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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유월 Jan 20. 2022

<언프레임드>: 어디선가 느껴본 삶의 조각들

영화 ‘언프레임드’를 보고

영화 언프레임드: 3번째 이야기 ‘반디’


4편의 단편영화 중 가장 울림이 컸던 반디.


이상하게 나와 닮았다고 생각되는 영화였다.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삶의 한 조각들, 그리고 순간들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같다’라는 단어에 대해 사람들이 내리는 정의는 무엇일까? 각자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극적인 한 순간, 로맨스 영화의 낭만적인 장면? 나는 ‘영화 같다’는 단어가 현실과 매우 근접해있는 단어라 생각한다. 그저 우리 삶의 한 조각들을 잘라내어 스크린에 띄운 듯한 그런 순간들 말이다. 판타지같이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도 있지만, 많은 영화들은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을 담고는 한다. 그러한 영화는, 역으로 그러한 평범한 일상도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우리의 일상이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반디는 그런의미에서 따뜻한 현대소설과 같이,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처럼 보였다.


반디는 고요한 일상 속 사라져버린 그 조각들을 회상하는 영화이다. 사라져버린 것, 즉 반디의 아빠에 대한 서술은 반디의 대화에 의해서 굉장히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엄마는 반디에게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아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한다. 아빠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안 반디의 충격이 너무 클까봐 걱정하면서. 반디의 친할머니는 원석이가 이세상에 없어도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 애는 항상 내 곁에 남아있어’라고 대답한다. 반디를 보기 전까지 지극히도 평범하게 보였던 이 대사는 반디의 순수한 대화에 의해 뭔가 특별해진다. 우리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들이 사라지는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그들과 더 소통할 수 없다고. 하지만 반디는 아빠와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지만 아빠에 대해 배워나가고 있다. 엄마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과, 아직 남아있는 아빠의 흔적들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 세상을 떠났어도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여전히 그들을 배워나갈 수 있다. 반디는 말한다. ‘엄마, 나 아빠에 대해 엄청 잘 알아’. 아빠가 사라졌어도 반디는 아빠의 화구통, 책의 낙서, 반딧불이, 그리고 추억의 고깃집을 통해 아빠를 배워나가고 있다. 반디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언젠가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는 엄마의 말은 무슨 의미일까. 옛날에 있던 반딧불이도 지금은 없을 수도 있는거야, 여기서 엄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리고 아빠도…’ 라는 말? 하지만 반디는 대답한다. ‘하지만 엄마 반딧불이가 사라진게 아니라, 숨어있는 것 같아. 그리고 아빠도.’ 그래, 아빠는 사라진게 아니라 숨어있는거야. 반디의 아빠가 정말, 이 세상 속에서 사라졌어도, 반디에게 아빠는 사라진 존재가 아니다. 반디에게 아빠는, 앞으로 찾아나가야 할 존재이다.그가 곁에 없더라도, 반디는 아빠의 물건들을 통해 하나씩 아빠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나가면서 그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사라진다’는 단어는 사전에 나오는 것처럼 ‘현상이나 물체의 자취따위가 없어지다’와 같이 딱딱한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진정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사라짐이 아니라 정신적인 사라짐에서 온다. 우리가 그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셈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죽음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는 기억에서 그들을 떠나보내는 행위가 아니라, 그들을 우리의 기억속에 심는 행위일 것이다.



‘엄마,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책은?’
‘음…원피스?’
‘땡!’
‘그럼, 삼국지?’
‘땡!’
‘그럼 뭔데?’
‘슬램덩크! 명작 중의 명작이지.’

엄마와 아빠의 대학시절 낙서를 본 반디는 20년전에 아빠가 엄마에게 던진 질문을 그대로 읊는다.
20년전과 여전히 똑같은 대답을 하고, 틀린 답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모습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뭉클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겪어보지도 않은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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