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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한 Jan 21. 2021

2. 아이보리 플리스 집업 재킷

엄마의 옷장 속 보물 아이템_2020-2021 F/W_아우터

  한 때 겨울철 등산복으로 여겼던 플리스[1], 일명 ‘후리스’는 그간 내 옷장 속 지분을 거의 허락한 적이 없던 아이템이었다. 대학 시절 동아리 단체복으로 맞춰 입었던 시커먼 후리스는 세탁기에 한 번씩 돌릴 때마다 보풀이 엄청나게 일어서는 얼마 못 가서 외출복으로는 면이 안 서는 지경에 이르곤 했다. 이제는 패션 전반에 스포티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바람이 불면서 플리스 또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올해는 유독 양모처럼 곱슬곱슬하게 가공한 플리스 집업 재킷이 유행이다.


  재작년쯤에 오랜 무관심을 깨고 나도 플리스 재킷이 하나쯤 갖고 싶어졌다. 모처럼 해외 출장 갈 일이 생겼는데 패딩보다는 활동성 있으면서도 따뜻한 옷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SPA 브랜드에서 테디베어처럼 몽글몽글한 소재로 만든 베이지색 플리스 재킷을 하나 샀다. 그런데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세탁을 하자마자 그 귀여운 털이 어마어마하게 빠지는 바람에 몇 번 입지도 못한 옷을 고스란히 쓰레기통에 넣고 말았다. 아니, 아무리 패스트 패션이라지만 이런 퀄리티의 옷을 당당하게 팔 수 있다는 건가? 과연 이놈의 '플리스 트라우마'를 언제쯤 극복할까 꽤나 속이 쓰리던 차에, 얼마 전 엄마 옷장에서 엄청나게 귀여운 플리스 재킷을 발견하고 홀린 듯이 입어보았다.


  감촉은 곱슬곱슬한 양털보다는 아기솜털처럼 짧고 가느다란 모질이 잔잔한 캐시미어 쪽이었다. 폭닥 폭닥한 담요에 볼을 부빌 때 느껴지는 포근한 안도감이 이 옷에서도 느껴졌다. 자칫 부해 보일 수 있는 밝은 색의 오버사이즈 집업을 멋스럽게 만들어 준 디자인적 요소, 그 한 끗 차이는 바로 적재적소에 배치된 검은색 스트라이프였다. 넓은 면을 검은 선들이 여러 조각으로 분할해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소매와 포켓에 같은 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정돈된 느낌을 살렸다. 지퍼 고리 끝에 스퀘어 링 장식으로 위트까지 더한 소소하지만 공을 들인 데가 많은 옷이었다. 입어보니 가볍고 따뜻했다. 품도 넉넉해서 좀 더 추워지면 다른 옷을 겹겹이 레이어드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역시 내 눈썰미 아니, 안 여사의 눈썰미는 틀림없어..!’


  무엇보다 이건 '양 떼들의 유행'이 지나가도 충분히 입을 수 있을 디자인이었다. 갑자기 내 눈앞에 등장해서 홀로 열일하는 이 플리스 재킷에 반해버린 나는 결국 안 여사에게 졸라서 종종 빌려 입어도 된다고 허락까지 받았다. 안 여사는 이런 옷을 어디서 샀을까? 아니, 어떻게 발견하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값비싼 명품은 아니라는 점. 상관없다. 오히려 빌려 입기에는 마음이 편했다. 다 떠나서 겨울엔 예쁘고 따뜻한 게 최고니까!


 Styling tip -  스커트, 원피스, 팬츠 어떤 옷이랑 입어도 다 어울리는 포용력을 갖춘 재킷이라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원픽은 아이보리색 롱스커트와 매치한 룩.

  가방이나 신발을 잘 고르면 전체적인 코디의 완성도가 올라간다. 개인적으로 신발에 포인트를 주는 걸 즐기는 편이다. 가방은 무거운 핸드백 대신 신발과 같은 녹색 계열의 벨벳 미니 백팩으로 경쾌한 느낌을 살려보았다.




[1] 플리스(fleece): 부드러운 파일을 가진 폴리에스터 소재. 표면의 파일(pile)이 일어나도록 만든 가볍고 따뜻한 직물 또는 편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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