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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유월 Aug 15. 2023

사회실험,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스포일러 포함

0.사회실험,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라는 것은 일종의 사회실험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 감독은 일정한 세계관과 상황 속에서 창조한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스토리를 창작하고, 영화는 약 2시간에 걸쳐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어나지 않은, 혹은 일어나지 않을 상황 속에서 각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게 영화가 가진 속성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스토리보다 표현력: 당연한 이야기를 듣게하는 능력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이다. 재난 영화의 모습을 띄고 있는 이 영화는 사실 재난 그 자체보다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에 대한 통찰과 함께, 각 인간 군상들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적으로 풀어냈다. 이 영화를 보면 떠오르는 생각은 주로 이런 종류들이다. 과연 내가 (         )이라면? 극한 상황에서 각 등장인물들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이런 모습은 과연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누가 되었을까?와 같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많은 재난 영화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관객들을 그 사회실험으로 초대한다. 하지만 다양한 인간을 보여준다는 문구는 주로 피상적인 홍보문구로 쓰일뿐 그저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정도에 그친다. 주로 재해에 의한 위기의 고조나 캐릭터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며, 결국 ‘다양한 인간 군상’이라는 문구는 점점 희미해진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철저하게 그 문구에 힘을 싣고 만들어진 영화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자연재해가 스토리상 위기를 만들어낸 순간은 거의 한번뿐이다. 처음 지진으로 인해 서울 전체가 무너져버린 순간.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위기들은 철저히 인간을 향해 있다. 영화는 자연재해로 시작하지만, 그 뒤에는 인간이 만든 재해를 주목한다. 부산행, 판도라와 같은 작품들이 인간 군상보다는 재난에 초점을 맟췄다면 이 영화는 철저히 인간이 만든 재난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회 실험의 일종이라는 인상을 준다.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현재 사회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인간의 본능은 타인보다는 자신을 향하기에,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대부분 이기적인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개인주의가 많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우리와 저들의 계급이 분명히 나뉘고, 나는 남들보다 더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외부인들을 내쫓자는 황궁아파트 사람들은 말한다. ‘앞에 드림팰리스 주민들이 평소에 우리를 얼마나 무시했습니까? 만약 상황이 반대였다면, 저 사람들, 우리 발도 못 내밀게 했을 걸요?’ 평소에 황궁아파트를 더 낮은 계급이라 취급하며 무시하던 드림 팰리스 주민들. 재난 상황에서 모든 계급은 사라지고,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이 상황에서 그 계급을 다시 설계해 뒤엎으려고 한다.


이게 잘못된 가치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알게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기위해 문을 설치하고, 더 비싼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자기네 단지를 거쳐 등교하는 것을 반대한다. 영화 또한 이런 뻔한 부분을 풍자하며 지적하고 있다. 자신만을 생각하고 계급을 나누는 인간들의 추하고 이기적인 모습들을 풍자한다. 하지만 이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걸 알면서도 빠져든다. 이유가 뭘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표현력이다. 표현력이 촌스럽고 부족한 영화라면, 아무리 영화의 메시지가 좋아도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반대로 메시지가 뻔하더라도, 그것을 조각하는 표현능력이 좋다면 우리는 귀를 기울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역시 후자이다. 굉장히 뻔한 메시지와 메타포를 사용했음에도 사람들을 주목시키는 이유는 표현력에 있다. 비교적 담백한 감정과 현실적인 캐릭터, 그리고 확실한 컨셉.




2.확실한 컨셉

초반부 영화의 톤을 잘 깔고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완연한 블랙코미디 감성을 입혔다. 자칫하면 과하게 혹은 너무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디스토피아 장르에, 블랙 코미디를 가미하니 과한 것도 독이 되지 않는다. 그 대지진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라는 설정도, 주민들의 과하게 해맑은 태도들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외부인을 쫓아내고 아파트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코믹한 씬들은 초반부 영화를 한층 가볍게 만들어준다. 카메라에게 말을 걸며 마치 아파트를 선전하는 듯한 연출은 이 영화가 어떤 스타일의 영화인지를 확실하게 말해주며 초반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에 점점 스며드는 섬뜩하고 잔인한 장면들은 초반부 영화와 대비를 이루며 더 확실한 효과를 내주고 있다.



3.담백한 감정

신파가 많이 없는 이야기라 좋았다. 재난 영화는 주로 신파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영화는 등장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도에 그쳤을뿐, 과한 감정의 분출을 택하지는 않았다. 결정적으로 교회에서 민성이 죽고 난 후 명화의 감정에서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슬픈 감정을 보여주지만 현실적인 정도에 그칠뿐, 극적인 감정으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우는 장면이나 과한 노래를 통해 장면을 길게 끌어 보여주는 대신, 빠른 편집을 통해 해당 장면을 과하지 않은 선에서 끊고 다음 전개를 시작한다.



4.현실적인 캐릭터와 표현법

전체적인 캐릭터의 표현법이 마치 다큐처럼 자연스럽고 리얼하다 느껴졌다.(특히 영화 후반부에 해원이 죽는 장면은, 극적인 반전 없이 그저 현실적인 죽음으로 마무리된 것이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재난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아파트와 같이 기본적인 배경 세팅은 매우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지만, 그 속에 들어가는 작은 요소들은 정말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 세팅 속에 들어가는 작은 요소들이 현실적이라 더 흥미로웠다. 아포칼립스의 비현실적인 배경 속에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캐릭터 설계 또한 단순하지만 재미있다. 각 성격의 층위를 잘 나누고, 서로 다른 개성을 잘 살렸다. 영탁(이병헌)은 제일 극단적인 캐릭터로, 악의 모습을 가장 많이 지닌, 어찌보면 현실에 제일 없을법한(하지만 저런 상황이 닥친다면 의외로 많을 것도 같은)캐릭터다. 민성(박서준)은 제일 현실적이다. 우리 대부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누군가를 도우고 싶은 마음 또한 있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안쓰럽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사는 것이 먼저인,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명화(박보영)은 선의 측면이 제일 많이 보이는 캐릭터로 현실에 많이 존재하지 않을듯한 캐릭터. 착한 명화의 캐릭터가 좋기는 했지만, 말에 비해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은 것이 많아 캐릭터 디자인이 좀 아쉬운 것 같다. 다른 주민(외부인을 같이 지내게 해준 도균 캐릭터)처럼 실제로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도 아니고, 그저 소소하게 도와주는 정도에서 그친게 뭔가 명화의 캐릭터를 좀 애매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영탁(이병헌 배우)과 명화(박보영 배우)






우리 사회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될까, 디스토피아가 될까?


영화를 보고 난 후 등장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뭔가 아쉬우면서도 슬픈 점은 많은 관객들이 명화(박보영)를 숨겨진 악역(이른바 발암 캐릭터)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블로그나 평점 사이트에서 오히려 영탁(이병헌)이 히어로라고 이야기하는 의견들을 많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게 인식하지 않는 것도 납득이 간다. 나 또한 명화의 캐릭터가 선한 것은 알지만, 말으로만 얘기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의아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영탁이 마냥 악역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두 캐릭터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놓는 이런 의견은 안타까우면서도 슬프다. 아무리 명화가 대책없는 이상주의자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건 그녀의 잘못보다는 이상주의자를 대책없고 한심하다 느끼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우리 사회에는 영탁보다는 명화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니까.


우리 사회에 저런 재난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모습은 황궁아파트에 가까울까? 아니면 마지막 장면의 사람들에 가까울까? 궁금하다. 나는 슬프게도 황궁아파트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좋겠지만.


풍자적인 영화는 관객을 생각하게 만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역시, 우리에게 당연하지만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되짚어보게 하며, 우리 사회에게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 또한 그렇게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뻔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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