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비에 젖으면

2023.10. 04.

by 다이안 Dyan


저녁을 향해가는 시간,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아스팔트를 흥건하게 적시는 가을비가 쏟아졌다. 한껏 물을 머금은 아스팔트는 머리 위의 신호등을, 무릎 만치의 자동차 후미등 빛을 반사시키며 장난을 치기 바쁘다.


비가 오는 날이라서 평소보다 일찍 회사를 나섰다. 가뜩이나 차가 많은 서울의 도로에 비까지 오는 퇴근길이면, 너도 나도 빨리 가겠다는 차들로 도로는 시장통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무 일찍 나온 탓인지 버스에 내려 세월아, 네월아 걸어도 강의 30분 전에 도착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의 발걸음과 몸짓은 물에 젖은 솜처럼 한층 더 무거워졌다. 나무늘보라도 된 듯이 한 걸음, 한 걸음을 느리게 옮기며 조금은 멍하게 앞을 바라보고 걷는다. 움직임이 느려지자 호흡도 길어진다. 호흡이 길어지자 긴장이 풀리며 눈앞의 풍경을 관망하듯 바라본다. 쏟아져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오토바이만 피하면 그만이라는 듯이.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시각에 대한 집중을 스르르 내려놓자 청각이 또렷해졌다.


자동차의 바퀴가 얕게 깔린 아스팔트 위의 물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촤아아. 놀이동산에 있는 후룸라라이드가 레일을 가르며 물을 뿜는 소리가 물의 깊이만큼 얕게 들린다. 마른날의 아스팔트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전부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소리가 비에 젖으니, 물을 가르는 소리가 생생해졌다.


보도 위 나무늘보 한 마리를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바삐 움직인다. 대학생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나무늘보를 에워싼다. 느린 걸음걸이와 달리 10년 전 저맘때의 내 모습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친다. 다른 강의를 들어도 끝나는 시간이 같으면 굳이 친구를 만나서 같이 버스 정류장을 향하곤 했다. 수업이 어땠고로 시작하다 보면 발걸음은 학교 앞 카페 또는 분식집을 향하기도 했다. 웃기거나 놀라운 얘기를 들으면 길 위에서도 크게 폭소하고 소리치며 되묻곤 했다. 나도 저렇게 밝게 재잘거리던 때가 있었는데, 소리가 비에 젖으니 추억이 생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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