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시공간

2023. 11. 06.

by 다이안 Dyan
1000005126.jpg


밤새 창문을 무섭게도 두드리던 빗줄기는 아침이 되어도 멈출 줄을 몰랐다. 빗방울에서 빗줄기로, 점에서 선으로, 그렇게 모습을 바꾸며 흐린 하늘을 추적추적 적셔갔다. 짙은 회색의 먹구름이 잔뜩 하늘에 몰려오더니 곧 밀도 있는 하얀 구름이 넓고도 짙게 펼쳐진다. 그렇게 비가 내리는 하늘은 잔뜩 흐린 하늘을 몰고 오며 해의 존재감을 지워낸다. 그렇게 해와 함께 사라져 가는 시간 감각을 바라만 보며, 빛이 사라진 무채색의 시공간 속을 거닌다.


쏟아지는 비에 옮기는 걸음마다 물이 차이지만, 무채색의 시공간은 건조하다. 멈춘 듯한 시간과 함께 감정선은 영점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아침 출근길의 고단함도, 점심시간의 나른함도 종적을 감췄다. 그렇게 멈춰버린 감정과 시간과 함께 생각도 멎어들며, 건조하게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퇴근길 지하철의 창 밖을 멍하니 쳐다보는 그런 여백과 공백만이 머릿속을 채운다.


작은 창과 모니터만 바라보던 단조롭고 멍한 일상의 끄트머리에 접어들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본다. 붓의 놀림은 거센 바람에 잎을 떨궈낸 마른 가지의 쓸쓸함을 그린다. 다시 먹을 머금은 붓은 꽃을 잃은 채 남은 외로운 꽃대를 마저 그리며 화선지를 수놓는다. 쏟아지는 비는 그렇게 감정의 농담을 담아내며 감정에 찬 공기가 스미는 계절임을 알린다. 모든 게 멈췄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도 하늘은 멈춘 적이 없었다. 멈춘 것은 오롯이 나 하나였을 뿐.






https://brunch.co.kr/brunchbook/write-today-sk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시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