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을 찾아 오르는 경사길, 묵직한 가방을 메고 우산까지 든 걸음이 무겁다. 8시간의 근무를 마쳐 피로가 쌓인 직장인의 몸뚱이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자꾸만 처진다. 학교와 수업은 나이가 들어도 싫은 건 똑같은 모양이다. 본능적으로 몸이 앞으로 가길 거부하는 것 같다.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몸은 뒤로 쭈욱 빠지고, 고개는 땅에 푹 처박은 채 꾸역꾸역 걷는다. 경사길을 오르다 잠시 고개를 드니 가로등 아래 비에 젖은 능소화가 보인다. 매주 수요일마다 보던 풍경인데, 비에 젖어 촉촉한 능소화가 유독 아련해 보인다.
능소화는 해가 쨍쨍한 여름의 무더위에도 꽃을 피워내는 기특한 식물이다. 누군가는 초록의 녹음 사이 피어난 화려한 녀석에게 애정 어린 눈길을 주곤 한다. 하지만 여름이면 나는 곧 ‘녹아내릴 것’ 같은 모양으로 기운 없이 흐느적거리는 슬라임이 되는 인간이다. 그렇다 보니 여름날의 햇빛처럼 쨍한 능소화의 주홍빛은 내겐 너무 강렬하다. 진하고 강렬한 주홍빛 앞에선 훕- 하고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존재를 대할 때, 내가 넣는 기합. 그렇게 화려함을 견디기 위해 나만의 기합을 다시 불어넣곤 했다.
그런데 촉촉한 오늘의 능소화는 오히려 내가 기합을 불어넣어 줘야 할 것 같은 모습이다. 비에 젖은 모습이 여리고, 아련하다. 비에 홀딱 젖은 한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처럼 청초하고 구슬프다. 가로등 빛에 보이는 빗줄기가 유독 가혹해 보인다. 저 여린 여인의 옷깃을 얼마나 더 적시려는 걸까 싶다. 여인의 땋아 내린 머리처럼, 능소화의 가지는 땅을 향해 길게 늘어져있다. 능소화의 처진 가지마저 비와 어우러져 한 편의 사극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려했던 여름을 보내는 것이 서러운 것일까, 9월의 능소화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비에 눈물을 함께 흘려보내는 것 같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울까, 무엇이 그렇게 한이 됐을까. 해금 소리처럼 구슬피 내리는 빗 속에서 능소화를 바라보다 나의 팔도 촉촉이 젖어들었다.
능소화의 모습에서 한(恨)을 처음 느낀 것은 땅바닥을 뒹굴던 꽃송이의 모습에서였다. 나팔꽃처럼 통꽃인 능소화는 꽃이 질 때면 꽃 하나가 툭 떨어지곤 한다. 다른 꽃들처럼 꽃잎이 하나, 하나, 먼저 떨어지며 말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능소화가 지는 모습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 같기도, 적장을 끌어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린 논개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서글픈 여인들의 죽음이 능소화의 꽃잎을 붉게 적신 것만 같다. 한(恨)이란, 원망과 억울함이 서려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읽어왔던 심청이와 논개의 이야기는 자발적 희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처연하게 땅에 떨어진 능소화 꽃에서 작은 외침이 들렸다.
역사를 거닐던 여인이 외쳤다. '나에게도 꽃을 피워낼 시간이 필요했어요.'
상상의 세상을 거닐던 여인이 외쳤다. '파도에 뛰어들던 서슬 퍼런 공포가 생생해요.'
어린 여인들은 죽음을 일찍이 마주해야 했다.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 지워졌던 세상이었다. 그들의 운명은 희생과 사랑이라는 짐에 짓눌려 그 길이를 달리해야 했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효심, 조국을 향한 사랑과 충성이 정말 그 소녀들의 심장 저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온 피였을까. 어쩌면 자식 된 도리라는 명목하에 교육된 사랑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신분을 따라 매겨진 목숨 값에 가장 약한 존재들이 먼저 그 값을 지불한 것은 아니었을까. 일찍이 죽음의 얼굴을 마주했던 공포를 안겨준 세상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 작은 몸뚱이가 죽음을 대면하게 만든 세상을 향해 억울함을 키워왔을 것이다. 왜 희생이 당연했냐고 되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를 스친 여인은 짤막해진 자신의 운명을 바라보며 한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상상의 세상을 헤매던 여인은 운명을 다시 이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뛰어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밤을 괴로움 속을 헤엄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떨어진 능소화 속에 서글픈 여인의 원망과 어린 소녀의 억울함이 보인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여름날, 두 여인의 원망과 한이 붉게 피어나자 그 붉은 꽃 아래서 오늘의 소녀는 고운 자태로 피어난다. 반짝 빛나는 금발을 곱게 한쪽으로 땋아 내린 소녀가 해바라기처럼 노란 원피스를 입고선, 카메라를 향해 해사로이 웃어 보인다. 그 웃음에는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이 그득하다. 마치 두 여인이 품은 원망에 대한 위로인양, 그녀들이 누리지 못한 해맑은 어린 시절에 대한 보답인양 오늘날의 소녀는 해사롭게 웃어 보인다. 능소화가 다시는 오늘처럼 홀로 눈물짓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내년에 다시 만날 능소화는 소녀의 해사로운 웃음을 담아 더 붉게 피어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