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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유월 Apr 13. 2022

<몽마르트 파파>: 삶은 아주 길고, 또 느리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를 보고

큰 꿈이 아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게 해준 영화.


항상 거창한 꿈을 가진 사람이 되고싶었다. 무언가를 이룬, 성공한 사람. 대학생이 되고 더 여유로워졌음에도 마음 속을 짓누르는 이상한 불편함이 느껴지고는 했다.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별거 이루지 못한 초라한 사람이 되어 버리면 어떡하지? 내 동기들은 다 자기 갈 곳을 찾은 것처럼 내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처러 느껴졌고, 나는 불안해했다. 이 다큐를 보며 느꼈다. 삶은 아주 길고, 또 느리다는 것을.


사실 학교 미술선생님들은 진짜 미술인이 아니라는 냉담하고 잔인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나는 절대 미술 선생님은 안 할거야’라는 말이 입에 붙어다녔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나의 시선을 부끄럽게 만든다. 미술선생님들은 고리타분하고, 진짜 미술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들은 이미 어릴적 꿈을 잃어버린 고리타분한 사람들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그 꿈을 기억해낸 사람이라는 이 영화 속 파파가 존경스러웠다. 


다큐의 연출 자체가 특별했다기보다는, 이 다큐를 기획한 동기와 생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저 평범하게만 보였던 아빠의, 지극히 평범한 여정을 기록한 이 다큐는 너무 재미있고 사랑스러웠다. 엄마, 아빠에게도 오래 간직해왔던 꿈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아빠의 오랜 꿈을 기록한 이 영화는 보는 이에게도, 그리고 이 영화를 찍은 아들에게는 영원히 가치있게 남을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소박한 꿈이어도 괜찮다. 그 소박한 꿈이 그 누구나 비웃을 만한 작은 일이라도 하더라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결국 나를 이루는 것은 소박한 꿈 아닐까? 모든 사람이 살면서 거창한 것을 이루고 가겠다는 포부를 품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년에는 파리 여행을 가야지’, ‘다음주에는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을 챙겨드려야지’와 작은 작은 꿈들이 우리가 삶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 아닐까. 


큰 꿈만이 나를 가치있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큰 꿈을 가진 자가 가치있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동안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작은 꿈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다 작은 소망에서 오는 것이니까. 내가 미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때 나는 어떤 꿈을 품고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지? 그저 멋진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보고, ‘와 저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싶다’ 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때는 잘그리든, 못 그리든 그저 그림을 그리는 게 즐거웠는데, 이제는 나의 실력은 물론 나의 열정까지 의심을 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림에 대한 나의 열정이 얼마만큼인지, 나는 요즘 그것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과연 나는 계속 미술을 할 만큼 미술에 열정이 있는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싱 스트리트의 대사처럼, ‘go now, be wrong’이라는 말이, 영화의 극적이 순간이 아니라, 아주 사실적이게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항상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 해봐, 일단 저질러봐’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단 한순간이어도 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주인공은 항상 저지르고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걸 보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을 했다. ‘저런 일들은 꿈이나,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 아니야?내가 저럴 수 있을까?’ 마음은 갈증을 일으키는데, 현실성은 턱없이 부족해보였다. 하지만 그런 용기를 갖는 게 결코 어렵고,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몽마르트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것.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파파에게는 일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여느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큰 용기를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용기라는 것은 그저 스스로 마음먹으면 되는 거였다. 그 일의 규모에 상관없이, 그저 내가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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