과 식물은 영양분을 고정해 주며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착한 나무이다.



하지만 선한 존재는 하늘이 알아보고 빨리 데려간다는 말처럼, 아까시나무의 수명은 50년 전후로 그렇게 길지 않다. 그렇게 나무치고 짧다면 짧은 수명을 다하면 아까시나무는 속부터 서서히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아까시나무 너야말로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의 사랑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꼬마들에게는 잎을 내어주었고, 흐드러지게 핀 하얀 꽃은 꿀벌에게 식량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너의 뿌리는 다른 식물이 자라기 좋은 흙을 만들었고 그렇게 너의 역할을 다했다 싶으면, 넌 다시 흙으로 돌아가 또 양분이 되니 말이다.


진한 향을 풍기던 너의 하얀 사탕은 이제 노란 카스텔라 가루가 되어 바닥을 장식하며, 달콤함으로 5월의 마지막을 온점을 찍는다. 달콤한 추억 여행까지 선물하는 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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