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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유월 Aug 23. 2021

<판의 미로>,판의 미로와 어린왕자

영화 ‘판의 미로’를 보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판의 미로와 어린왕자

영화 ’판의 미로’를 보고


“어른이 되는게 문제가 아냐. 어린시절을 잃지 않는게 중요한거지”



1.어린왕자와 오필리아

영화 ‘어린왕자’에서 주인공 소녀는 말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어른이 되기 싫어졌어요”

노인은 말한다.

“어른이 되는 게 문제가 아냐.어린 시절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거지”


오필리아가 만든 환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잔인한 현실을 잊기 위해 환상을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것은 진짜라고. 눈에 보이는 세계만 믿는 것은 너무 어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그녀의 세계를 진실로 믿을것인지, 상상으로 믿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관람객의 시선에 달려있다. 그리고  것은 우리가 어른의 세계에 있는지, 아이의 세계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나는  중간에 서있다.


책 ‘어린왕자’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내가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것에 대하여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사담이지만, 나는 초등학생 때 타자연습을 할 때 항상 어린왕자를 고르고는 했다.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그때는 어린왕자를 읽지도 않았으니까. 타자가 느린 나는 항상 1페이지 반 정도에서 연습이 끝나고는 했다. 서문 정도만 겨우 친 것이다. 그 때 이 문장들을 적을 때는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더 시간이 지나고 읽는 어린왕자의 서문은 너무나도 새롭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내가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른들의 어린시절을 일깨우기 위해 작가가 이 책을 선물한 것이라고. 어린왕자는 모두의 어린시절을 담아놓은 책이 아니다. 어린왕자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어린시절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각자의 일기장과 같은 것이다.


어린왕자가 어른들의 어린 시절을 일깨워주는 일기장이라면, 나는 판의미로는 그들이 어른과 아이 사이의 어디쯤 와있는지를 가늠해주는 지표라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두번째 챕터에서 이어진다.





2. 진실일까? 환상일까?


1)

“오필리아로 인해 숲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생명의 움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걸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이다. 이미 영화에서도 이 이야기도 진짜일지 환상일지가 관람객의 시선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2)


이 영화를 보고 그날 감상문을 쓰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 자체는 정말 좋았는데, 느낌의 잔상만 남을뿐 확실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평소였으면 유튜브에서 일종의 해석본을 찾아보며, 영화의 뒷이야기나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글을 쓰려 했겠지만 이상하게 그러기가 싫었다.왠지 이 영화는 온전히 나만의 감상으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결국 그 마음을 이겼다. 결국 나는 사람들이 적어놓은 글을 보며 궁금증을 해결했지만, 묘하게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댓글을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댓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오필리아의 세계를 그저 현실에서의 도피가 만들어낸 환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결말에 오필리아는 판을 보고, 대위는 판을 보지 못하듯이, 관객들도 오필리아의 세계를 진짜라고 인식하는 사람과 가짜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요?’


유튜브에서 영화에 대한 해석을 찾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구나. 이런 설정은 은유였구나...’ 하지만 묘하게 와닿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이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감성은 그러지 못했다. 사실 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오필리아의 세계는 진짜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사실, 마지막에 상상장면이 나오며 오필리아가 살짝 눈을 뜨는 장면에서도 ‘? 다시 살아나나?’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판타지 영화니까. 오필리아라는 캐릭터를 나를 스크린 속으로 빨려들게 만들었다. 오필리아의 세계가 환상이 아닌 진짜라고 믿어준 것은 그녀를 향한 애정 때문 아니었을까? 만약 그게 진짜가 아니라면, 끔찍한 곳으로부터 떠날  있는 열쇠가 사라지는 것일테니 말이다. 과연 나는 어른과 아이의 어디쯤에 서있을까.  





3.판의 존재는 무엇일까?


숲의 정령이라고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아름다운 요정의 모습일텐데, 판의 모습은 너무나도 정반대이다. 판이라는 캐릭터는 그리스 신화의 (파우누스)라는 반인반수의 염소형태의 신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뜻밖의 공포를 뜻하는 ‘panic’이라는 단어도 파우누스의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서양에서는 염소를 악마의 존재라고 여긴다고 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합쳐 나온 판이라는 캐릭터는 우리가 끝까지 그를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결코 악역이 아니다.

기예르모  토로 감독은 우리가 흔히 괴물이라고 말하는 존재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판의 미로에서도,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도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에서 괴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들은 악역이 아니다. 대신 권력을 지닌 폭력적인 인간이 악역,  괴물로서 등장한다. 기예르모  토로의 영화에서 눈에 보이는 세계만 믿는 것은 반칙이다. 겉모습이 아닌  이면을 보는 눈을 통해,이야기 자체를 뒤집어 버리는 것이 그의 영화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악역이 아니었다!’ 같은 반전의 요소로 이야기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체 플롯 자체를 뒤집는다. 괴물처럼 여겨지는 겉모습도 다른 정체성을 부여받을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의해, 사람들은 일종의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화의 신선함을 위한 도구로만 이러한 존재를 사용하는  아니라, 괴물이라는 존재에 애정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시선은  무엇보다도 순수했다. 그래서 거부감은 희석되고 애정이 남는다. 판은 감독의 철학을 반영해주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4.따뜻한 우울함을 가진 동화


동화의 뜻을 사전에 찾아보니 ‘어린이를 위해 동심을 기초로 지은 이야기’ 라고 나온다. 그러니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말은 어쩌면 모순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흔히 동화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말해보고자 한다.


가장 따뜻한 우울함은 어쩌면 동화가   있는 가장 확고한 설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그리는  아니라, 우울한 것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동화아닐까? 기예르모  토로의 영화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불리는 것은, 단순히 동화적 플롯에 잔인한 장면이 섞여있어서가 아니라, 가장 따뜻한 우울함을 그려내는 감독이어서라고 생각한다. 영상과 음악에서도 그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초록빛을 띄고 있는 듯한 영상은, 너무 산뜻한 느낌을 주지도, 그렇다고 너무 차가운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그의 영화는 이끼가  녹색 수조처럼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long, long, time ago’ 영화의 이런 분위기를 극대화해준다. 여자의 흥얼거리는 음성으로 이루어진  노래는 아름다운 슬픔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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