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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유월 Jul 04. 2023

<바빌론>:사랑은 바빌론을 타고

영화 ‘바빌론’을 보고

영화관을 나오고 내가 처음 한 생각,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평론가의 책 타이틀인데, 정말 영화가 두번 시작된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한 날. 좋은 영화는 극장을 나와도 계속 내 머리 속에서 상영된다.


1.바빌론


‘바빌론’은 관객에 따라 그 여운의 강도가 아주 달라지는 영화다.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바빌론은 더 그렇다. 기존의 singing in the rain이나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대를 다룬 영화가 많은만큼, 영화자체가 가지고 있는 플롯이나 이야기의 신선함이 확실히 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오마주와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이 영화는 어떤 이에게는 ‘아주’ 특별한 감정을 선사하는 영화이다. 즉,이야기 자체보다 영화에 들어있는 감정을 읽는 게 중요한 영화인 것이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 혹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대에 대한 조금의 관심 혹은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감정을 읽기가 더 쉬울 것이다.




2. Singing in the rain과 바빌론이 교차하는 지점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아주 묘하다. 수많은 영화들, 흔히들 영화사에 큰 영향을 끼친 명작으로 일컫어지는 영화들의 장면이 콜라주처럼 지나가는 장면. 어떻게 보면 마치 영화사 수업을 듣는 것처럼 너무 과한가 싶으면서도, 마치 이 엔딩 시퀀스가 아니었다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영화사를 다룬 영화를 한 편 쭉 보는 것처럼 장면들이 지나간 후, 찾아오는 건 바빌론의 장면들이 잉크로 물드는 듯한 감각적인 장면들이다. 이 시퀀스는 마치 영화자체가 영화 내부를 벗어나 제 3자의 시선을 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할리우드 고전 영화(singing in the rain, jazz singer 등)가 지나가고, singing in the rain의 명장면을 바라보는 주인공 ‘매니’의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눈빛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 시퀀스에 삽입되어 있는 영화 ‘속’의 영화 ‘속’의 영화-바빌론 속의 singing in the rain , singing in the rain 속의 또 다른 가상의 영화장면-의 몇 장면들은 매니가 1920년대 영화를 제작하면서 목격한 몇장면과도 닮아있다.

특히 실제 영화 singing in the rain 속, i love you를 외치며 익살스럽게 연기를 하는 진 켈리의 모습, 목소리가 이상해 결국 유성영화로의 진출에 실패한 여주인공의 모습. 모두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와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의 모습 중 한조각을 따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현재는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한 두 주인공. 매니는 현재 지극히도 ‘평범한’,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가 꿈꾸었던 영화에서는 이미 손을 뗀지 오래다. 이제는 영화와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매니. 그가 오랜만에 할리우드에 방문해 본 첫 영화가 singing in the rain이라니, 그는 그 영화를 보며 자신의 빛나면서도 추악했던 할리우드에서의 전성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너무 더럽고, 추악하고, 자신을 거의 죽음까지 몰고갔던 할리우드,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영화를 여전히 너무나도 사랑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바빌론 리뷰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 ‘영화에 대해 절절히 고백하는 장대한 서사시, 고귀해서가 아니라 너라서 사랑해’. 매니는 그래서, 그래도 여전히 영화를 사랑한다. singing in the rain을 보면서 그에게 찾아왔었던 노스텔지어는 정말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웠을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참 좋다.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는데,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키스신 모음집이 아름다운 노스텔지어만을 보여줬다면, 바빌론은 애증의 노스텔지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잭 콘레드(브레드 피트)와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3.바빌론이 차용한 영화들


이 영화는 할리우드, 혹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데미언 셔젤의 엄청난 애정을 쏟아부은 영화다. 그래서인지 교차점을 찾을 수 있는 영화가 한두개가 아니다. Singing in the rain과 재즈싱어는 물론, 위대한 개츠비, 시네마 천국, 나이트메어 앨리, 그리고 감독의 전작인 라라랜드까지. 그럼에도 얄밉지가 않고, 영화가 보여주는 자극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나는 이 영화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혹은 이 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사랑스럽게 느껴졌거나. 이 추측들은 그저 개인적인 나의 감상과 생각의 일부일 뿐이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1)singing in the rain,재즈싱어

singing in the rain의 구조를 비슷하게 따오면서 자연스럽게 재즈싱어까지 레퍼런스가 되었다. singing in the rain의 경우, 시대와 캐릭터도 닮아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영화자체를 바빌론 영화내에 삽입했으니 이것은 명백한 레퍼런스다. 바빌론 자체가 유성에서 무성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배우와 영화계의 변화를 다룬 영화로 singing in the rain이 택한 플롯의 핵심 부분을 서술하고 있다. 재즈 싱어는 바빌론과 singing in the rain 영화 내에 영화계를 바꾸어놓았던 유성영화의 진출을 뜻하는 은유적인 아이콘으로 쓰이고 있다.


2)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와는 아주 흥미로운 교차점을 형성하고 있다. singing in the rain과 위대한 개츠비의 ‘서술자의 위치’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 두 이야기는 모두 ‘1인칭 관찰자’ 같은 시점을 택하고 있다. 엄연히 말하면, 이는 문학에 해당되는 용어이므로 영화에 적용하기는 무리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영화 또한 움직이는 문학의 일부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충분히 적용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이니 의심할 여지없이 1인칭 관찰자 시점이지만, 영화는 애매모호하기는 하다. 하지만 영화의 시점을 분석해본다면 대부분의 영화는 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매니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매니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되는 것처럼, 즉, 1인칭 주인공 시점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영화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철저히 매니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매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니가 바라보는 잭과 넬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니’는 할리우드의 이야기, 주로 잭 콘래드와 넬리 라로이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도구장치로서 이용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안 좋은 의미가 아니라, 그냥 목적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개츠비를 바라보는 닉의 시점처럼, 1인칭 관찰자의 시점을 택하고 있다.


캐릭터의 포지션도 비슷하다. 아주 부패한 세계관 속에서 가장 낮은 레벨의 사람으로, 아주 순진한 위치에 서 있는 인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매니가 비춰지는 방식이 ‘위대한 개츠비’ 속 ‘닉’이 비춰지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다른점이라면, 후반부로 갈수록 ‘매니’는 더이상 사건의 바깥에 있는 관찰자가 아니라 아주 중심부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3)시네마 천국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마지막 엔딩 시퀀스의 느낌이 비슷하다.


4)나이트메어 앨리

토비 맥과이어가 나오는 후반부 장면때문에 나이트메어 앨리가 연상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큰 관련이 없지만, 후반부 동굴 장면은 정말 나이트메어 앨리스러운 느낌을 많이 띄고 있었다. 사실 이 동굴 장면은 약간 영화의 큰 결과 맞지 않는 느낌이라 약간 깨기는 했지만, 나름 흥미롭게 느껴지는 장치이기도 했다.


5)라라랜드, 위플래쉬

기법적인 측면에서.역시 같은 감독이 찍은 영화라 편집이나 구도가 비슷하다. 특히 넬리가 첫 영화촬영장에 발을 디디고 그 사이로 걸어갈때 장면은, 라라랜드의 탭댄스 장면이나 마지막 방 장면과 닮아있다.


singing in the rain(좌측), jazz singer(우측)



4.할리우드에 대한 애증의 러브레터


처음 시작 1시간은 영화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했다. 이 영화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가볍고 추잡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이 영화가 청불 판정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주로 앞쪽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앞쪽에는 너무나 자극적이고, 난잡하고, 가벼운 이미지만으로 화면이 가득 채워져있다. 특히 풍자스러운 느낌인걸 알면서도, 마고로비가 1시간 동안 소비되는 방식은 너무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정말 singing in the rain을 계속 연상시키는 플롯 때문에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 라는 나의 마음의 소리가 계속 의문을 제기하며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하지만 1시간이 조금 지난 후부터 나오는 재즈싱어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건 singing in the rain을 의도적으로 심어두고 만든 영화구나 ’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시점부터, 나는 이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Singing in the rain의 실제 장면이 나오면서 마무리되는 엔딩시점에는 정말 감탄이 나왔다.

2년 전에 제작 과정에 들어갈때 봤던 포스터, 흑백의 컬러에 필름재질의 야자수 사진 하나가 들어가있는 굉장히 진지해보이던 모습. 사실 예고편과 스틸컷이 나오던 시점부터, 그와는 너무 다른 화려하고 가벼운 분위기에 아주 실망했었는데, 결국 영화는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엔딩으로 돌아오는 시점에는 영화는 결국 그 흑백의 분위기로 회귀한다. 이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평에서 이야기하는, ‘할리우드에 대한 애증의 러브레터’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그리고 여담으로 메인 주인공 역할을 맡은 디에고 칼바의 연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눈빛이 참 좋다고 느꼈다. 의도적으로 계속 그렇게 눈을 찍는 씬을 찍은 것 같은데, 표정이 참 오묘하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어 인상깊었다. 완전 신인배우이던데, 그 역할과 겹치는 점이 많아서일까, 배우의 느낌이 참 오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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